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수 Nov 11. 2021

단편 : 백이십 분 동안의 현이씨









 현이씨는 가까스로 집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에 일을 구했다. 집에서 걸어가면 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이었으나 현이씨는 한 번도 그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아예 산부인과라는 곳을 간 적이 없었다. 주위에서 이십대 중반만 되어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탈이 없어도 몇 달에 한 번쯤은 가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현이씨에게 그곳에 가는 일은 영 멀게 느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생리도 주기가 늦어지면 늦는 대로, 빨리 하면 빨리 하는 대로 그냥 두었다. 현이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건 현이씨에게 있어 귀찮은 일이었고, 현이씨의 삶에 있어 그닥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이씨에게는 오로지 오늘을 살 수 있는 약간의 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현이씨가 산부인과에서 맡은 일은 청소였다. 병원은 아홉 시에 문을 여는데 문이 열기 전 새벽 여섯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현이씨는 병원을 청소해야 했다. 병원은 4층에서 10층까지 있는 큰 건물이었다. 청소를 하게 된 첫날, 청소 반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던 중년의 여성은 각자 청소를 할 곳과 지켜야 할 사항을 이야기해줬다. 현이씨는 4층과 5층을 맡았다. 4층에는 로비와 휴게실, 진료실이 있었으며 5층에는 여러 검사실이 있었다. 다들 몇 가지 당부사항을 듣고 흩어지려는 때 반장이 현이씨를 불러 세웠다. 4층을 청소할 때는 로비와 휴게실만 청소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몇 명의 의사들이 진료를 보는 각각의 진료실은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거기는 현이씨 같은 사람이, 아니 현이씨 같은 신입이 청소하는 곳이 아니라고 덧붙이면서. 현이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4층에 남겨진 현이씨는 문이 닫힌 여러 개의 진료실을 바라보았다. 자기 같은 사람은 청소할 수 없는 곳. 그렇다면 저 공간을 청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문득 궁금했다. 어느 공간이든 제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현이씨는 잠시 숨을 삼켰다.


 청소는 생각보다 수월 했으나 반장은 꽤 깐깐한 사람이었다. 4층에서 10층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공간을 청소하고 있든 말든 큰 소리로 불러 제 눈에 거슬리는 것을 바로 치우게끔 했다. 현이씨는 청소를 하러 온 사람들 중에 가장 젊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반장은 대부분 현이씨 옆에 붙어서 그녀가 청소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다. 4층 청소를 끝내고 5층으로 올라가려는 때, 문득 현이씨는 제 옆에서 서성거리는 반장에게 물었다. 진료실은 어떤 사람들이 청소를 하느냐고. 그 물음에 팀장은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거기는 자기가 한다고 말했다. 자기는 여기서 칠 년 정도 일을 했으며 그래서 저런 예민한 곳은 반장인 제가 맡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고. 문제가 생기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별것 없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현이씨는 별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5층으로 올라갔다.  


