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간 형광등

19년 10월 30일의 기록

by 므므무

학회방에 위태롭게 깜빡이던 형광등이
결국 꺼져버렸다.

형광등의 깜빡임에 눈이 부셔
문장 하나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나는,
불빛이 아예 사라지자
이제는 그늘때문에
글자 하나 보고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그냥 폰이나 보기로 했다.
아니면 드러누워서 잠이나 자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학회방 밖으로 나가
형광등이 아니라 햇빛 아래에서
책을 보기로 했다.

형광등을 갈아끼우면 되지!
라고 누군가 조언하겠지만,
나는 갈아끼우는 법도 모르고
갈아끼울 키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자를 밟고 올라갈만큼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갈아끼울 새 형광등도 없고
새 형광등을 살 돈도 의지도 없고...
이런 저런 핑계란 핑계는 다 댈테야!

왜냐하면 나는 사실
저 꺼진 형광등이 좋거든.
오래도록 여길 지켜온 저 친구를
함부로 꺼내 깨뜨리고 싶지 않거든.
꺼진 형광등이 만들어내는
그늘과 어둠이
아무리 불편하다 할지라도,
그걸 다 감수할만큼 학회방을 꽤 운치있게 만들어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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