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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Jun 04. 2020

내가 만난 치한2-여학교 바바리맨과 길에서 울던 아저씨

이제는 안다. 변태가 아니라 성도착증 환자라는 것을.

대부분의 여자들이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명 "변태"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제는 안다. 성도착증 환자라고 부른다는 것을. 우리가 이런 남자를 등굣길에 만나면, 그날은 1교시가 시작할 때까지 그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그런 "남자들"은 늘 나오는 곳에 정기적으로 출근하듯 나왔기 때문에 모르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몇 명이 돌아가며 등장하는데, 겹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름의 규칙이 있는 듯했다.




나는 1990년대 초반 여고를 다녔다. 노출증을 가진 남자들이 정기적으로 출몰하는 학교였다. 제보를 들은 남자 선생님들이 한 번씩 순찰을 도셨지만 근절할 수 없었다.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적으면 한 달에 한 번 꼴이었다.


특유의 바바리코트를 입고 나타나곤 해서 "바바리맨"이라 불렀다. 그들은 코트를 젖히고 옷을 입지 않은 하체를 드러내거나 지퍼 사이로 성기를 꺼내놓았다. 많은 동창들은 성인 남자의 성기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져있곤 했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벗어났고, 수치스럽고 기분이 더럽다고 표현했다. 용감한 애들은 무슨 짓을 하시냐고 화를 내었다. 축복인지 불행인지 고도근시인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두려움과 호기심만 쌓여갔다.


잘 생각해보면 수치스러울 일이 아니었다. 백주대낮에 성기를 내놓고 있는 그들이 수치스러워야 했다. 우리는 화가 났어야 했다. 그럼에도 늘 우리가 수치스럽고 그들은 더러웠다.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9시에서 10시까지 야간자습을 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학교를 개방했다. 그럴 때는 교사 수가 적거나 없으므로 바바리맨이 용감해지는 모양이었다. 가끔 쉬는 시간 복도 가장 끝쪽에 나타나서 학생들을 놀라게 하고 사라졌다. 곧 복도 전체에 비명소리와 함께 자습 감독 선생님들의 바쁜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런 날은 하교할 때 혼자 다니지 말라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 하굣길 학생들은 목격자를 중심으로 어느 골목 단골 바바리맨이었는지 갑론을박했다. 



정기적이지 않았던 남자도 한 번 보았다.

여중을 다녔다. 하굣길에 주차된 승용차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옆에서 걸어가던 여학생들의 말이 들렸다.


"저 아저씨는 왜 저기서 울고 있어?"

"몰라, 남자 어른이 우는 거 처음 봐."

"왜 우리를 보면서 우는데?"

"근데 왜 저렇게 몸을 흔드는 거야?"


쳐다보니 정수리 머리숱이 적고 머리가 반백인 중년 남성이었다. 키가 자그마하고 곱상하게 나이가 든 아저씨였다. 여학생들이 승용차의 끝쪽으로 가자 대화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꺄아아악"

"엄마야!"

"저 아저씨 왜 저래!"


그 남자는 차 뒤에서 바지를 내린 채 성기를 붙들고 있었다. 게다가 흐느끼고 있었다. 눈이 나쁘니 늘 그렇듯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확실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만난 적 없는 가장 위협적이지 않은 특이한 치한이었다.




이쯤 적고 보니 황당한 음모론이 떠오른다. 학교를 공학으로 만드는 붐이 일게 된 것은 이런 성도착증 환자의 출현을 줄이기 위한 큰 그림이었나?


여학교에 출몰하는 바바리맨이 노출 외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학교에서 먼 곳에 살던 남자들이었을 것이다. 근처에 살면 얼굴이 팔려서 위험 부담이 너무 클 테니까. 지금은 목격담이 잘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핸드폰 성능이 좋아지고, 정신과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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