 5층 복도 벽에는 산모들을 위한 따뜻한 문구들이 프린트되어 붙여져 있었다. 간혹 액자가 걸려 있기도 했는데 액자에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애기를 안고 있는 부부의 사진이나 유모차를 끄는 부부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현이씨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현이씨는 새삼 누군가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장소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저 역시 아주 오래전 이런 곳에서 태어났을 거라는 사실이 어색했다. 검사실은 생각보다 청소할 것이 많이 없었다. 혹시나 기계를 잘못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기계는 건드리지 말고 바닥이나 쌓인 먼지만 닦으면 끝이었다. 반장은 장난처럼 웃으며 그 기계가 망가지면 현이씨가 다 보상해야 되는 거라고 떠들어 댔다. 현이씨는 제가 겪어보지도 못한 것,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 일이 없는 것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생각에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청소는 꽉 채워서 두 시간이 걸렸다. 청소를 끝내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조금 옷을 가볍게 입고 와야겠다고 현이씨는 생각했다. 병원을 나섰을 때도 시간은 아직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어떤 거북한 생명력이 넘치는 곳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현이씨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청소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 시점에 반장은 현이씨를 따로 불렀다. 청소를 하는 폼이나 손끝이 야무져서 마음에 든다는 말로 시작하면서 오늘 진료실 청소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진료실 청소는 여덟 시 오십 분까지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현이씨는 오십 분을 더 일을 해야 하는 셈이었다.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오늘 바로 현금으로 삼만원 정도를 줄 수 있다는 말에 현이씨는 그러겠다고 했다. 반장은 진료실을 청소하는 내내 현이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제일 어려서 일도 대충 하고 꼼꼼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말과, 제가 하루 휴가를 쓰게 되면 대신 진료실 청소를 부탁한다는 말도 함께였다. 어떤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던 진료실 청소는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그저 똑같이 바닥을 쓸고, 산만하게 어질러져 있는 펜들을 통에 꽂고, 마른 수건으로 물건의 먼지를 털어내는 게 전부였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반장은 봉투에도 넣지 않은 만원 짜리 세 장을 현이씨에게 건넸다. 현이씨는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십분 후면 병원 문이 열릴 것이었고 곧 환자들이 밀려들 것이었다. 그 소란스러움을 마주하기에는 숨이 찼다. 아홉 시가 되기 오 분 전쯤 현이씨는 정수기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로비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배가 부른 여자들이었다. 현이씨는 배가 부풀어 오른 여자들의 모습을 꿈처럼 바라봤다. 순간 오랜만에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그대로 눈길을 돌리려던 때였다.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굳은 표정으로 로비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현이씨 뿐만 아니라 거기에 앉아있던 몇몇의 여자들이 전부 그들을 바라봤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그 여학생은 엄마 손에 매달려 소리 없이 울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녀에게 일어난 일을 사람들은 감히 쉽게 짐작했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여학생은 엄마가 접수를 하는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현이씨는 생각했다. 여기는 무언가가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곳이 분명하다고. 어떤 순간은 선택의 여지없이 결정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 사실은 현이씨에게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청소할 때 입는 앞치마를 아무렇지 않게 구겨서 손에 들고 나온 현이씨는 병원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 여학생이 아직도 울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이 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했다. 현이 씨는 아무것도 없는 제 빈 배를 쓸어내렸다. 그러다 순간 밀려오는 견디지 못할 토기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는 너밖에 되지 못했기 때문에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고 말하던 죽은 조부의 말이 왜 갑자기 생각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현이씨는 오늘도 먼지 하나 없이 청소했던 로비와 검사실을 떠올렸다. 로비에 앉아 있던 여학생은 곧 여러 검사실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현이씨는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기척 없이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뜨면 제가 청소를 하다 잠시 누웠던 그 검사실의 침대일 것 같았다. 그 어색하고 차가운 바닥. 현이씨는 한 시간을 꼼짝 않고 누워 있다가 팀장에게 전화를 걸고는, 일을 관두겠다고 했다. 산부인과에서 청소일을 한 지 한 달 하고도 반이 넘어가던 때였다.


 일을 그만둔 다음날 바로 월급이 들어왔다. 월급이라 하기도 민망한 액수였다. 현이씨는 이 돈으로 월세를 내고, 밥을 사먹고, 미뤄놨던 몇 권의 책을 살 것이었다. 오랜만에 느지막이 일어난 현이씨는 대충 밥을 챙겨 먹고 밖을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긴 곳은 병원이었다. 한달이 넘도록 바닥을 닦고, 쓸고, 먼지를 털어내던 그곳. 현이씨는 충동적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직후라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무슨 일로 왔냐는 간호사의 말에 현이씨는 그냥 진료를 받아보고 싶다고만 말했다. 어쩌면 남은 돈을 다 써버릴지도 몰랐다. 찾는 의사 선생님이라도 있냐는 물음에 가장 대기 환자가 없는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겠다고 하고 현이씨는 자리에 앉았다.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기다림 끝에 현이씨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왔냐는 안경을 낀 여자 의사의 말에 현이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묻고 싶었다. 여기에 저 같은 사람들이 오기는 하는지, 온다면 어떤 이유로 찾아오는지, 그리고 그때 그 여학생은 아직도 소리 없이 울어대며 이곳을 찾아오는지. 여기서도 저처럼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있는지.


 진료를 마치고 나온 현이씨는 목적을 알 수 없는 처방전을 기다리다 그때 그 여학생이 로비로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됐다. 전보다는 훨씬 편안한 표정이었다. 여학생은 자리에 앉지 않고 접수를 하는 엄마의 곁에 서 있었다. 무어라 엄마와 이야기하며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도 보았다. 마침 수납처에서 현이씨의 이름이 불렸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공간에서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불렸을 때, 현이씨는 어쩐지 처음으로 외롭다고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약 이름이 잔뜩 적힌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현이씨는 돌연히, 사는 것은 참 희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현이씨를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팀장이었다. 왜 아직도 퇴근을 안 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팀장은 큰 소리로 현이씨의 이름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혹시 시간이 되면 이번 주에 일주일 정도만 나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현이씨는 대답 대신 충동적으로 한마디의 말을 떠올렸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어디서든 끝내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그것은 이루어질지 모르는 대개의, 어떤 불확실한 소망과도 같은 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한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