노을, 알혼섬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아, 평범하고도 비범한 우리말의 이 아름다움을,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가 아니라,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라고 배치한 이 놀라운 음악성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김소월의 <가는 길>을 가르칠 시간. 문제풀이를 위한 인강을 들으며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니지’ 싶다. 소월의 시를 맛도 보지 않고, 그 맛에 감동도 하기 전에 파헤치고 난도질하면 안 되지. 그건 소월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지식채널e, <당신은 소월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를 본다. ‘엄마아야 누우나야 강~변 사알자’를 자장가로 들려주며, 마야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를 신나게 흥얼거리며, 봄산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보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교과서의 김소월 시를 보며 한 번은 만났을 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
어제도 오늘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고 잊을 수 없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남자,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며 아파한 남자,
시샘에 몸이 죽어 접동새 되어 아홉이나 되는 오라비동생 죽어서도 차마 못 잊어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우는 누이를 불러보는 남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김소월을 해마다 가르치며 해마다 본 적 없는 그를 마음 속으로 떠올리고 상상하면 그때마다 마음이 먹먹하고 아프다.
본명 김정식 옆에 (1902-1934)라고 표시된 생몰연대를 한참 들여다 본다. 열여덟에 시를 쓰기 시작해 고작 14년. 그 짧은 생애를,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을 관통해 나라가 없는 설움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귀한 우리말을 아끼고 다듬어 슬픔을 써내려갔을 한 인간의 외롭고 슬픈 영혼. 신이 그의 재능을 곁에 두고자 일찍 데려간 것이라 위안해보아도 소월의 짧은 생애는 너무 아프다.
<진달래꽃>으로 남아, 영원히 죽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음으로, 해마다 소월을 만나는 것은 아프고도 행복한 일이다. 그저 지나쳐버릴 소월을, 운좋게도 국어 교사이기에 알아보는 나는 4월 맑은 하늘 아래 소월의 <가는 길>을 읽고 또 읽는다. 아이들에게 이 사람이, 이 사람의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조금이라도 더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