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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Nov 16. 2018

워디벨(Work&Djing Balance) 10년 차

장규일의 '퇴근 후 디제잉' 인터뷰 #05

낮에는 회사원으로, 주말 밤에는 디제이의 삶을 살고 있는 10년 차 디제이, 어드로잇조를 3년 만에 '퇴근 후 디제잉' 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속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고, 이번 인터뷰 역시 많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2015년에 처음 인터뷰를 하고 3년 만에 다시 뵙습니다. 벌써 디제이 경력도 10년이 될 정도로 오래되셨네요. 그간 초보자/아마추어 디제이들이 자주 제게 어드로잇님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해달라고 요청이 많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드로잇 조(Adroit Joe)’입니다. 이렇게 다시 인터뷰하게 돼서 저도 즐겁네요.


어떻게 보면 퇴근 후 디제잉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할 워디벨(Work & DJing Balance)을 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본인만의 원칙이 있으신가요?

저는 ‘매 순간순간 내가 하는 그 일 외에 다른 데 정신 팔지 말고 집중해서 하자’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어요. 회사에서 일하면서 괜히 남는 시간에 음악을 듣거나 디제잉 관련된 활동을 하는 걸 되도록 피하려고 한답니다. 다른 직장 동료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괜히 퇴근 후 디제잉하는 것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하나둘 쌓이다 보면 회사 내에서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 있거든요. 그리고 퇴근 후나 주말, 제가 디제잉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에 회사 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으려고도 노력하고 있고요.


시간이 부족하진 않으신가요? 자녀도 있으시고 가정생활도 있으실 텐데요. 업무 시간 중에 생기는 틈새 시간을 활용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좀 부족하긴 하죠. 그런데 회사에서 남는 자투리 시간에 해보니 흐름도 끊기고 집중도 잘 안 되더라고요. 지금 제가 디제잉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디깅이 대부분이거든요. 많이 듣고 찾아보고 라이브러리를 넓히는 활동은 어느 정도 긴 호흡을 가지고 해야 하는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을 쪼개서 준비하고 그러는 게 큰 효율이 없더라고요. 


그러면 음악 디깅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따로 시간을 잡는 편이신가요?

그래서 저는 퇴근 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해요. 보통 주말에 디제잉을 하러 가면 11~1시 사이에 음악을 틀게 되거든요. 금요일에 퇴근하고 회사 앞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음악을 틀러 가기 전까지 2-3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디깅을 하고, 라이브러리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요.


금요일 밤을 비워서 정기적으로 디깅을 하는 게 일종의 루틴으로 자리를 잡은 거네요?

그렇죠. 특별하게 어떤 일이 없으면 그 시간을 디깅 하는 시간으로 잡고 하고 있어요. 모든 게 그렇겠지만 어느 한순간에 만드는 건 힘들잖아요. 미리미리 시간을 내서 꾸준하게 디깅 하고 라이브러리 정리하는 습관을 지니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출퇴근 시간도 활용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출퇴근 시간에 DI.FM 같은 라디오 앱을 켜서 계속 들으면서 가다가 맘에 드는 곡 있으면 스크린샷 해놓고, 퇴근 후에 그 곡들 다시 들어보고 필요하면 구매해요.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몇 곡이나 구매하시나요? 디제잉을 하기 위해선 참 많은 곡이 필요할 텐데요?

저는 절대적인 음악의 양만 늘리려는 것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음악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건 활동을 계속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고요. 가끔 마음에 들어서 살려고 하는 곡이 이미 예전에 내가 샀던 곡일 경우도 있어요. (웃음) 제가 라이브러리 관리를 잘못한 거죠.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무조건 욕심을 내서 많은 음원을 확보하려고 하진 않아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10곡 정도만 찾아서 새로 구매하는 편이에요. 어차피 많이 구매해도 다 모니터하고 정리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저는 제가 명확하게 찾는 색깔과 튠이 있어서 그런 곡들 위주로 찾는데, 그런 기준 없이 이것저것 다 고르다 보면 10곡을 받아도 그걸로 제대로 된 셋 하나 짜기도 어렵거든요.

