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브이와 조우했던 기억
오랜만에 두 딸과 미술관을 찾았다.
MMCA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론 뮤익 Ron Mueck (2025.04.11 ~ 2025.07.13) 전시가 한참이었다. 주말이라 많은 인파가 몰려 긴 줄이 이어졌다. 역시 문화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 전시회를 놓치지 않으려나 보다. 젊은 층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고, 나와 같은 중년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나의 두 딸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오면 왠지 들뜬 듯 보였다. 힙한 전시회에 온 어린 딸들은 어쩌면 나보다 더 신났는지도 모르겠다.
론 뮤익은 현재까지 48개의 작품을 만들었고, 그중 10점의 작품이 이번 전시회에 초대되었다. 극사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이라는 미술사조에 분류된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 기회에 극사실주의라는 미술사조를 접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미술여행이 될 것 같았다.
론 뮤익(Ron Mueck 1958~ 현재)은 호주 출신 조각가이다. 텔레비전과 영화 특수효과 전문가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1997년 영국의『센세이션(Sensation)』 전시회에 출품한 《Dead Dad》로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센세이션'이란 전시회답게 늘 화젯거리가 될 만한 작품들이 출품된다고는 하나,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저리 욕보여도 괜찮은 걸까? 동양적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늘 예술이란 세계에선 그런 관념을 파괴하는 것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작업의 명제가 아닐까? 싶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소년(Boy)> 은 높이 4.5m로 극대화된 소년의 쭈그리고 앉은 모습을 작품으로 출품하였다.
첫 번째. <마스크( MaskII)>
극대화된 인간의 두상. 옆으로 뉘어 있어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한 얼굴은 실제와 같은 피부에 털이 송송 나있고, 모공까지 보인다. 그런 두상을 실제 크기의 네 배 정도 확대 된 크기라고 한다. 마스크(Mask)란 제목답게 뒤에서 보면 텅 빈 공간만이 존재한다.
두 번째. <나뭇가지를 든 여인>
그냥 넘어갔다. 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없이 난해했다. 적어도 내 관점에선 그랬다.
세 번째. <침대에서>
두 번째 작품까지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거인이 침대에 누워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고 어딘지 모를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인국 사람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무엇엔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런 느낌은 무얼까? 아무리 조형이지만, 거인을 마주한 듯한 느낌. 그리고 그녀의 관심 밖에서 외면당하는 느낌.
생경하다? 평생 비슷한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아.. 아니다.. 그래 있었다. 분명히, 놀이공원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태권브이를 만났던 경험. 두근거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당혹스럽다? 실제 하지 않는다고 인지하고 있어도 소용없다. 마주친 순간 당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실제 하는 거인의 옆에서 무력감이 살짝 들었던 것 같다.
네 번째. <치킨/맨>
닭을 마주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대립의 관계를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코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노인은 흰 팬티 한 장 걸치고 있다. 이건 론 뮤익의 유머일까? 사실 저 얼굴은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아서 더 놀랬다. 전 직장을 같이 다니던 선배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더 재미난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근데 뭘 말하려는 걸까?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떤 투지 같은 것이 느껴지긴 하는데. 대상이 닭이라 그 투지가 우수깡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게 한다.
다섯 번째. <유령>
전혀 작품과 제목의 연관성이 와닿지 않는다. 어떤 맥락에서 제목이 <유령>일까?
설명을 들어보면 사춘기 소녀가 신체의 변화를 느끼는 감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뭔가 불균형스럽다. 작품 크기에서(성인 사람보다 훨씬 크다.) 또는 인체 조형 비율에서도 너무 커 보이는 발이라던지, 큰 머리라던지 비율이 맞지 않는 것과 소녀의 굳은 표정에서 불편함과 불쾌함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십 대의 우울한 느낌이 들긴 한다. 저 수영복은 왜 이리 익숙해 보이는 걸까?
