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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Jan 31. 2019

멸공의 횃불, 허 조교

장규일의 '퇴근 후 디제잉' 인터뷰 #07

처음 SNS에서 허 조교를 만나고 그 콘셉트의 아찔함에 걱정부터 앞섰다. 한국에서 그것도 군인, 조교의 콘셉트를 가진 디제이라니. 몇 달 정도는 이슈가 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그런 캐릭터로 보였다. 이런 내 예상과 다르게 2년이 넘도록 허 조교는 각종 축제와 클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특유의 거수경례와 군가 믹싱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군대로 치면 벌써 전역하고 남을 시간이 흐른, 허 조교를 만났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대학 전공이 컴퓨터 공학이었고, 복수 전공으로 연극 영화과를 선택했다고 나와있던데, 어떤 이유에서 그런 선택을 했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무대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거 같아요. 무대에 올라갔을 때, 춤을 추기도 하고 개그도 하고, 그때는 쌍방향보다는 일방적으로 말하는 수준이긴 했지만 즐거웠죠. 시간이 지나 아이러니하게 군대에서 조교를 맡은 후에 다시 그런 기회가 찾아왔어요. 수백 명의 훈련병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기합을 주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스스로 굉장히 큰 보람을 느꼈어요. 제대 후에 연극/연출 쪽에 관심이 생겼고 그쪽으로 부전공을 하게 됐죠. 무대 연출, 연기 배우면서 좀 더 제 내면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적성에 맞아서 그런지 전공보다 성적도 좋았고, 수업도 상당히 재미있게 들었죠. 


그러면서 허 조교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나요?


대학교 시절이 아마 제가 허 조교라는 캐릭터를 실험할 수 있었던 최적의 조건이었어요. 허 조교라는 캐릭터 자체가 제가 만든 가상의 인물인데, 학교 축제, 체육 대회와 같은 큰 행사에 참여하면서 제가 해보고 싶었던 모든 걸 다해봤어요. 처음에 전투복이랑 선글라스 끼고 올라가서 뭘 해보겠다고 했더니 다들 말리더라고요. 모두가 반대하는 걸 보니 밀어붙여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죠. 군대 시절 훈련병을 상대로도 먹힌 거라서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거든요. 군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한 마디로 미친 짓을 했죠. 그렇게 실험을 해보면서 ‘이게 사회에서도 먹힐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한 거죠.

대학을 졸업한 뒤 공연기획사에 취직했다고 들었는데, 그쪽 생활은 어떠셨나요?


마치 정해진 것처럼 졸업 후에 공연 기획 쪽 회사로 들어갔죠.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많이 달랐어요. 제가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울 기회는 적었고, 돈을 제때 못 받는다 던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해서 고생시키는 좋지 않은 경험을 하기도 했죠. 세월호 참사 이후 행사 시장 전반이 안 좋아지면서 당시 일하던 회사 상황도 많이 안 좋아지기도 하고, 사람한테 질리기도 해서 퇴사를 했고 이직도 했었는데, 그것도 잘 안 풀려서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죠. 몇 달간 누워서 시체처럼 멍 때리고 놀았어요. 점점 초라해지기도 했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걸 괜히 공연한다고 해서 이런 고생을 했다 싶기도 했죠. 부모님께 면목도 없었고요. 집에서 마냥 놀고 있으니 보다 못한 아버님께서 ‘나 같으면 신문 배달이라도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새벽 우유배달을 시작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디제이를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우유 배달을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스스로 질문을 했어요. ‘내가 누굴까?’,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 나는 뭘 좋아할까?’ 이런 걸 계속 질문하면서 파고들어가 보니 대학 시절이 즐겁게 놀던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그동안 제가 관심 있게 보던 여러 아티스트가 떠올랐고, ‘꼭 큰돈을 들여 무대를 만들고 연출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구나, 나 혼자서도 퍼포먼스를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죠. 대학 시절에 제가 자주 연출했던 것들도 대사 없이 음악과 퍼포먼스를 연결하는 게 많았거든요. 그 순간 ‘디제잉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제잉을 배워서 뭔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이거 아니면 제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배달비를 모와 디제잉 레슨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빨리 무대에 서고 싶어서 잔재주를 많이 부렸는데, 기본기도 안 되면서 무슨 짓이냐며 선생님께 혼도 많이 났죠. 레슨이 끝나갈 때까지 이펙터 한 번 못 만지게 하셨어요. 한 번 정도는 괜찮았을 텐데 말이죠. 하하하. 그래도 그때 기본기를 제대로 배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제대로 가르치셨군요.(웃음)


