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대리님, 이 사업에서 예산이 남는데 대리님이 운영하시는 사업이랑 매칭 해서 운영해보면 어떨까요?"
"아직 제 사업 예산도 넉넉하고 관련 사업도 제가 하고 있어서요. 그런데 기획 되게 좋은데? 눈빛이 이미 하고 있는데?"
"하하. 네 저 이미 꽂혀버렸어요."
"곧 하겠군! 제가 도와줄 일 있거나 협업할 거 있으면 같이 해요."
이미 눈빛이 말릴 수 없는 경지로 갔다. 이미 머릿속에서 구상된 기획들을 펼치고 곧 이루어나갈 것이다. 한편 걱정이 들었다. 이미 포화상태인 문화프로그램에서 추가로 운영하려면 결국은 사업당담자가 자기 시간을 할애해서 주말 프로그램이나, 야간 프로그램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기업과 대비해보면 스스로 야근 거리를 만들어 내서 야근을 하고, 스스로 주말 초과근무를 신청하는 꼴이다.
그런데 나는 안다. 저 눈빛은 이미 일을 저질러버릴 눈빛이라는 것을….
아무리 말려도 내 말은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매주 수요일은 가족의 날이라 야근이 금지되어있다. 공공기관의 근로자이기에 가족의 날은 당직을 제외하곤 초과근무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도서관은 문화기관이라 가족의 날 시민들이 퇴근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해야 한다. 이 딜레마는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서라면 늘 부딪히는 문제이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직장인이 쉬는 휴일'이나 '야근이 없는 수요일 저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수요자에게 가장 적합한 시간이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사서도 직장인이라 수요일 야근이 금지되어있다. 수요일 야근을 하기 위해서는 상위 결재라인을 설득해야 한다. 수요일 야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가 결국 관장님의 반대에 진행하지 못한 적이 있다.
"수요일에 야근하지 말고 쉬라고 하는데, 이때 일을 하자면 어떻게 하잔건가. 다른 날로 다시 정해보시게."
결국 머리를 꽁꽁 싸매다가 주말 프로그램으로 옮기고 격주로 주 6일 출근을 했다.
그런데 오늘 또 내 옆자리 사서가 '수요일 저녁 시간' 대의 문화프로그램 기획을 가지고 또 관장님께 면담 신청이 들어갔다.
면담의 내용은 코로나로 문화프로그램을 한 학기 운영하지 못해 예산이 남는데, 그 예산으로 직장인 성인 대상으로 야간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고, 그러기에는 다른 요일보다 수요일이 제격이라는 것이었다. 사서들의 뇌구조는 비슷한 것인가. 놀랍도록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사서들은 왜 매번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을 설득시켜야 하는 건지 의문이다. 사서들만 이러는 건지, 다른 기업들도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아서 하고 일을 벌리고 거기서 또 뿌듯함을 느끼는 걸 보면 사서들은 진짜 넘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사서들을 넘치게 할까 하고 생각해봤다. 아마도 힘든 끝에 오는 시민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사서가 조금만 고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니까 열심히 하게된다. 그리고 동료들이 알아봐 준다는 것도 정말 기쁘고 힘이된다.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한 기획서를 보고 "권사서! 나 권사서 기획안 보고 진짜 너무 좋아서 두근두근 했잖아요. 관장님도 좋아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어주는 동료가 있는 직장이라니…. 행운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게 행운이다.
그런데 사서가 조금만 힘을 빼면 그때도 바로 피드백이 온다. 피드백이 오기도 전에 스스로 느낀다. 프로그램 자체가 느슨해진 것을….그럼 또 괴로운 심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니 안 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또 몹시 괴로워진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데, 스스로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나는 사서가 조금 셈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하는 것이 월급이나 승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자기가 일을 벌리지 않아도 벌려도 월급은 같고 성과평가는 미미하다. 그런데 마음을 쏟아부어서 일을 하게 된다. 주말에 근무하느라 여름휴가도 없이 보낼 때도 있고, 꽃이 피는 4~5월과 단풍이 드는 9~10월은 도서관 주간이며, 독서의 달이며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을 위해서 행사 기획을 하고 사서들은 꽃놀이며 단풍놀이며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주말이야 늘 포기하는 거니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 넘치고 부족한 사람들과 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가끔은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말려달라'고 부탁하면서도 결국엔 또 스스로 불태우면서 달려드는 사서들과 일할 때 뭔가 신이 나서 같이 일하게 된다. 열심히 하고 싶어도 '나 혼자 오버하는거 아닌가?' '그냥 적당히 중간이나 갈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는 사람들이니까. 열심히 하고 싶어도 열심히 일할 수 없는 직장도 많다. 열심히 한만큼 금전적이나 성과적으로 평가되지 않아도, 함께 으쌰으쌰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즐겁다. 단순히 경쟁적으로 누구보다 더 돋보이고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목표를 가지고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서로서 가지는 가장 큰 메리트가 사서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 이라고 느낀다. 내 곁에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이 있고, 또 기꺼이 배우려 하는 동료들도 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나라는 사람이 탄탄하게 쌓여 가고 있음을 느낀다. 사서가 되기 전보다 사서가 된 후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