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코너의 그 남자 011

그는 바쁘다고 했다. 나는 웃었다.

by stephanette


투명한 육면체의 아크릴 케이스를 열어서

그날의 커피 캡슐을 고른다.

대부분은 묵직한 바디감을 좋아한다.

주로 검정이나 황금색 톤의 캡슐이다.


커피잔 수집을 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십 년을 고민한 끝에

두께와 질감, 바깥쪽의 곡선, 컵받침까지 완벽한 컵을 직장에 갖다 두었다.

수많은 잔은 다 처분했다.


가장 애정하는 커피잔에

에스프레소 샷을 받는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는다.

커피잔 안쪽의 영문 텍스트가 쓰인 아래까지.

하루 중 가장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순간이다.


일과가 시작되면 그럴 시간은 없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사람들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정말 일을 많이 한다고.


그저 개인적인 성향인지

아니면 줄곧 어디로부터 도망하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새벽의 복도를 서성였던 나는

커피는 접어둔다.

모니터 화면 세 개를 차례로 켜고 프로그램들을 띄운다.

상담 일정은 빽빽하다. 미루기엔 종료일에 맞추기가 어렵다.

못다 한 상담 자료는 다음 상담을 기다리며 카카오톡으로 보낸다.

화면 캡처, Ctrl A, Ctrl C.

컨베이어 벨트처럼 작업은 이어진다.

수십 장이 넘어간다.


화면에 알림이 뜬다.

그의 문자다.


순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모니터의 화면이 거대해지는 것만 같다.

알람을 급하게 삭제한다.


수십 년을 일하며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문자를 주고받은 일은
한두 번이 될까 말까였다.

점심시간에도
개인적인 문자는 하지 않는다.
그럴 짬이 없었다.


상담 중이 아니라 다행이다.

노트북에서 카카오톡을 로그아웃한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수십 번쯤,

로그아웃과 로그인을 오가면서.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직 다음 내담자는 오지 않았다. 곧 도착할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휘리릭 그에게 답을 했다.

가끔은 질문도 했다.


그는 가끔은 "집이야?"라고 물었고, 또 가끔은 대답 대신 바쁘다는 말을 남겼다.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문자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말이겠지.


나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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