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호랑이 새기기

20년 3월 31일의 기록

by 므므무

답답함에 산책 겸 집앞 안양천에 잠깐 나갔다가 연을 보았습니다. 연은 사나운 호랑이의 얼굴을 띄고 높이 높이 날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연의 기다란 실을 따라가보니, 그곳에는 홀로 얼레를 돌리시는 한 할아버지께서 앉아계셨습니다.

능숙하게 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두 손에서 연륜을 느꼈다 하기에는, 할아버지의 두 눈망울이 조금이지만 분명하게 반짝이고 계셨습니다. 아마 저 연 하나를 위해 수백가지 모양 중 하나를 고르는 길지만 행복한 시간이 눈망울에 마법을 부린 탓일 겁니다. 연은 하늘을 향해 쭉 뻗어 바람 하나 내주지 않는 봄햇살을 가르고 가만히 제자리에 떠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하늘에 호랑이를 새기시는 할아버지의 묘기에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호랑이의 사나운 얼굴이 나에게 두려움보다 속시원한 상쾌함을 주는 건, 호랑이에 대한 애착때문일까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일까요. 오늘은 그 이유를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던 할아버지에게서 찾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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