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다 Jul 14. 2020

내가 만난 치한3-함부로 말하는 남자, 계단 밑의 남자

할 행동과 않을 행동을 못 가리는 남자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도 되는 행동이 있고, 하면 안 되는 행동이 있다. 적어도 성인이 되면 이 정도는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였다. 어머니와 사람이 많은 번화가의 큰 시장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옆에서 어머니와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조개들이 걸어가고 있네!"


어려서 그 말이 여성의 성기를 빗댄 말인 줄 몰랐다. 어머니는 순간 얼굴이 벌게지시더니 몹시 격앙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잇살 먹고 뭐하는 짓이요! 할 말, 안 할 말 구별을 못하고 못된 말을 하고 있소!"


그러고는 내 손을 꼭 쥐고 빠른 걸음으로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졌다. 다행히 그 남자는 몇 걸음 걷다가 멈추어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거의 뛰다시피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생각했다.


'어머니는 왜 화가 나셨을까? 그게 무슨 말이지?'


성교육을 제대로 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그런 설명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다른 성인에게 그런 식으로 화내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체 그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생전 처음 보는 여자들에게 그런 소리를 했을까? 분명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라면 그게 더 큰 문제지만.




학창 시절 가장 애증 하는 것이 교복 착용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선머슴 같이 놀아서 치마를 입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뚱뚱한 편으로 다리가 너무 굵어 치마 입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교복이 치마이기에 일주일에 6 일 치마를 입어야 했다. 매일 뭘 입어야 하나 고민을 않아도 되는 것만 좋았다.


등하교를 비롯하여 길을 다니면 육교를 자주 건너야 했다. 나를 포함한 여학생들은 육교를 오르내릴 때 되도록 계단의 가운데로 걸어 다녔다. 계단 밑에서 위를 쳐다보면 치마 속이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 일부러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상관없겠지만 무심결에 아래를 보면 가끔씩 어떤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떨구곤 했다.


"치마를 입었으면 당연히 조심해야지"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생각해보라. 일부러 보려고 고개를 들지 않는다면 육교 계단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고 있을 사람은 거의 없음에도 90년대 당시 여학생들은 그런 남자들을 자주 목격했다는 것을.


치한에 대한 기억 중 길지 않은 것들만 묶어서 이 글은 매우 짧다. 하지만 여전히 찝찝하고 불편한 기억이기에 적었다.

이전 03화 내가 만난 치한2-여학교 바바리맨과 길에서 울던 아저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