여섯 번째. <젊은 연인>
이 작품도 별 감흥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나중에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 작품은 뒤에서 보면 앞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해석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는 보통의 연인으로 보이지만, 뒷모습은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있다. 그런데 잡고 있는 형태가 마치 강압적인 형태이다. 이제 보니 여자의 손도 부자연스럽게 경직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자의 시선은 불안과 공포의 시선으로 변화된다. 작품 중 제일 해석의 재미와 여지가 많은 작품을 몰라보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다음부턴 작품을 꼼꼼히 봐야겠다. 미알못(미술 알지 못하는)이기에 천천히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일곱 번째. <쇼핑하는 여인>
이 작품은 'Mother 시리즈'에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아래 <엄마와 아이> (2003)는 'Mother 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본 전시회에는 전시되지 않았다.
식료품 봉투를 두 손에 들고 코트로 아이를 감싼 여자는 몹시 지친 표정이다. 고된 육아에 지친 모습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앞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콘텍스트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론 뮤익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조금은 보이는 듯했다. 전혀 다른 방향일지도 모르지만, 시리즈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니 아래에 알몸으로 마치 출산 직후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한 작품을 찾게 되었다. 어떤 연관성을 유추해보려 했으나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난 아마 두 여인이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었지만 역시 아니었다. 아니면 모델이 론 뮤익의 어머니이지 않을까?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시리즈로 묶었을까? 연관도 없는데.. 그저 어머니가 동일 주제여서인가 보다. <어머니와 아이>(2003)은 해부학적 세부사항을 의학교과서를 참조하여 창조된 상상 속 인물이라고 한다.
여덟 번째. <매스>
관람 정체구간을 만드는 작품이다. 포토스팟으로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느라 트래픽이 발생하였다. 역시 하이라이트답게 보는 순간 '압도된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거대한 해골들이 쌓여 있는 장면은 어디선가 본 듯 하지만 역시 생경하고, 당혹스럽고, 고대의 유적을 본 듯한 착각에 경외감까지 든다.
신비로움도 갖고 있는 작품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혹여 고대의 유물이라면 이런 거인들이 살았다면? 하는 상상을 펼치게 하였다. 그리고 생각 난 홀로코스트 '킬링필드', '아우슈비츠', '5.18'이 떠올랐다. 결국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라틴어: memento (기억하라) + mori (죽음을) "죽음을 기억하라" 란 명징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아쉽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관람을 마치고 다음 작품으로 가기까지 다시 긴 줄을 서야 했다.
아홉 번째. <배에 탄 남자>
배에 알몸인 남자가 어딘가를 심각하게 팔짱을 끼고 응시하고 있다. 배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인생의 배는 목적지인 죽음으로 향해간다. 이 백인남자의 몸은 약간 기울어져 있다. 뭔가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기울인 듯하다. 그 앞에 무엇이 있었을까? 사고가 있었을까? 확신이 필요한 시선이다. 무엇인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확신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열 번째. <어두운 장소>
어두운 공간에 도드라지게 남자의 얼굴만이 대비되어 밝혀져있다. 사실 이 작품을 보고 어떤 유추보다는 느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약간의 공포일까? 그로테스크한 명암이 짙게 밴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은 밝고 좋은 느낌은 아니다. 어둡고, 심각하고, 피부에 난 종기는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오아시스'에 리암 갤러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개의 작품을 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전시관이 두 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시관 입구까지 가는데 적어도 30분은 줄 서는데 소요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후 4시부터는 관람대기도 못하는 것 같았다. 워낙 줄이 길어 미리 관람을 제한하는 듯 보였다. 오픈 런 아니면, 결국 줄을 서야 한다는 뜻이다.
뭔가를 거대한 메타포를 작품에 녹이는 것보다는 인간의 관념, 본질, 일상, 소소한 감정을 기반으로 작품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 <침대에서>처럼 극대화되어 있는 작품들은 확실히 임팩트가 있게 느껴졌다. 그것은 위에서 도 말했지만 생경함, 당혹감, 신비감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작품을 재미로 친다면, 매우 좋은 작품을 본 것이지만, 깊게 음미하며 곱씹어 생각할 여지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조각품을 전시로 본 것이 '로댕' 말고는 루브르에서 여러 나라에서 도둑질한 유물들을 본 것이 다인 내가, 무엇을 평가하기보다는 감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내가 더 나아지는 기분이 드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깊이 알면 좋겠지만, 우선은 이것으로도 만족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두 딸은 정신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고, 을지로 맛집에서 고기튀김과 짜장면을 먹고 전시회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눈 후 이날의 감상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