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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Jun 03. 2020

내가 만난 치한1-국민학교 동창 남학생

처음 시작하는 이야기는 치한이라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굉장히 기분 나쁜 기억이기 때문에 적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호기심으로 몹시 나쁜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40대 중반. 국민학교를 다녔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왈가닥에 남자처럼 놀았고, 힘이 셌다. 꽤 퉁퉁했으며, 두꺼운 잠자리 안경에 못생기고 책만 좋아하는 책벌레였다. 사회성은 떨어졌다.

이상한 정의감에 불타 여학생을 괴롭히는 남학생을 응징하고자 했으며, 자주 싸웠다. 어중간한 중상의 성적을 유지하는 관계로 정말 막 나가거나 센 학생들과는 부딪히지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국민학교를 포함한 학창 시절 기억이 매우 적다. 가끔 동창생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절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기억은 매우 선명하다.

6학년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에 한 남학생이 나를 불렀다. 매우 불량한 남학생이었기에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의아해하며 따라나섰다. 교실문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었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늘 잠겨있었다. 우리 학년의 교실은 학교 건물의 가장 위층이었다. 따라서 계단 위로 가면 조금 여유 있는 공간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 바로 앞에서 남학생은 멈춰 섰다. 아무 말도 없었기에 대체 무슨 일인가 마주 보고 섰다. 갑자기 그 남학생이 나의 치부에 있는 힘껏 발길질을 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랐다. 사실 아프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자마자 나는 갑자기 매우 부끄럽고 화가 났다. 동물이 내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매우 크고 길게 냈다. 그것은 비명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었다. 딱 그 중간이었다.


남학생은 곧장 계단을 뛰어내려 갔기에 그 계단 위에서 나 혼자 엄청난 소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쳐다보았고, 몇 명의 여학생들이 다가와서 왜 그러냐며 물었지만 계속 동물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내지르고 있었다.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다. 단순히 화가 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시간이 조금 지나 수업종이 쳤을 때에는 진정이 되어 교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아무 증인도 없는 이 사건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지냈다. 설명할 수 없는 수치심으로 잊고 싶은데 이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그의 찢어진 눈매와 표정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왜 내가 이런 잘못된 감정을 느끼며 괴로워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1980년대 후반 여성의 지위를 내재화하여 살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다.


잊을만하면 떠올랐다. 혼자서 이유를 곱씹었다. 당시 무술 만화가 인기가 많았다. 여성의 치부나 가슴이 급소라고 하니 때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을까? 아니면 애들끼리 내기라도 했나? 가장 만만한 여학생이 누구일까 골랐겠지. 친구가 없어야 데려가기 좋고, 증인이 없어야 뒤탈이 없을 것임을 계산한 행동이었다. 얼마나 야비한 녀석이었던가.


20대 중반이 되어 갑자기 국민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는 것을 당시 유행하던 아이러브스쿨에서 보았다. 국민학교 때 친구가 거의 없어서 망설였다. 그래도 남들도 다 한다는 동창 모임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같은 반을 했던 애들이 호프집에 앉아있었다. 다행히 그 남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대학 간 뒤 성격이 꽤 바뀌었지만, 그 전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 그때와 비슷하게 주눅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한 남학생이 말했다.


"너, 그때 왜 그렇게 소리를 질렀어? 어느 날 계단 위에서 막 소리 질렀잖아?"


국민학교 동창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다. 내가 워낙 많은 것을 잊으니 남들도 잊었겠거니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뭐라고 얼버무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모임에서 일찍 빠져나왔다. 그 후 다시는 동창 모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남학생은 어떤 이유에서든 1회성으로 나의 치부를 찼다. 나의 반응을 방과 후 친구들에게 무용담처럼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완전히 잊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40대인 이 남자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기분까지. 그래서일까, 흔히 말하는 수준의 성범죄를 겪지 않았음에도 성관련 범죄에 지나치리만치 민감하게 반응하고 화가 난다.


6학년.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만만한 약자를 골라 폭력을 행사한 것은 분명 나쁜 짓이다. 나는 이 남자를 내 인생의 첫 번째 치한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국민학교 졸업 앨범을 들춰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 01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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