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월 24일의 기록
차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괜히 찻잔을 신경쓰게 하고,
괜히 떡의 배치를 의식하게 하고,
그래서 더 느릿느릿 움직이게 하는...
차는 나를 느긋하게 만든다.⠀
차는 뭔가 사람을 닮았다.⠀
첫잔은 밍밍하다.
아직 그 맛이 다 우러나지 않은 탓이다.
이 사람이 어떤 놈인지 알기 어렵다.
아직 어떤 사람인지,
생각은 어떠하고 감정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관심사는 무엇이며 특기는 뭔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탓이다.
아직 서로 가면을 쓰고 있는 탓이다.⠀
두번째 잔은 맛있다.
향이 적당히 베어있고 따뜻하다.
이 사람이 하나씩 내보이는 부분부분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조금 분명한 생각과 조금 솔직한 감정 표현,
특이한 관심사나 의외의 특기,
미지에 있던 것들이 감질나게 튀어나오니까
가장 맛있는 한잔이 나와버린다.⠀
세번째 잔은 그냥 그렇다.
향이 조금 진하고 온기도 조금 사라졌다.
전의 것보다는 못하다.
이미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
새로울 것도 매력적일 것도 없어진다.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기에
여전히 의외의 부분들이 가끔씩 등장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이미 혀에 익숙해진 맛이 지나간다.⠀
마지막 잔은 떫다.
살짝 쓴 맛에 미지근하다.
이 사람의 안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매력으로 느꼈던 것이 단점으로 보이고,
새롭다 느꼈던 것이 뻔하다 여겨진다.⠀
난 차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라
마지막 잔의 떫은 맛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을 대할 줄 안다는 것은
이 마지막 잔을 음미할 줄 안다는 것.
떫음도 이 차의 한 부분이구나, 사랑스럽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
차는 나에게
사람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고 충고하며,
나를 느긋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