그렇죠. 디제잉을 배운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때 저도 뭔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 지인 중에 해외에서 파티를 만들고 활동하시던 형님 한 분이 계셔서, 허 조교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자리에서 엄처 까였어요. 그 형님이 여전히 제 안티 1 호세요. 서포터 1호 시기도 하시고요. (웃음) 그 형님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파티 장소를 구하고, 사방에서 관객을 잡아와서 첫 파티를 진행하게 되었죠. 그 이후에 여기저기 클럽을 다니면서 파티를 제안하기도 하고, 저를 피알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제 나이가 20대 후반이었는데, 전업 디제이로 시작하는 게 상당히 늦은 상황이기도 했고, 인맥도 하나도 없는 제가 갑자기 디제이를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어요. (웃음)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 디제이를 생각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굉장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시작했죠. 아무래도 활동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료가 필요했기에 정말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앞뒤 안 가리고 다 들이댔죠. 제 대학 선배 중에 대학 파티와 지역 행사를 기획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정말 그분을 통해 초반에 활동 경력을 쌓기 시작했죠.

허 조교라는 콘셉트, 운 좋았던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나요?


물론 운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허 조교는 절대 혼자서 한 게 아니에요. 저를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안티 1호 형님을 포함해서, 한 편으론 저를 그렇게 까면서도, 뒤에서는 저를 계속 도와주셨어요. (웃음) ‘너는 음악적 색깔을 추구하는 것보다, 관중들이 네게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는 말씀을 항상 강조하셨죠. 저도 허 조교라는 콘셉트를 하면서 듣게 되는 오해, 예를 들면 제대로 틀지도 못한다, 콘셉트충이다 와 같은 말을 듣긴 싫었지만, 그 보다는 생존이 우선이었기에 주변 분들의 조언에 더 귀를 기울였죠.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시느냐 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그런 활동 덕분에 확실한 브랜드를 가지게 된 거라고 봅니다. ‘허 조교’라는 단어만 듣고도 어느 정도 연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라운 성과죠. 갑자기 허 조교가 유명해지다 보니 일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배가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뭔가 반칙 같기도 하고, 본인도 저렇게 했으면 당연히 뜰 수 있었다는 망상을 하기도 했을 거고요. (웃음)


하하하하 (웃음)


활동 초기에 모 평론가가 당신의 콘셉트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요. 저도 허 조교를 그동안 지켜보면서 디제이를 잘하는 사람인데, 일부러 저런 콘셉트를 하는 건지 실제 허 조교에 대해 상당히 궁금했었습니다.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느껴지는 모습은 허 조교라는 콘셉트에 너무 기대지 않으려 노력하는 느낌이네요. 허 조교라는 콘셉트 때문에 음악적, 퍼포먼스적으로 한계가 있진 않나요?


처음에는 제 음악적 취향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 강했어요. 그런데 저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허 조교의 퍼포먼스’잖아요. 그걸 못 보여주고 제 취향만 강조하는 건 오히려 민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주변에서도 일단 돈을 받고 행사에 서면, 프로라는 생각을 가지고 확실히 관객이 원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늘 제게 강조했거든요. 욕먹는 것에 겁먹지 말고, 좀 더 대중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자라고 결심했죠. 그런 노력이 쌓이다 허 조교 특유의 경례 퍼포먼스가 나왔어요. 그리고 해당 행사 영상을 SNS에 올리고, 과감하게 홍보를 했어요. 당시 제 페이지 라이크 숫자가 700여 명 수준이었는데, 해당 영상이 올라간 후에 수 천명 수준으로 반응이 생기더라고요. 댓글과 좋아요를 보면서 ‘살아남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지만, 그동안 저한테 들리던 비난이나 잔소리가 싹 들어갔어요. (웃음) 그 이후 홍대 베라 클럽에서 섭외 연락이 왔어요. 예전에 제가 가서 사정사정하던 곳이었는데, 제가 섭외를 받다니요!


