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감상 02화

크로이처 소나타

- 질투의 화신 '포즈드느이셰프'

by 호퍼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문제의 남자 ‘포즈드느이셰프’는 자신의 아내를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살해하게 된다. 그의 아내는 바람둥이인 바이올리니스트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한다.

둘 사이에 불륜을 의심한 ‘포즈드느이셰프’는 질투와 의심에 휘말려 바이올리니스트와 같이 있는 정황만으로 두 남녀 사이에 부정이 있었음을 확신하여 이성을 잃고 만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바이올린 강사와 썸을 탄 아내를 죽인 치정극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 치정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욕망과 제도, ‘포즈드느이셰프‘ 이자 톨스토이 자신의 도덕과 금욕 사이의 고통스러운 간극을 드러낸다.


호감은 쉽게 겉으로 드러난다. 서로에 대한 눈빛, 공간에 흐르는 미묘한 기운과 웃음, 발그스레 상기된 볼. 선호도에 맞는 상대를 만나게 되면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혹여 친절을 느끼기라도 한다면 아마 같이 할 미래를 상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포즈드느이셰프’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혹평한다. '그런 뻔하고 아름답지만 평범하고 딱히 새로울 것 없는..’ 그렇게 보잘것없는 곡을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는 ‘포즈드느이셰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질투 날 정도로 교감하며 합주를 한다.


만약 당신의 이성이 누군가와 위와 같은 교감을 나눈다면, 불쾌할까? 그렇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질투심에 휩싸이지 않는다면... 이런 질투의 감정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는 신이 말하는 도덕적 관념을 덧씌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장 28절



이 성경구절은 소설 서두에 비문처럼 깊게 새겨져 있다. 예수의 말은 아내의 성적욕망에 대한 ‘포즈드느이셰프’의 관점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간음에 대해, 행위가 아니더라도 욕망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는 성경구절을 '포즈드느이셰프'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의심과 질투에 대한 정당성으로 부여한 것이다.


이런 비밀스럽고 조용한 욕망마저도 타락으로 간주한다면, 적어도 톨스토이의 관점에선 현재에 우리?는 아마도 다 지옥행 열차를 타지 않을까 싶다.


『크로이처 소나타』에 나타나는 금욕주의와 성적 도덕성, 여성혐오적 시각은 후기 톨스토이의 사상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톨스토이는 ‘포즈드느이셰프’란 인물에 자기반영을 하였다. 톨스토이의 ‘금욕주의’는 이런 남녀의 관계에 대한 욕망을 신의 이름으로 정화시켜야 할 타락으로 보았다.


성욕, 폭력, 물욕을 인간 타락의 근원으로 보는 세계관으로 비폭력주의, 무소유, 금욕, 채식주의, 무저항주의 등의 사상을 설파했다. 톨스토이의 이런 강박이 자신의 아내인 소피아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소피아는 원고를 읽고 충격을 받아 『크로이처 소나타』에 격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그녀의 일기에는 남편의 금욕주의가 자신을 얼마나 모욕하고 소외시켰는지를 토로하는 대목이 남아 있다.



“그는 나와의 육체적 관계조차도 후회하는 걸까? 나는 그에게 고통이었고, 죄였던 걸까?”

— 소피아 톨스토이 일기 중 (1889년)




스무 살 무렵 읽은 책이지만, 개인적 질투심에 대한 고찰을 하기 위해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치정극은 아직까지도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결혼제도에 대한 불완전성과 인간의 욕망이란 게 제도나 윤리에 위해 제약할 수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9번 가장조 (Sonata for Violin & Piano in A Major, Op.47)


이 아름답고 격정적인 베토벤의 소나타 9번은 도대체 무슨 업보일까? ‘포즈드느이셰프’에 의해 원죄를 덮어쓰게된 이 억울한 곡은 들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환상적이다. 그러나 사연이 있는 곡이어서 일까? 톨스토이에 의해 이 곡은 금지된 성적 욕망에 대한 메타포를 갖게 되었다.


이 곡은 원래 베토벤은 친밀한 '조지 브리지타워'라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헌정할 바이올린 곡으로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갈등으로 인해 무산되었고, 베토벤은 이 곡을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하였다.


그러나 크로이처는 단 한 번도 무대 위에서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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