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낙서를 지우며

by 호치담

오랜만에 자료실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사무실에서 독서문화사업 기획을 하며 이용자와도 멀어지고 책과도 멀어졌다. 그러다 점점 자료실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져 자료실에 근무하는 사서들이 부럽다가 또 미워지다가를 반복하던 즈음 정신줄을 놓기 바로 직전 자료실로 업무분장이 났다.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이따금씩 자료실에 교대근무를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내 담당이 아닌 실에 잠시 자리를 채우러 왔을 때는 그냥 남의 집에 잠시 왔다가는 느낌이라 어떤 책이 들어왔는지 책이 얼마나 상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모처럼 담당 자료실이 생기니 책들이 상한 것도 마음이 쓰이고, 책 속 낙서들도 신경이 쓰인다.


연필로 무수히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고 참으로 수다스러운 책을 발견했다. '차라리 펼쳐보지 말 것을…'이란 생각을 수 없이 하면서 한 장 한 장 펼쳐가며 지우개로 벅벅 지우기 시작했다. 지우개 가루가 책 사이에 있으면 책장 사이가 붙을 수 있어 지우고 탈탈 털어내기를 반복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이용자가 물었다.

"그렇게 책에 밑줄 긋는 사람에게 벌을 줄 수는 없습니까?"

"찾아서 변상을 요구를 해야 하는데 무인 대출반납기가 생기면서 그것도 일일이 찾기가 어렵고 여러 사람이 보는 책이라서 누군지 정확히 밝히기가 어려워서요."

"장기 연체한 사람들한테도 그래요. 뭔가 금전적인 부분이라던가 도서관과 시민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게 해야지. 그냥 대출 못하는 것은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한테는 너무나 쉬운 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우리 속담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란 말이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한 범죄는 관대한 편이라서 그런가 봐요. 소중히 봐주십사 바라는 것이 최선이네요."

이용자와 함께 책에 몹쓸 짓을 하는 이용자를 한참을 흉을 보았다. 밑줄 그은 이용자의 귀가 꽤나 간지러웠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괴로움을 겪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밑줄을 긋는 데는 1초도 안 걸리겠지만, 지우는 데는 1분이 걸린다. 한 권을 꼬박 지우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남은 연필 자국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다가 이용자에 대한 페널티를 이용자들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서는 도서관의 자료의 관리자이긴 하지만 연체하는 이용자와 연체하는 이용자에게 분노하는 이용자 사이에서 무력해질 때가 많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지만 그것으로 자료의 연체와 훼손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장기 연체자료와 훼손도가 심한 자료를 재구입하는 등 보완적으로 운영하고는 있지만, 재구입에 소요되는 비용만큼 신간을 구입하는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이용자의 손해가 맞다.


오랜만에 자료실에 돌아와서 낙서를 지우다 보니 이런저런 고민들이 새롭게 떠다닌다. 공모사업을 두서너개씩 할 때는 눈 앞에 닥친 일을 처리해 내느라고 이런 고민다운 고민을 할 겨를이 없었다. 자료실을 쓸고 닦고 소독하면서 작은 얼룩하나 이용자의 마음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마주하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마음에 쌓여 또 어떻게 소통하면서 살아갈지 기대된다.


오랜만에 자료실에 돌아오니, 참 좋다.

keyword
이전 08화민원 2: 너네들 월급 다 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