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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Sep 18. 2022

내가 만난 치한6-대학 건물 신문 배달부

그럴 리가 없는데. 얼마나 착한 청년인데...라고요?

집이 대학과 멀고 차가 많이 밀리는 곳에 살아 되도록 일찍 등교를 했다. 거의 아무도 없는 학과 건물에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날도 일찍 등교를 하여 건물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 걸어가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복도 저 끝에 보이던 키 작은 어떤 남자가 어쩐지 화장실에 따라 들어올 것 같았다. 당시에 공공건물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들이대거나 쳐다보던 남자들을 너무 자주 만났기에 의심병이 생긴 것 같았다.

넓은 화장실의 어느 칸에 들어가서 그 이상한 촉 때문에 볼일을 보지 않고 문만 잠그고 잠시 있어보았다. 과연 화장실 입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문틈으로 눈이 불쑥 보였다. 그 눈은 내가 서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에 놀라서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문을 열고 뒤따라 뛰며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 잡아요! 여자 화장실에 들어왔어요!"


화장실에서 많이 멀지 않은 건물 입구에 경비실이 있었는데 경비아저씨께서 계신 것을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간도 컸지. 해코지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건만 젊었을 때라 그런지 정의감에 불탔다. 소리를 계속 지르며 쫓아가자 그 자그마한 남자는 경비실 앞을 지나 작은 오토바이 쪽으로 뛰었다. 곧 뒤따라 나온 경비 아저씨께 숨을 몰아쉬며 말씀드렸다.


"아저씨! 저 사람 잡아야 돼요! 저 따라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서 절 쳐다봤어요!"


아저씨의 한 마디에 나는 맥이 풀려버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저 총각 얼마나 인사를 잘하고 착한데! 우리 건물에 신문 넣는 사람이야."


두 눈으로 보고 바로 쫓아왔건만, 경비 아저씨는 그 남자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그냥 쳐다보았다. 곧 나를 이상한 학생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경비실로 다시 들어가셨다.


허탈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서 씩씩거리고 있자니 얼마 안 있어 다른 친구가 등교를 했다. 나는 바로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너도 봤어? 나도 얼마 전에 아침 일찍 학교 와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 문틈으로 어떤 남자가 쳐다보는 거야! 일보는 중이라 일어설 수도 없고 화가 났는데 얼마 지나니 가버려서 어떻게 할 수 없었어. 너도 당했어? 미쳤나 봐!"


우리는 분연히 일어서서 경비 아저씨께 다시 갔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으나 아저씨는 한결같으셨다. 성실하고 인사 잘하는 착한 청년이 그럴 리가 없단다. 우리가 잘못 본 거라고 하셨다. 그날 우리 학과에서는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의 성토가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이 줄었고, 이후 그런 남자를 봤다는 증언은 없었다.


요즘 CCTV가 많아 개인정보가 너무 많이 샌다지만, 당시 그 건물에 그것이 있었다면 억울함을 해결했을 텐데 싶다. 지금도 여전히 호기심과 두려움에 차서 문틈을 보던 눈과 작은 몸집이 기억난다. 어딘가에서 영웅담처럼 젊을 때 어느 대학 건물 여학생들의 모습을 훔쳐봤다고 하고 다니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그건 당신이 얼마나 예의 바르게 살았던 상관없다. 범죄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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