전설의 시작인가요? (웃음)


베라에서 파티를 진행할 때 클럽에 군복을 입고 오라고 하고, 군복을 안 입은 남자 손님들을 혼내는 조교 콘셉트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타임 때 군가를 틀어서 분위기를 잡아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실제로 ‘멸공의 횃불’을 틀었죠. 그 이벤트가 경례 퍼포먼스 다음으로 2차 허 조교의 붐업을 이끌었어요. 당시 소셜 반응을 보면서 허 조교라는 캐릭터의 퍼포먼스가 대중들을 클럽과 행사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리고 좋은 반응만큼이나 악플도 달렸는데, 그냥 삭제하거나 차단하는 게 아니라 허 조교의 캐릭터를 살려 악플에 관등성명을 요청하기 시작했죠. 저는 지금도 악플이 달리면 어떻게 잘 살려볼까 늘 고민해요. (웃음)

활동을 해오시면서, 현역에 계시는 디제이 분들과도 자주 만나게 되지 않나요?


물론이죠. 허 조교라는 콘셉트가 상업적이고 가벼운 음악을 하는 걸로 선입견이 생겨서 그냥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그래도 활동하면서 좋은 분들도 많이 알게 만나게 되었고, 제 디제잉 실력 자체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공연을 가게 되면, 대중들을 만족을 시키면서, 동시에 디제잉과 믹싱에 대한 맛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욕심이 늘 있거든요. 물론 사업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그런 것보다는 좀 더 대중적으로 가는 게 맞지만 그래도 제 믹싱이 좋았다는 평을 들었을 때 제일 뿌듯하긴 해요. 그간 많은 활동을 하면서 많은 디제이 분들과 연을 맺었는데, 특히 명월관 파티를 통해 알게 된 인베이더스 분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분들 1주년 파티 때 라인업으로 초대받고, 정말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음악과 허 조교로서 모습을 같이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아무래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벨런스 조절이 필요하겠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허 조교 또는 디제이로서 제가 누군가에게 미흡할 수 있고, 욕을 할 수도 있어요. 저나 그분의 문제라기보다는 서로 보는 지점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허 조교라는 캐릭터의 성장 속도보다 소비 속도가 더 빠르다 보니 그런 비판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하고 있어요.


처음 이 콘셉트를 잡고 시작했을 때 얼마나 오래 활동을 할 걸로 생각하셨나요? 처음에 신기해하던 사람들이 점점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진부하다고 할 텐데,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없나요?


처음에 시작했을 때 그런 부분에 대해선 전혀 고민하지 못했어요.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아마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일단 시작해서 살아남자 라는 생각만 있었어요. 앞으로 제가 기본기가 잘 갖춰진 진짜로 성장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빠르게 알려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30대로 접어들다 보니 언제까지 병사할 거냐?라는 이야기는 자주 듣죠 (웃음) 종종 어린 친구들이 자기 나이 또래인 줄 알고 까부는 경우도 있는데, 물론 군번 물어보면 다 나와요. (웃음)


최근 곡 작업을 시작하신 걸로 아는데요?


