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가질 수 없기에 더욱 간절히 소망한다 - 서평 1
양귀자 소설가의 책을 읽었다. 서점 가판대 소설 BEST 칸에 푸른색 표지를 둘러메고 누워있던 그 책을 보고 나는 그것을 집어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국 작가들을 아주 좋아했다. 세계의 다양한 명작들도 많이 읽었지만 유독 대한민국만이 가지고 있는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한이 서린 외침을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개화기부터 19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특유의 여름 장마에 찌든 습습한 장판과 같은 문체가 작품 전체에 녹아 있다. 이런 문체를 참 좋아하는 것도 나의 특이한 취향 중 하나이다.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문학에서 소설을 읽고 난 이후로 사람들은 소설을 싫어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게 된다. 교과서와 학교 수행평가를 벗어나 책을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어른으로 클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렇기에 이번에 추천할 책은 내가 교과서에서 벗어나 진짜 한국 소설을 찾아 읽게 해 준 작가 중 한 명인 양귀자 소설가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다.
이 글에는 책의 내용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책을 다 읽은 뒤 이 책이 주는 모호함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은 주인공 강민주를 선인과 악인 그 사이 어딘가에 오묘하게 던져놓는다. 그리고 벌어지는 이 모든 상황들이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든 것들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모호함이 나는 좋았다. 사실 동일한 책을 읽은 누군가는 전달하려는 작가의 메시지가 명확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다양한 자아에 따라 그들의 서사를 해석해 보았다.
우선 심리학을 배운 나의 눈에 이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심리적 지배 서사로 보였다. 강민주를 백승하를 납치하고 그가 더 이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그를 지배한다. 무력만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회유만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은 후 그의 마지막 구원자처럼 다시 나타나 그의 인생을 완전히 맡겨버리게 한다. 이 과정은 스톡홀름 신드롬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범죄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감화되어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심지어 사랑에 빠지기까지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백승하는 마지막 인터뷰에서까지 강민주를 옹호하며 그가 완전히 민주라는 가해자에게 정신정으로 동화되어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의 과정처럼 보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으로 이 서사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백승하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고결한 의지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퇴색되는 느낌이 든다. 그는 강민주가 가진 내면의 진짜 진심과 그녀가 이룩하려 했던 그녀의 세계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강민주에게 지배당했다기보다는 그는 그의 자발적 의지로 그녀에게 동의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실제로 강민주가 지배하려 했던 대상은 오히려 남기에 가깝다. 그녀는 교묘하게 남기가 그녀를 사랑하게 만들었다가 어느 선을 넘을라 치면 그와 자신의 상하관계를 확인시킨다. 남기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강민주가 유일하지만, 그녀로 인해 남기는 완전히 좌절하고 그가 가지고자 했던 그녀마저 파괴하게 만들었다. 남기가 겪은 극단적인 좌절은 민주가 만들어낸 것임과 동시에 강민주가 그동안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을 주무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강민주는 남기의 힘을 빌려 그녀가 가지고 싶었던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으나 결국 그녀 자신만은 남기에게서 지킬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정당한 값을 치른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남기를 조종하는 원동력은 결국 그녀 자신에게 무기로 돌아와 그녀를 날카롭게 찔렀다.
여성으로서 이 이야기를 읽는다면 나는 과거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강민주가 이룩하고자 했던 세계는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그 상징으로 백승하를 납치하였고 그에게도 그녀가 가진 사상을 이해하고 그에 감화되도록 하였다. 2024년 현재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심지어 여성해방이라는 것이 요즈음에는 입에 올리기에도 껄끄러운 이슈가 되어 선뜻 무어라 내 입장을 이야기하기에 조심스러워진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에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로부터 도망쳐야 할 의무가 있다. 서사의 전면을 모두 따라가다 보면 강민주가 왜 그리도 모든 여성의 해방과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려 했는지를 언뜻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오던 그 당시의 시선으로 보고 느끼는 생활상은 강민주에게 독자의 마음을 이입하게 만든다. 지겹게 반복해 왔던 가부장적 생활과 그로 인한 부작용들이 여실히 드러나 있으며 책은 의도적으로 더 잔인하고 생생하게 여성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강민주는 일면 이러한 모든 부작용들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선구자이며 개척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책은 악행을 저지르는 강민주를 매력적인 선의 영역으로 끌어온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여성해방과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문단에 발을 들이기도 어려운 문학의 현실에 무던히도 지쳐있는 상태였다. 이 서사가 너무 좋고 양귀자 작가의 문체를 사랑하지만 이제는 여성운동의 어떠한 기미라도 책에 드러나면 우선 부정적인 감정이 울컥 올라오고 마는 것이었다. 문단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읽는 모든 한국 현대 소설이 여성 서사와 여성 해방, 퀴어를 이야기하는 마당에 나는 소위 여자 둘이 나오면 둘이 키스하지는 않을까를 두려워하며 책을 읽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그러니 과거의 작품들에서 조차 문득문득 올라오는 내 반감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여성으로서 여성 서사에 질려버렸다니,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현재의 나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다. 이것은 반복되는 여성 서사로부터 나의 탈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는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 매력적인 여성에게 나 또한 남기처럼 나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맡겨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분명히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면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유려하게 연결하는 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그리고 거침없이 당당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강민주라는 인물이 가진 힘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매력적인 언사와 서사 내내 비치는 그녀가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언급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독자들이 계속해서 이 인물에 대해 흥미로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갈망하는 자였던 남기가 가져오는 그 기묘하고도 충격적인 결말은 두고두고 이 책의 여운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