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지진 경보, 그 남자 - 에필로그

이 소설의 주인공은 셋이다.

by stephanette

달달한 연애 소설을 쓰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적어도,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방식의 사랑과는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둘이 아니다.


사실은 셋에 가깝다.

첫째는 화자의 감각 해상도.
둘째는 남자의 통제된 표면과 그 아래의 미세한 균열.
셋째는 사물에 저장된 잔향이다. 이 셋이 번갈아가며 장력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읽을 때 독자가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가정들은 자꾸만 깨어진다. 이것은 단순히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히는, 한 남자를 통과한 뒤 달라진 자기 감각에 대한 이야기다. 핵심은 관계의 진전이 아니다. 감각은 관계보다 먼저, 때로는 거의 재난처럼 시작될 수 있다. 이 소설의 강한 장면들은 대개 고백이나 접촉, 사건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정밀함에서 생겨난다. 손의 방향, 청주의 높이, 핸드드립을 하며 기다리는 삼십 초, 한쪽의 귀걸이, 턱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표정의 찰나. 두 인물 사이의 대화나 사건보다, 그런 미세한 신호들의 해상도가 더 큰 긴장을 만들어낸다. 설명이 명확할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가능한 한 오래, 명명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려 한다.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 것들, 말로 옮기는 순간 조금씩 가벼워지는 감각들, 아직 이름을 갖지 않았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파형들. 화자가 추적하는 것은 남자 자체가 아니라, 남자로 인해 달라지는 자기 자신의 내부 파형이다.


이 소설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미세한 자극이 먼저 발생하고, 신체 반응이 그 뒤를 잇는다. 의미는 조금 늦게 도착한다. 화자는 그 반응을 조용히 관찰한다. 그리고 관찰된 감각은 사물에 봉인된다. 귀걸이, 셔츠, 잔, 원두, 커피, 손목, 컵의 수면 같은 것들 안에. 그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밀한 곡선처럼, 혹은 나선형처럼 반복된다. 같은 자리에 돌아온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른 높이와 다른 밀도로 이동한다.

바로 그 반복을 통해 감각은 재현 가능성을 얻는다.


사소한 정밀함에서 시작된 감각은 어느 순간 재난의 규모로 확대된다. 그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라기보다, 그 사건이 지나간 뒤에도 몸 안에 계속 남아 있는 잔류의 기록에 가깝다. 취약함을 다루는 방식은 또 다른 매혹이 된다. 감정은 곧바로 언어로 가두어지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숙성된다. 그리고 사물들은 그 감각을 대신 보관하는 장소가 된다.


이런 반복 끝에
하나의 진동은 결국 인간의 감각 운영체제를 다시 설정한다.


그러니 이 소설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어떤 진동이 한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 그 이후의 호흡과 속도와 온도와 시선의 결을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꾸어놓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어쩌면 끝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한 번 감지된 뒤로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 그 미세한 파형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실마리를 남긴다.

이전 14화끝나지 않는 지진 경보, 그 남자 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