어드로잇조 라는 디제이는 하우스 음악을 플레이하는 디제이’라는, 디제이로서 본인의 정체성을 지속해서 강조해 오신 거로 아는데요. 많은 디제이가 올 카인드(All Kinds) 디제이라고 하면서 많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제가 좀 더 그쪽 분야에 있어서 전문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거고요. 또 하나는 그 장르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존중을 표하는 거죠. 트랜스, 테크노, 퓨처, 그리고 베이스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디제이들은 하나 같이 본인들이 그 씬을 일궈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거기서 제가 ‘저는 올 카인드 디제이니까 저는 기회가 생기면 이것도, 저것도 다 틀게요.’라고 말하는 건 너무 가볍게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디제이가 음악을 틀 때 디제이가 정말 본인의 음악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유행하니까, 이제 트렌드니까, 이런 기회가 왔으니까 내가 한번 해 봐야지’와 같이 얄팍하게 접근하게 되면, 그 공간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덜할 수밖에 없거든요. 


아마추어 디제이 입장에서는 무대 한 번의 기회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본인의 음악적 자존심을 지키려고 무대를 포기하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을 텐데요. 어드로잇님께서 본업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 같아요. 물론 제가 전업 디제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좀 더 제가 틀고 싶은 음악, 장르에 집중했던 거 같긴 해요. 그런데 제가 그간 10년간 디제잉을 해왔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제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계기들은 모두 다 정말 제가 좋아하던 음악을 틀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그 모습을 다른 디제이가 보고 격려와 제안을 주면서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앞서 말한 것처럼 본인의 음악적 스타일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봐요. 이것저것 다 건들다 보면 정체성이 없어져요. 그러면 특정 장르의 음악을 하는 다른 디제이들이 모여 새로운 뭔가를 만들고 싶을 때, 그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요. 최근에 제가 베뉴 몇 군데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도 제가 하우스 디제이로 계속 활동을 해왔고, 그런 부분을 인정을 받아서 들어가게 된 거로 생각하거든요.

몇 년 전에 제게 디제잉을 배운 친구가 있는데, 처음엔 누 디스코나 하우스를 하다가 힙합 쪽으로 장르를 바꿔서 3년 정도 힙합 디제이로 활동을 했어요. 이 친구도 한 번 더 무대를 서는 게 좋으니까, 파티를 만들고 커머셜 한 힙합을 틀고 그것만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본인이 한계에 부딪힌 거예요. 사실 커머셜 한 힙합을 틀 수 있는 디제이들은 너무 많거든요. 거기서 좀 더 본인만의 색깔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안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요즘 본인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디제이들은 많은데, 쓸 만한 디제이들이 없다.”는 이야기가 참 많이 생각나요.


그 이야기는 인터뷰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 같네요. (웃음)

예를 틀어, 제가 어떤 베뉴에 음악 감독을 맡게 되었을 때, 저와 음악 색깔이 비슷한 음악을 능수능란하게 트는 디제이들을 찾는데, 그런 사람들을 잘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만큼 본인의 색깔을 브랜딩 하는 디제이들이 많이 없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죠. 특히 제가 좋아하는 하우스 장르에선 더 그런 것 같아요. 간혹 하우스를 틀 수 있는 친구들은 있는데, 트랩, 퓨처 같은 다른 장르 파티의 라인업에서도 만나게 되거든요. 저는 하우스만 몇 년째 플레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트는 게 너무 어려운데 그런 식으로 여러 장르를 동시에 하는 친구들이 ‘과연 얼마나 무대에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인 게 사실이거든요. 차라리 2~3년 정도밖에 안 되는 경력을 가졌더라도, 한 장르만을 우직하게 파고들면서 노력하는 친구를 제가 좀 더 가르쳐주고 서포트해주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도 그런 친구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마 다른 장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본인이 관심이 가는 디제이들을 찾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제가 예전에 ‘the house obsession’이라는 파티를 1년간 매달 진행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파티를 하면서 저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크루를 만들 계획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거든요. 매달 새로운 디제이들을 모집하고 파티를 하면서 수 십 명의 디제이들을 만났지만, 아쉽게도 제가 계속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파티를 열면 모객도 하고, 같이 열심히 홍보도 해야 하는 데 파티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그런 생각들을 잘못하더라고요. 항상 혼자 와서 음악만 틀고 가거나, 기껏해야 친구 1~2명 정도 데리고 오는 터라 파티 자체가 흥행도 안 되고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1년 정도 혼자 이끌어가다가 지치는 느낌도 들어서, 12번 채우고 끝내 버렸어요.


