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다 Sep 18. 2022

내가 만난 치한8-여교사 화장실에 들어온 남자 중학생들

미성년자면 다냐?

교사 치고 심각한 하자가 있다. 사람의 얼굴을 잘 외우지 못한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다. 하는 수 없이 교과서에 메모지를 반드시 챙겨간다. 수업 중 특이 사항이나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어줄 만한 일은 반드시 학번, 이름을 물어보고 바로 메모를 남긴다. 학기말이 되면 가득 쌓인 메모지를 정리해서 과목세특 등을 적느라 바쁘다. 바로 이 하자 때문에 생활 지도를 제대로 못해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 첫 직장인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막 종례를 마치고 학생들이 빠져나가 한산해진 학교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가 화장실을 갔다. 직장인이 되고는 여교사 화장실을 사용하기에 더 이상 화장실 구석구석의 틈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어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촉이 왔는지 갑자기 위를 올려다보았다. 중학생 특유의 짧은 머리 실루엣이 2개 보였다. 놀라서 크게 뜬 눈 4개를 인식하자마자 머리는 벽 너머로 후다닥 사라졌다. 급히 옷을 추스르고 나가보았으나 학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교무실로 가서 여선생님들께 알렸다. 무슨 그런 일이 있냐며 다들 놀라셨지만, 학생들의 학년, 이름 등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쩔 수 없겠다고만 하셨다. 지금처럼 학교 복도에 CCTV가 있던 시절도 아니니 찾을 수도 없었다.


그 학생들은 어땠을까? 신규 여교사 볼일 보는 것을 보았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을까? 그 둘만의 비밀이었을까? 내가 얼굴을 보았으니 언제 불려 가서 혼날지 가슴을 졸이며 지냈을까?


학생들 얼굴을 잘 기억하시는 동료 선생님들처럼 나도 그 학생들을 바로 찾아내어 따끔하게 야단을 쳤어야 했다. 아직은 중학생이니 어려서 그랬다고 쳐도 더 커서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반드시 지도했어야 했는데 너무 아쉽다. 가끔 학교 화장실을 훔쳐보는 사건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날이 떠오른다. 

너희들 그날 잘 잤니?

난 못 잤다.

이전 08화 내가 만난 치한7-대학가 상가 화장실의 남자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