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혹시 기억하세요? 어머, 다시 오신 거예요?"
"앗! 안녕하세요. 네네 다시 돌아왔어요. 아, 이 아이가 그때 뱃속에 있던 그 아이예요?"
"아, 얘는 걔 동생이고요, 이 아이가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예요."
도서관을 로테이션하다가 2009년 개관했던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처음 입사해서 개관을 했던 도서관이라 남달랐고 또 다시 로테이션으로 돌아왔을 때 얼굴을 아는 사람들의 환영이 반가웠다. 재능기부로 봉사를 해주시던 분이 임신 중이셨고 출산으로 재능기부를 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워하셨었는데 다시 돌아오니 그 아이가 유치원생 동생을 둔 초등학생이란다. 정신이 번쩍 든다.
2008년 인천의 한 공공도서관 개관 TF팀으로 들어온 나는 24살 졸업장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새내기 사서였다. 아이들이 막 태어나서 이게 내 손인가 발인가 쳐다보고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출장을 갈 때 근무상황부를 쓰고 가야 하는 것도 모르고 예산과목을 창작해서 쓸 정도였으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멀쩡히 대학교 4년 동안 문헌정보학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막상 사서로 취업을 하고 출근을 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내가 개관 준비 팀원이라니 그런데 위탁도서관인 우리 도서관의 모기관도 도서관 위탁은 처음 관장님도 관장님은 처음 직원들은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경력이 1년 내외의 꼬마 사서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개관을 하라고 했으니 고군분투야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사서로서 첫 임무는 전산 사서였다. 재단의 전산직이 도서관의 전산을 맡아줄 사서가 필요하다며 나서 보라 했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 정적이 싫어서 내가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전산에는 완전 문외한이었다. 심지어 문헌정보학에도 전산 관련 과목이 있지만 나는 전산은 관심이 없다며 필수 전공과목을 제외하고는 전산과목은 듣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 주제에 의욕만 가득해서 정적이 싫어 번쩍 손을 들다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산직은 사실 정상적인 운영 가도에 들어서면 장비나 네트워크 서버 등에 장애만 나지 않으면 홈페이지 관리와 장애 관리 정도의 업무기 때문에 업무의 부하가 적은 편이다. 그런데 개관 도서관은 달랐다. 홈페이지 구축과 정보화 시스템 구축이라는 막대한 업무가 있었고 컴퓨터 분해도 한번 해보지 못한 내가 도서관 서버 구축을 감독하고 홈페이지 청사진을 그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재단 전산직이 당신이 주로 하고 나는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말에 깜빡 속아서 나는 그렇게 사서 생활을 전산 사서로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만들라는데 홈페이지에 뭘 넣자면 진짜 도서관의 기틀을 다 세워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있는 것을 채우는 것이랑 없는 것을 만들어가며 채우는 것이랑은 다른 일이었다. 운영규정을 채우려면 운영규정을 만들어내야 하고, 각 자료실 안내를 그리려면 도면을 따서 직접 그려가며 만들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일을 졸업장에 잉크도 안 마른 새내기 사서인 내가 맡았다.
"관장님, 홈페이지 운영 규정에 대출권수, 대출기간, 연체 페널티를 넣어야 하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자 그럼 회의를 해서 해당 내용을 결정합시다."
"관장님, 도서대출관리시스템에 필수로 넣을 정보는 어떤 것으로 할까요? 주민등록번호는 수집해야 할까요? 생년월일로 대체해야 할까요?"
"자 그럼 회의를 해서 해당 내용을 결정합시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었다. 도서관의 모든 일들이 정보화 시스템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개관이라는 게 어떤 체계에 의해서 진행되기보다는 와르르르 달려들어 도서관의 오픈만을 위해 달려가는 터라 무엇을 할 때마다 묻고 진행해야 하는 새내기는 정말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결정해야 하는 일은 매번 줄을 지어 서있었다.
어찌어찌 개관을 하고 정상화의 궤도에 올랐을 때 이용자로부터 자원봉사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 또한 자원봉사를 다녔던 기관 그리고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에 도서관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회의시간에 의견을 냈다. 자원봉사자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공공도서관의 어떠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고, 청소년 자원봉사 성인 자원봉사 재능기부 등에 평소에 관심이 있어서였다.
"그럼, 의견을 낸 권사서가 자원봉사 운영을 해보시죠."
회의시간에 의견을 내는 것은 결국 업무량을 늘리고 싶은 자의 외침이구나 그때 깨달았다. 전반적인 자원봉사자 운영 및 모집에 대한 계획안을 작성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자원봉사확인증과 각종 양식을 만들어 내고 자원봉사자들과 미팅하며 무엇을 함께해야 시민들의 만족도를 증진 시킬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때 그림책을 스캔해서 영상을 보면서 책을 읽어주는 '빛그림 무지개'라는 봉사동아리를 만들었고, 그때 처음에 활동을 하던 내 또래의 봉사자를 10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었다.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충만한 자부심 하나로 버텨낼 때 그때 함께 도와주고 힘이 돼주었던 재능기부자의 뱃속에 있던 아이. 그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나는 그때의 나로부터 얼마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것 같은데, 오히려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훌륭했었다고 평가하고 싶어 질 때도 있는데 말이다.
10년만에 돌아온 도서관은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고,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아있었다.
그 곳에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