파티에 참석하는 디제이들이 그 파티의 흥행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사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제가 어떤 클럽에 레지던트 디제이로 소속되어 정기적으로 음악을 트는 상황이면 모객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지는 않아요. 그런데 파티를 만들어서 진행한다는 건, 별도 기획팀이 있지 않은 이상, 디제이들이 기획과 프로모션을 같이 해줘야 하거든요. 그런 게 다들 그런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어떤 파티에 게스트 디제이로 초대를 받으면, 적어도 지인 몇 명은 꼭 데리고 가거든요. 생각보다 그런 마인드가 부족한 디제이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보다 디제이들이 증가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데,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의 입장에선 어떠신가요? 일종의 압박감을 느낀다든지 그런 건 없으신가요?

별로 그렇진 않아요. 저는 저만의 색이 있고 그간 제가 쌓아온 경력이 있으니깐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가 가졌던 고집이 어느 정도 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은 디제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커요. 


오히려 하우스 디제이에 있어서는 좋은 디제이들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군요.

재미난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제가 2014년 겨울에 홍대 힙합 콘셉트의 라운지에서 음악을 튼 적이 있었어요.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힙합 디제이 씬이 2000년대 초반에 흥하다가, 2000년대 후반 EDM의 등장으로 많은 침체기를 겪게 돼요. 그러다 ‘쇼미 더 머니’가 나오고 2010년 중반부터 다시 힙합 클럽이 굉장히 흥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춰 많은 힙합 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무대가 갑자기 많아졌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힙합 음악을 틀 디제이들이 부족한 거예요. 결국 그때까지 묵묵히 본인의 음악, 그러니까 힙합 음악을 하면서 버티던 디제이들이 하루에 4-5타임을 뛰면서 많은 혜택을 얻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가를 또 한 번 느꼈고, 유행에 휩쓸려 다니다 보면 정말 이도 저도 안 되겠다는 것도 다시금 느꼈죠. 언젠가 하우스, 디스코 음악에서 다시 붐이 일 수도 있을 텐데, 그때까지 제가 꾸준히 활동해서 경력을 쌓고 있다면, 저도 그런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게 될 거라고 봐요.


아마추어, 직장인 디제이들도 새겨들으면 좋은 이야기네요.

예를 들면, 커머셜 한 음악을 하는 곳들은 막내부터 경력을 쌓아 올라가면서 본인만의 단단한 라인을 만들어 놓거나, 젊고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친구들이 디제잉을 배워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을 틀어주는 형태로 카테고리가 나뉘고 있는데, 회사 다니면서 디제잉하는 디제이가 그런 곳에서 본인을 어필하기가 많이 어려워진 거 같아요. 그것보다는 남들이 잘하지 않지만, 매력 있는 장르를 찾고 본인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실력을 쌓다 보면 분명 그 장르를 좋아하는 디제이들에게도 진정성 있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돼요. 그리고 운 좋게 본인의 주 장르가 유행을 하게 될 때 빛을 볼 수도 있겠죠. 단순히 디제이로 내가 몇 푼 벌겠다는 게 아니라 좀 더 길게 바라보고 능력 키울 수 있는 디제이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그리고 그런 장르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꾸준히 활동하는 것도 필요해요.


10년간 본인의 경험담에서 나온 일종의 정공법이네요.

이제 디제이로서 본인을 표현할 방법이 상당히 다양해진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인스타그램에 제 영상을 자주 올리거든요. 저는 조그마한 카메라를 사서 제가 디제잉하는 걸 매주 녹화를 해요. 그걸 출퇴근길에 틀어 놓고 모니터링을 해요. 저의 동작이라 든 지, 믹싱에 대한 느낌 등을 모니터 하면서 괜찮은 부분이 있으면 SNS에 올려서 다른 분들의 반응을 보는 편이죠.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느끼는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제 활동을 눈여겨보는구나 하는 거예요. (어드로잇조의 블로그 참조: adroitjoe.com)

