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보다 그림 같은, 이 좋은 시
정지용, <유리창>
호수, 바이칼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호수
보고픈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호수>는 90년 전(1930) 정지용의 시다. 수행평가로 시 외우기를 할 때면 <호수>를 꼭 끼워 넣는다. 아이들은 짧다는 이유로 무조건 이 시를 선택한다. 물론 전략이다. 외우면서 아이들은 상상하겠지. 손으로 얼굴을 폭 가리는 상상, 눈을 꼭 감아버리는 상상. 너무 보고 싶어 눈을 꼭 감아버리는 그 순간.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시인 이상은 8살 연상 정지용의 <유리창>을 가장 사랑하는 시로 꼽았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
추운 겨울밤, 유리창에 붙어서서 입김을 흐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고, 눈물을 머금고 유리를 닦는다. 입김을 불어 지울 때마다 차갑게 얼어붙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한 마리 어린 산새같은 너는 결국 날아가버린다. 이렇게라도 너를 만나는 순간, 외롭고 황홀하다. 너는 귀하고 또 귀해서 폐혈관마저 고운 너는 혈관이 찢어진 채 고통스럽게 날아가버리고 나는 밤마다 유리창에 너의 모습을 그렸다 지웠다 그렸다 지웠다 한다.
그림보다 그림 같은 시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 날러간 산새’는 내일 밤에 다시 창으로 날아올지 모른다. 지용과 가장 친했던 박용철 시인은 지용이 어린 아들을 폐결핵으로 잃고 나서 이 시를 썼다고 했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아들을 보는 아비의 마음은 오죽할까. 단정한 가르마, 동그란 안경에 항상 검은 두루마기를 입었던, 당대 최고의 모더니스트 지용의 시를 읽고 있으면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좋은 착각에 빠진다.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 -호수2
모가지가 간지러워 호수에서 멱을 감는 오리를 보는 것은 한가롭고 평화롭다. 내 마음도 평화롭다.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위로
밤이
걸어온다. -바다3
외로운 날, 종일 바다를 보면 이럴까. 바다에 밤이 찾아오는 걸, 바다 위로 밤이 걸어오는 걸, 볼 수 있을까.
말아, 다락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낳은)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말
엄마가 누구인지 모르는 말이 슬퍼보여 검정콩도 주고 푸렁콩도 줘보지만 말은 슬프다. 밤이면 먼 데 엄마가 있을까 싶어 달을 보며 잔다. 쓰다듬어 주고 싶고 자꾸 신경이 쓰인다.
1945년 2월.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시인 동주가 생을 마감한다. 동생 윤일주가 형의 원고를 들고 와 서문을 부탁했던 시인. 동주가 즐겨 베껴 썼던 시인.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병 아닌 신음을 하고 있다.’고 했던 지용. 그런 지용도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죽고 만다. 월북이냐 납북이냐 논란이 있지만 확인된 바 없다. 늘 그리워했던 늙은 부모님, 고향. ‘옛이야기 지줄대고 실개천이 회돌아나가는’ 지용의 향수와 아름다운 시들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문학 시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