지금 제가 어디를 간다고 해도, 그간 쌓아온 ‘허 조교’ 캐릭터 자체만 소비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무대가 다 비슷하게 보이고, 허 조교는 이제 끝났다는 말도 들려요. 재미있는 건, 제가 허 조교를 처음 시작한다고 했을 때, ‘이건 절대 안 돼!’라는 말만 하더니, 그다음엔 ‘이 콘셉트 얼마 안가!’ 이러고, 이제는 ‘얼마 안 남았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웃음)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한데, 나이, 상황, 남 눈치 다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해요. 남과 경쟁을 하면 답이 없고요. ‘올해 허 조교가 작년보다 더 성장했는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노력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답니다. 허 조교라는 캐릭터의 지속은 결국 허 조교 자체의 성장과 궤를 함께 하는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2~3년 정도 안에 곡을 5~6곡 정도 만들 생각이에요. 아직 제대로 된 작업실도 없긴 하지만요. (웃음) 메인 무대에 못 서면 허 조교라는 캐릭터도 전혀 힘을 쓸 수 없거든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저도 저만의 곡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래도 군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세계 여러 곳의 군가를 듣거든요. 그중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군가가 되게 웅장하고 체제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거든요. 굉장히 의미심장하고 국가 비전을 강조해요. 이에 반해 자유민주주의 쪽은 굉장히 단순하고, 고양시키는 느낌이 강하고요.


군가를 디깅 하시는 거네요. (박장대소)


그렇죠, 저한테는 중요한 거예요. 공수부대 구보할 때 트는 음악들을 하드나 정글 테러 등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더라고요. 그걸 콘셉트 상 하실 수 있는 분들도 많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거든요. 이런 음악들이 너무 좋은데, 제가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해병대 친구들한테 메시지가 많이 와요. 해병대 군가도 많이 해달라고. (웃음)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긴 하는데, 하나씩 하나씩 해봐야죠. 그런데 정말 찾아보면 정말 좋은 군가들이 많아요. 여러분들도 꼭 찾아서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역시 콘셉트가 주는 독특한 맛이 있네요.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 이분들도 결국 대중인데 이 분들을 언더/서브컬처로 끌어올 수 있는 방법 중 군가 리믹스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까지 하고 있어요. (웃음) 제가 이런 음악들을 멋지게 살려서 이슈화 시킬 수 있는 실력이 된다면, 한국 디제이 씬에 0.01%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해봅니다.


생각보다 치밀하게 움직이시는 느낌이랄까요? 허 조교에 본인이 심취해서 점점 더 파고들어가시는 거 같네요. 허 조교의 성장을 위해 본인이 노력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생활을 하시면서 지치는 부분은 없으신가요?


쉽지 않죠. 저도 최근에 직장을 얻어서 말 그대로 퇴근 후 디제잉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간 같이 일했던 분들 챙겨야 하는 책임감도 있죠.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죠. 지금 허 조교라는 캐릭터를 좀 더 띄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는데, 내실 없이 인위적으로 하게 되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두 가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결국 내실을 채우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본인이 꿈꾸는 무대가 있나요?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어요. 저는 음악도 분명히 시각적으로, 퍼포먼스 적으로 많이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UMF 마이애미에서 멸공의 횃불을 트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웃음)


허 조교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요?


퍼포머. 아니 그냥 허 조교인 거 같아요. 사족을 붙이면 기획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대치가 높아질 텐데 스스로, 남들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생각보다 부담감은 없는 거 같아요. 우유 배달하면서 인생의 밑바닥을 한 번 찍고 와서 그런지, 밑바닥에 닿았는데, 생각보다 아프지 않더라고요. 그다음에도 몇 번 더 넘어졌었는데, 그렇게 아프지 않았어요. 물론 의식은 되지만 그게 제 활동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아요. 좀 더 재미와 진정성을 같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언더그라운드도 일종의 브랜드로 자리한 시대, 너나 할 것 없이 멋있고 힙스러움을 자처하는 이 시대에 욕먹을 각오로, 스스로 상업적인 콘셉트로 우직하게 군가를 뿌려대는 허 조교. 그의 성장이 앞으로 한국 디제이 씬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될지, 오래도록 유심히 살펴보고 싶다. 혹시 아나? UMF 마이애미 무대에서 정말로 멸공의 횃불이 울려퍼질지...


인터뷰에 협조해주신 허 조교 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퇴근 후 디제잉 인터뷰 시리즈는 앞으로 씬의 다양한 분들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전하는 창구로서 더욱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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