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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ul 14. 2021

임덧,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이유

10주 차에 접어들었다. 10주 차가 되고 임신 전 몸무게에서 딱 5kg이 빠졌다. 긍정적일 수 없는 마이너스이다. 지방이 빠졌다기보다는 근육이 줄어든 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입덧 때문에 잘 먹지 않아 빠진 것도 있지만, 조심스러워 움직임을 최소화하다 보니 온 몸에 근육이 빠지고 그 자리를 붓기와 살들이 채워나가고 있다.


자다가 기지개만 켜도 아이가 놀랄까 싶어 깜짝 놀라서 깰 때가 많고, 재채기를 하다가도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루에 2000보도 걷지 않고 최소한으로 움직이고 최소한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었다. 누워서는 책을 보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유일하게 핸드폰을 끼고 사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삶에 적응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냥 살아있기를 목표로 초기 임산부의 몸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뭔가 의지를 가지고 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 임신하고 있는 나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나마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일이 생산적인 일이다. 어차피 출근은 해야 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이니 문서를 쓰고 업무를 처리하는 게 그나마 임신 전의 나 같아서 위안이 되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그냥 침대나 소파처럼 무생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고,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미래가 아득해졌다. 이런 게 내가 없어지는 기분인 건가 하고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입덧 약을 먹고 정작 입덧이 줄어들었지만 극심한 울렁거림이 참을만한 울렁거림으로 바뀐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약이라 아침과 저녁에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입덧 약을 먹고 모든 의욕이 저하되고 생명력을 빼앗긴 대신 입덧이 가라앉은 것 마냥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는데, 점차 약에 적응을 하면서 나서는 무기력증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입덧 약 덕분에 바깥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런 무기력증과 의욕 없는 임산부의 삶에서 한 가지 낙이라면 하루에 1mm씩 크는 태아이다. 그저 세포 같았던 아이가 점점 커서 머리와 가슴 그리고 다리가 구분되고 팔이 나와 흔들흔들 휘적거리고 있는 것을 본 날은 정말 신기했다. 그 이전에는 아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세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팔다리가 생기고 눈코 입이 생기고 있으니 이젠 정말 내가 인간을 품고 있구나 하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초음파 동영상 속에 커다란 머리에 가느다란 팔을 휘저으며 놀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 아이가 크느라고 내가 이런 모든 것을 겪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또 견딜만해졌다.


생리통처럼 배가 아플 때도 우리 아기 열심히 집을 짓고 있구나 하고 버틸 수 있게 되고, 입덧에 세상이 울렁거려 보일 때도 우리 아기 잘 있구나 하고 안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임산부의 몸에 적응하기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때마다 뱃속에 태아를 생각하면 또 버틸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았다. 딱 죽지 않을 만큼 완급을 조절하는 기술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정상인 날이 하루도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 것 같은 나날들이다.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것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임산부의 몸이란 몸 안에 갇혀 있는 것만큼이나 답답하다. 내 몸인데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10개월을 버텨야만 하는 것 그리고 끝난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도 늘 각오하고 각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제일 친한 친구가 될 나의 아이가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나를 닮았을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았을 지 궁금해 하다보면 또 시간이 흐른다.

어떤 시간이든 흐르고 지나간다는게 위안이 되는 날들이다.

언젠가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 내 손을 잡고 웃어주는 날도 오겠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용담 처럼 너에게 들려주는 날도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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