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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수 Oct 24. 2021

당신의 한때










 스물셋, 그녀는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터미널에 도착하면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터미널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그녀는 아무런 빛깔도 없는 얼굴로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운이 좋으면 몇 분만에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어떤 때는 이십 분이 넘게 기다리게 될 때도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새로 나온 노래를 듣는다가, 스타킹에 올이 나가지 않았나 한 번씩 다리를 확인한다가, 때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 모두가 같은 것을 기다릴 때마다 그녀는 낯선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원하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숨이 찼다.


 기다림 끝에 버스가 멈춰 서면 사람들은 저마다 내려놓고 있던 짐을 챙겨 들었다. 그녀 역시 손에 든 가방을 다시 한번 그러쥐고 버스에 올라탔다. 타자마자 빈자리를 찾그녀는 대개 창가 쪽에 앉았다. 복도 쪽에 앉을 때면 어딘가 발가벗겨진 기분처럼 민망했다. 겨우 자리를 찾아 창가 쪽에 앉으면 그녀는 익숙한 듯 이어폰을 끼고 턱을 괴고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 기사가 마이크를 들어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렸다. 휴대폰은 진동으로 할 것, 통화 소리를 크게 내지 말 것, 그리고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줄 것. 마지막 말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안전벨트를 맸다. 철컥하고 저마다의 안전을 챙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그건 어떤 의지였다. 결국에는 살아남겠다는 의지.


 그리고 단 한 사람, 그녀만이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 그때쯤 그녀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안전벨트를 매는 사람들과는 정반대 되는 감정의 이야기만이 가득했다. 우연한 사고라도 일어나 이 삶을 영영 끝내고 싶다는 말도 있었다. 스물셋의 그녀는 스스로 죽기에는 겁이 많았다. 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타인에 의한, 어떤 상황에 의한 사망이었다. 그녀는 사십 분 동안 버스 안에 있어야 했지만 끝내 안전벨트는 하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몇 달쯤 계속되었다.


 어느 날도 늘 그랬듯이 창가 쪽에 앉은 그녀는 푸석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안전벨트는 여전히 풀어헤쳐진 채였다. 도로 위에 지나다니는 차들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어떤 장소'가 너무 많다는 게, 그래서 저 사람들이 전부 닿아야 할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그녀 역시 목적지는 있었지만 목적은 없었으므로. 숨이 찬 기분으로 저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고 있을 때였다. 웬 운구차 같은 차 한 대가 버스 옆을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게 운구차였는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장례와 관련된 차였다. 그녀는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제 옆으로 운구차가 지나가는 것이 꼭 어떤 예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창가에 얼굴을 기댄 채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어렸을 때부터 우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어했으므로 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 옆을 달리는 운구차는 그녀에게 어떤 환상처럼 느껴졌다. 제가 왜 울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몇 달 동안 겨우 한 일이라고는 버스를 기다리고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부디 언젠가는 사고가 일어나기를, 나만 살아남지 않기를.


 그녀는 다른 사람들도 저 운구차를 발견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녀에게 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누구를 실었는지 모를 운구차는 길의 갈래에서 헤어지고, 그녀도 울음을 천천히 멈췄다. 그녀는 몇 달만에야 제가 죽고 싶어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마치 그 짧은 순간 동안 한 번 숨이 멎었다 돌아온 사람처럼 그녀는 먹먹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안전벨트 해요, 아가씨.


 옆에 앉은 중년 여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가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본 듯, 얼른 안전벨트를 하라며 저와 그녀 사이에 끼인 안전벨트를 잡아당겼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든 그녀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안전벨트를 끼웠다. 몇 달만의 일이었다. 물속 깊은 곳에 빠졌다가 구해진 사람 같은 젖은 얼굴로, 그녀는 오래오래 제 허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겨우 이 끈 하나에 '안전'이라는 말이 붙었다는 것이 하잘 것 없이 느껴졌다. 그러나 모두들 그 끈을 두른 채 앉아 있었다. 각자의 표정으로. 그녀는 어쩌면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의 끈을 붙잡고 매달리듯 사는 거라고.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사십여분을 내달리는 버스 안에서 깨어 있었다. 내릴 때쯤 제 손으로 안전벨트를 푸는 순간 더는 이 일이 어려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안은 채로.


 스물여덟,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기 위해 버스에 탄 날이었다. 창가 쪽이든 복도 쪽이든 자리는 상관없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가 늘 그랬던 것처럼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던 것처럼 익숙하게 안전벨트를 했다. 그리고는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았다. 흘러나오는 노래 사이로 마이크를 든 버스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 달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그제야 허둥지둥 안전벨트를 하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그녀는 눈을 떠 제 허리에 둘러져 있는 끈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모든 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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