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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반장 Oct 21. 2023

우리 동네 이장님

   언제부터였나. 너른 들을 경계로 500여 미터 떨어진 건넛마을의 이장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이틀에 한 번쯤 우리 집까지 들려온다. 마을 행사나 상급 기관의 공지를 전하는 음성이 축 늘어져 어눌하다. 들판 너머 달려오다가 흐려진 소리의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어도 끝부분 “~~~씀다.”나 “바람돠!”는 확실히 들린다. 듣기 싫다면서 들리지 않은 앞부분이 궁금한 모순덩어리, 인간.

   연초에 우리 마을 이장이 외따로 멀리 사는 나를 찾아왔다. 개별 가구마다 간단한 오디오 기구를 설치하여 공지를 전할 것이라 했다. 주민 감시 수단인가, 라던 고민은 잠깐, 수많은 CCTV와 SNS 등을 통해 개인의 일상은 불특정 다수에게 끊임없이 노출된다. 옆 동네도 같이 바뀔 거라는 소식은 반가웠다. 나와 관계없는 이웃 마을 공지를 더는 들을 필요 없을 테니.      


   마을회관 건물로 들어섰다. 열자마자 주방, 오른쪽 미닫이문을 열었다. 대부분은 할머니들, 바닥과 소파에 편하게 누워계시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다. 새로운 얼굴의 등장이 일으킨 호기심과 반가움이 그들 눈에 넘친다. 이장 댁을 여쭈었다. 회관 뒤 골목길, 돌담 안의 빨강 기와와 하얀 페인트칠 대문. 자갈 덮인 안마당을 가로질러 현관 앞, 그 주변에 만 원권 지폐 몇 장이 굴러다닌다. 계십니까! 돈을 짓뭉개며 놀고 있던 고양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조용하다. 한참 만에 문을 열고 나온 이장의 하품 한방이 늘어진다. 대뜸 날리는 인사말이 뜬금없다. 안 와요. 연세들이 있어서. 주문한 소금 가져가라는데. 열 번도 넘게 방송했어요. 나도 듣긴 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나 알던 그 이장이 아니다. 바뀌었나. 주민등록지 거주자 확인차 왔다는 대답에 장부를 가지러 돌아서던 그가 바닥에 떨어진 돈을 발견하고는 주섬주섬 집어 든다. 덕팔이구만. 사람 참, 아무리 바쁘기로서니 창문 한번 두드리고 가면 어디 덧나! 

   주민 명부에서 내 이름을 찾아 서명했다. 뒷집 공군 대령과 옆 도자 가게 쥔은 오지 않은 듯, 빈칸이다. 근처에 사는 나더러 대신 사인하라지만 난 주저한다. 이장 입회니까 괜찮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마지못해 볼펜을 잡았다. 이장 집 방문하기조차 버거운 노년들, 애들과 청년 숫자는 줄고 어른만 즐비한 동네, 인구절벽이라는 달갑잖은 용어의 불편한 의미를 현실적으로 깨닫는다.    

   돌담을 따라, 왔던 길을 돌아 나온다. 지난 십여 년 마을버스가 지나는 중심 도로로만 지나다녔다. 샛길로 나다니면 마을 사람들이 나를 자칫 낯선 이방인 취급할까 봐 접었다. 낮은 산 아래 파묻힌 마을이 아늑하다. 어줍은 풍수 소견으로도 번듯해 보이고 근처에는 알 만한 소설가의 작업실도 있는 동네다. 문제는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점, 애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옛 교장 선생님께서 어린이는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주인이라 했는데.     


   인구수 변화에 따른 국가나 민족의 부침(浮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이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대한민국의 저출산 보고서가 뜻하는 결론은 참담하다. 이 상태의 출산율 기준으로는 100년 후의 서울엔 강남, 광진, 관악과 마포 정도에만 사람이 살 것이고, 국가의 전체 인구는 1,214만 정도로 줄어들 거라는 걱정이 자자하다. 통계치의 의미 중 하나는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섬뜩하다.

   구체적으로 나름의 근거를 붙인 한국의 멸망 시나리오가 인터넷 공간을 버젓이 활보한다. 한민족의 소수화를 전제로 주변 강국(중국, 일본, 미국 등)의 위성국가나 그들의 자치령으로 전락할 거라는, 어쩌면 인구가 많은 북한으로의 역 적화 통일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이민자를 받아들여 그나마 국가 형태를 유지한다는 안(案)이 완전 멸망보다 낫다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넘어 자괴감이 인다. “쥔 없는 땅에 차라리 객이라도 설치는”이 다행인 미래라니.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오지 않은 날 앞에서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 없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가끔은 인구 숫자를 내세워 중국과 한판을 벌이겠다는 인도가 부럽다. 인구 감소가 불러올 심각성에 대한 범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라든가 실질적인 인구증가 정책 제고 등의 구호는 그냥 말일 뿐이다. 애 낳아 키울 사회적 여건이 안 된다거나 자기를 닮은 2세도 좋지만 한 번뿐인 삶을 본인 방식대로 살겠다는 말은 머잖아 라떼 취급받지 않을까. 어쨌든 대한민국이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것, 가능한 시나리오 한 가지를 떠올린다.

          

   혁신적 연구를 거듭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인공 자궁 개발에 성공하여 ‘아기 공장’을 가동한다. 여기서는 인구 조절 프로그램에 따라 신생아의 생산부터 배달까지를 일괄 책임진 국영기업이 예비 부모가 바라는 외모나 성격 지능 등을 완벽하게 갖추도록 유전자를 조작하여 우량종 아기를 생산한다. 뒷방 스피커에서 맹맹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장임다. 상반기에 신청하신 아기가 사흘 전 도착했씀돠. 다섯 명의 귀여운 신생아들이 부모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회관 인큐베이터에서 대기 중임다. 바쁘신 줄 아오나 오늘까지는 부디 찾아가시기  바람돠.” 이런 미래는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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