대단하네요. 그렇게 영상을 찍고 모니터링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그걸 그렇게 정기적으로 하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파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영상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카메라를 사서 한 지가 5-6년 정도 지났네요. 그동안 찍은 영상 대부분을 저장해서 참조하고 있고, 간혹 행사 섭외가 오거나 하면 찍어 뒀던 영상을 바로 보내기도 해요. 단순히 믹셋을 보내는 것보다 영상을 보내는 게 더 효과가 좋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이 영상을 보면서 저만의 라이브러리 구축과 디깅에도 도움을 받아요. 그냥 최신, 트렌드에 맞춘 음악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예전 영상에서 만나는 그런 명곡들도 다시 꺼내서 지금 음악들과 섞어내면서 저만의 셋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거죠.


많은 디제이가 틀 음악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시네요.

적재적소에 본인의 음악을 잘 꺼내 쓰는 게 중요하거든요. 디제이를 하면서 흐름을 잡는 게 상당히 중요한데, 그 흐름이라는 게 나 혼자 만드는 기승전결의 흐름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읽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들어올 때 어떤 음악을 틀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음악은 또 어떻게 할지, 신나게 춤추고 있을 때와 사람들이 빠질 때는 또 어떤 음악으로 흐름을 만들어 갈지 등의 작전이 다 달라야 해요. 그리고 사람들의 연령대, 국적 등도 눈치껏 체크해야겠죠. 그런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서 가장 적합한 음악을 틀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 라이브러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해요. 무조건 최신곡을 튼다고 다 통하지 않거든요. 


저도 베뉴와 협업을 통해 많은 디제이를 무대에 세워본 적이 있는데, 많은 아마추어 디제이들이 관객과 호흡하는 부분에서 상당히 부담을 느끼거든요.

아마 대부분 본인이 틀 음악들을 가지고 미리 셋을 짜 와서 음악을 틀다 보니 더욱 그럴 확률이 있어요. 저는 음악을 틀러 갈 때 제가 어떤 음악을 틀지 정하지 않고 가는 편이에요. 미리 현장에 도착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읽은 다음에 무대에 올라가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거죠. 예를 들어 사람들이 무대로 나와 춤을 추려고 하면, 조금 더 신나고 알 만한 곡들을 몇 곡 던져 줘요. 그리고 사람들이 무대로 나와서 놀기 시작하면 음악을 조금 죽이죠. 그래야 오랫동안 무대에서 놀 수 있거든요. 그 순간 너무 강하게 달리기 시작하면 관객들이 얼마 못 가 지치고 무대를 떠나 버리거든요. 이렇게 디제이가 무대의 흐름을 읽고 주도해가야 해요.


디제이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요즘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긴데, ‘내 개인적인 목표는 한 주도 쉬지 않고 매주 디제이를 하는 거야.’라고 해요. 실제로 저는 몇 년째 제 스케줄을 매주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어요. 한 주라도 쉬게 되면. 플레이리스트가 제 눈에 안 들어오는 게 느껴져요. 내 머릿속에서 어떤 폴더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 자동으로 떠올리고 현장에서 틀어줘야 하는데, 매주 디제잉을 안 하면 헤매기 시작해요.


현장감이 떨어지는 게 스스로 느껴지는 거군요?

그렇죠. 클럽에서 막내 생활부터 해서 레지던트 디제이로 자리 잡고 활동하는 분들이 노련하고 잘할 수밖에 없는 게, 매주 그 현장 상황을 보는 걸 반복하다 보니 그게 몸에 익어버리는 거죠. 그런데 한두 달에 한 번 디제잉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틀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소수의 사람 앞에 서게 되더라도 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해야 성장할 수 있겠죠.


본인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디제이가 있다면요?

DJ 4 Play 요.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글로브 라운지 음악 감독을 맡고 계세요. 하우스 쪽으로는 서울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수준을 가진 분이죠. 제가 누구 앞에서 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 아닌데, 유독 이분 앞에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웃음) 제가 글로브 라운지에서 처음 트는 날에 아마 4-5번 정도는 지적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저도 나름 스테이지를 읽으면서 음악을 트는데, 음악 감독으로서 그림은 또 다른 거잖아요. 그날 하루 전체 타임 테이블도 보고, 그 순간 현장의 분위기도 점검해야 되고, 굉장히 세심하게 분위기를 챙기시는 편이에요. 저도 그 요청에 따라 음악을 조율하고, 또 그분에게 인정받으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는 느낌을 받아요. 씬에서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감사할 따름이죠. ‘본인 플레이 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업장 분위기 파악하라’고 하시고, ‘앞선 디제이의 레코드 박스 히스토리 박스를 보면서 리스트에 겹치지 않게 음악을 틀어 달라’고 요청하세요. 이런 미션들을 해쳐 가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더 연구할 수 있었고, 저만의 라이브러리를 쌓을 수 있었다고 봐요. 이런 경험들이 더 쌓이면 저와 다른 디제이들을 차별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진입 장벽이 아닐까요? (웃음)

아마추어 디제이들에게 좀 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매주 음악을 틀 기회를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매주 무대에서 음악을 틀어야만 강제로라도 본인 라이브러리 업데이트를 할 수 있거든요. 지난주와 똑같은 음악을 똑같은 곳에서 틀 순 없잖아요. 새로운 음악을 틀어야 하므로 더욱더 디깅을 하게 되고, 공부하게 되죠. 클럽에서 상주하는 디제이들은 매주 음악을 틀기 때문에 오픈부터 마감까지 굉장히 노력하거든요. 회사에 반 걸쳐 있으면서 한 달에 한두 번 디제이 하면서 그 친구들과 같은 무대에서 서서 같은 명성과 실력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건 굉장히 무리수라고 봐요. 현업 디제이들의 절반이라도 따라가려면 나도 그들에 못지않은 시간 투자와 노력,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꼭 페이를 위한 디제잉이 아니라, 무대가 더 필요한 사람이라면 본인이 틀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서 계속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예전에 소넨 덱이란 곳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오픈 덱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서 보면 늘 하던 사람들만 와서 하더라고요. 그런 기회를 만들어줘도 매주 가서 적극적으로 트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요. 정말 하다못해 작은 술집 같은 곳에, 본인의 장비를 가져가서 주말마다 음악을 틀겠다고 자원해서 음악을 트는 친구도 본 적이 있어요. 그런 기회라도 만들어서 치열하게 도전해야 다음 단계가 열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왜 나는 기회가 없냐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사실 제가 인터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디제이로서 성장’에 대한 부분이거든요.

디제이로서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게 라이브 셀렉션이라고 봐요. 셋을 짜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한 곡 한 곡을 엮어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믹싱도 자연스럽고 전체적인 흐름과 스토리도 만들고요. 그걸 완성하기 위해선 매주 무대에서 틀어야 해요. 셋 하나 만들어 놓고 매주 똑같은 걸 틀고 있을 수는 없거든요. 아니면 매주 1개씩 셋을 짜서, 일 년 52주 동안 52개 믹셋을 만드는 도전을 하는 것도 좋겠죠. 라이브 셀렉션을 통해 계속 곡을 바꾸는 연습을 해봐야 현장 대응력이 생겨요. 사실 처음에 믹셋을 짜면 흐름도 좋고 믹싱도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순 있는데, 그걸 라이브로 해보라고 하면 꼬이기 시작하거든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그 연습을 치열하게 해야만 성장할 수 있어요. 하다못해 플레이 스케줄이 없다고 해도, 내가 디제이라면 매주 주말에 클럽에 나가야죠. 매주 나와서 요즘 어디가 핫하고 어떤 디제이가 어디서 어떤 음악을 틀고 있는지, 씬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래야 나도 뒤처지지 않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데, 많은 친구들이 주말에 디제잉 스케줄 없으면 집에서 그냥 쉬고 있어요. 저도 스케줄이 없는 날이 있으면 이태원에 클럽 5-6개씩 돌아다니면서 인사도 하고 하면서 현장 구경하고 있거든요.


역시 ‘남과 다른 일을 해야, 남과 다른 차이가 생긴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네요.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웠는데, 실제로 현업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봐도 그렇다는 게 참 아쉬울 따름이네요.

저는 정말 저와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고 싶고, 제가 성장을 하려면 제가 혼자서 발버둥 치는 것보다는 위, 아래가 함께 뭉쳐서 서로 끌고 가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크루의 개념을 넘어서, 서로 음악적 네트워킹도 하고 여기저기 추천해줄 수도 있는 그런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금씩 생기는 거 같긴 한데 여전히 너무 부족해요. 아마추어분들도 좀 더 다양하게 부딪혀보고, 우리나라에 가장 잘하는 디제이 크루, 파티들을 찾아다니면서 얼굴도장 찍고 몇 년간 노력하면서 본인들만의 성장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결국 본인들에게 키가 있는 거네요.

그렇죠. 솔직히 디제이들이 너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활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갑자기 모르는 친구 한 명을 뽑아서 키워줄 이유가 없는 거죠. 본인만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저도 그렇지만 더 많이 활동하고 어필해야 한다고 봐요.


전업 디제이에 대한 욕심은 없으신가요?

전혀요. (웃음) 만약 제가 디제잉만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지금 받는 연봉에 3배 이상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사실 회사에 다니는 건 월급 이외에 고용 안정성이나 복리 후생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전업으로 디제잉을 한다는 건 연예인 디제이가 되지 않는 한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프로듀싱에 대한 욕심은요?

지금은 디깅 하기에도 바빠서 당분간은 힘들 거 같아요.(웃음) 물론 유럽에 있는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그쪽에서 디제이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본인이 발매한 곡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프로듀싱 자체가 가장 본인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 그런 거 같고, 좀 더 아티스트 적으로 바라보는 거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긴 쉽지 않다고 보고, 노력한 만큼 이득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저는 플레이 디제이로서 맡은 바를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큰 거 같아요. 


그러면 플레이 디제이로서 꿈이 있다면요?

계속 꾸준히 활동하면서, 이태원의 한 업장의 음악 감독을 맡아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그 공간을 꾸리고, 가능성 있고 좋아하는 디제이들 불러서 합당한 페이 챙겨 주면서 계속 멋있는 분위기를 내뿜을 수 있는 업장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은 있어요. 현실적으로는 쉽진 않겠지만요. (웃음)

10년 차 디제이로서, 요즘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하시나요?

사실 요즘은 좀 불안감이 많이 들어요. 특히 디제이들과 어울려서 파티를 하다 보면 관중들보다 디제이들이 더 신경이 쓰여요. 그리고 선배 디제이들보다 저보다 더 어린 디제이 친구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여요. ‘저 사람 유명하다는데, 어디 한 번 얼마나 트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제 무대를 지켜보는 친구들에게 ‘내가 정말 충분한 만족감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커지는 거 같아요. 이번 파티, 무대는 어떻게 다르게 할까?라는 생각이 커지다가 일종의 불안감까지 간 거 같아요. ‘여기서 내가 실수를 한 번 해서, 그게 제가 지난 10년간 쌓은 걸 한 번에 무너트리진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퇴물로 불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나 할까요? 이를 막기 위해 매 무대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올라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언제 어디서든 누가 내 무대를 봤을 때 완벽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파티 위주로 활동을 했던 예전에는 이런 중압감은 없었는데, 이제 클럽에서 고정적으로 트는 상황까지 되다 보니, 직업적인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네요. 물론 무대에서 음악을 트는 건 예나 지금이나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그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는 게 다른 거겠지만요. (웃음) 


직장을 다니면서 디제잉을 꾸준히 한다는 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는 이게 삶의 큰 활력소예요. 몸은 좀 피곤하지만, 회사 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 풀고 사람들 만나고 다음 한 주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활동이랍니다. 


언제까지 디제잉을 하고 싶으신가요? 따로 정해 놓으신 기간이 있으신가요?

저는 제 환갑잔치 날에도 디제잉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웃음) 저는 가능할 때까지 최대한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도움을 받으신 분들은 의무적으로라도 꼭 어드로잇 조의 음악을 들으러 클럽에 방문하시길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웃음)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협조해주신 디제이 어드로잇 조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퇴근 후 디제잉 인터뷰 시리즈는 앞으로 씬의 다양한 분들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전하는 창구로서 더욱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퇴근 후 디제잉] 페이스북 그룹: https://www.facebook.com/groups/afterworkdj/

[퇴근 후 디제잉]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channel/UCFEx0YLWzEY3tYgzbFLBwCA/featured

디제잉 가이드 북, [오늘부터 디제잉] 구매처 : Yes 24/교보/반디앤루니스/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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