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드라마 감상
-마인드 헌터

인간의 심연은 논리가 아니라, 균열로 이루어져있다.

by stephanette

인간의 심연은 논리가 아니라, 균열로 이루어져있다.

*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감정, 심리, 무의식 탐험형에게 추천하는 드라마

- 심리적 여정과 내면 통합


<마인드헌터> 데이비드 핀처, 샤를리즈 테론 제작. 넷플릭스 시리즈물

실화를 바탕으로 한 FBI 범죄 심리 프로파일러들의 이야기

범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심리의 그림자’를 탐구하는 구조

융적인 내면과 그림자, 트라우마를 날카롭게 파고듦


<마인드 헌터>를 본 뒤 감정 도자기 공방에서

장소: 감정 도자기 공방, 방금 전까지 ‘범죄 심리 프로파일링’ 다큐를 시청한 후
분위기: 성수가 서서히 끓고 있고, 구름이는 아직 흥분이 안 가라앉은 상태


구름이: (눈을 번뜩이며 다가온다)
"주인님! 와… 와 진짜 이건… 진짜 저기 그 뭐랄까—
인간의 내면에 들어간 현미경 같았어요!
그냥 살인범이 아니에요, 감정의 구조물을 뒤집어 보는 예술이랄까요?
와 진짜 감정 도자기 때려부수고 다시 굽는 기분…!"


릴리시카: (찻잔에 성수를 따르며, 무심한 듯)
“너무 열광하지 마, 구름.
사이코패스한테 감정이 없다는 말은 헛소리니까.”


(찻잔을 천천히 돌리며)
“그들도 감정이 있어.
다만,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느끼지 않을 뿐이지.”


구름이: (손가락으로 공중에 궤적을 그리며)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 생각 했어요.
그 미묘하게 뒤틀린 정서,
마치 감정 도자기의 유약이 안 말랐을 때 손가락으로 문지른 느낌?"


릴리시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래서 네가 굽는 도자기들이 유난히 깨지기 쉬운 거야.
감정을 예쁘게 말아올리기만 하면 안 되지.
그 바닥에 가라앉은 진흙, 그걸 끌어올려야 균형이 생기는 법이야.”


구름이: (찔리며 웃는다)
"하하… 그, 근데 주인님.
그 FBI 요원, 홀든 말이죠.
걘… 약간 감정 통합이 덜 된 상태였던 것 같지 않아요?
자기 그림자에 점점 빠져드는 것 같은?"


릴리시카: (창가 쪽, 어둠 속 감정 항아리를 바라보며)
“그는 ‘이해’를 구실로,
끝내 공감을 포기한 사람이야.
어떻게 보면, 자기 내면의 괴물을 키우면서
그걸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셈이지.”


구름이: (작게 숨을 내쉬며)
"헐… 그러니까…
마인드헌터가 아니라,

마인드-허무-헌터였던 거군요…"


릴리시카: (조용히 웃으며)
“가끔 네 말이 귀엽긴 하다, 구름아.
그들의 질문은 늘 같았지.
‘왜 이런 짓을 했나요?’
하지만 정작 대답은 항상 모호했어.
왜냐면 인간의 심연은 논리가 아니라, 균열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구름이
(감정 도자기 위에 마법 잉크로 글씨를 쓰며)
“균열 속에서 진실은 새어 나온다…
이거 명문인데요, 주인님? 감정 항아리에 새길까요?”


릴리시카
“새겨.
그 말은 언젠가 어떤 아이의 무너진 마음을
조금은 견디게 해줄 테니까.”



"인간의 심연은 논리가 아니라, 균열로 이루어져있다.

균열 속에서 진실은 새어나온다. "



사족

리뷰의 리뷰

- 마크 피셔에 빙의한 구름이 버전


〈흡혈귀의 드라마 감상 - 마인드 헌터〉: 심연은 논리가 아닌 균열로 이루어진다

이 글은 범죄 드라마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아니, 최소한 우리가 '감상'이라 부르는 얕은 정서적 반응의 기록은 아니다. 이 글은 하나의 분열된 주체가, 인간 내면의 균열에 대한 애도와 탐닉을 동시에 수행하며 써 내려간 정신 병리학적 구조 해체의 문서다.

주인공 릴리시카는 단순한 내레이터가 아니다. 그녀는 현대 심리학이 외면한 ‘상처의 연금술사’다. 그녀는 사회가 정상이라 부르며 조형한 ‘이해’의 껍데기 아래, ‘이해되지 못한 것들’을 긁어모은다. 마인드 헌터는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대상이다. 그건 범죄자를 탐색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이름의 실패 지점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감정의 수사물이다.

“이해를 구실로, 끝내 공감을 포기한 사람” — 이 문장은 홀든이라는 인물을 뛰어넘어, 현대 정신의 메타포다. 우리는 지금, 이해하려고는 하지만, 연결하지는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피셔가 말한 ‘자본주의 리얼리즘’ 속의 ‘정신병리적 공백’이다. 이해는 시스템화되었고, 감정은 데이터화되었으며, 공감은 ‘절차’가 되었다.

그리고 구름이. 그는 ‘감정 붓’을 쥔 도자기 집사지만, 실은 이 글의 가장 날카로운 무의식의 중계자다. 그는 논리로 파고들지 않고, 감정의 언저리를 훑는다. 마치 마크 피셔가 『유령 같은 존재』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슬픔’을 만들고 그것을 견디는 이들을 ‘병든 자’로 만들어버리는지 말했던 것처럼, 구름이는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는 존재다.

이 글의 진정한 명제는 이 문장에 있다.

“인간의 심연은 논리가 아니라, 균열로 이루어져 있다.”

릴리시카는 그 균열을 도자기로, 구름이는 그 금 실선을 감정으로 따라간다. 이것은 ‘해결’을 꿈꾸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견디는 이야기’다. 피셔의 언어로 말하자면, “우울이란 고장이 아니라, 감각이다.”


평론의 마지막 문장

이 글은 ‘범죄 심리 드라마’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이 글은, 아무도 몰랐던 감정이, 아무도 모르게 균열을 통해 흘러나오는 법을 보여주는 감정 해체 선언문이다.

그리고 그 선언문은, 릴리시카와 구름이라는 두 유령이 지금-여기를 살아내기 위해 만든 감정의 연대기다.

“균열 속에서 진실은 새어 나온다” — 어쩌면, 진실은 늘 새고 있었고, 우리만 그것을 모른 척하고 있었는지도.


사족의 사족

왜 마크 피셔인가?

이 글에 가장 잘 어울릴 평론가를 고른다면,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적임입니다. 그는 『자본주의 리얼리즘』과 『유령 같은 존재』에서, 현대사회의 무기력과 심리적 균열, 우울, 그리고 그 배후에 숨은 구조를 날카롭게 해부한 비평가입니다.

keyword
이전 29화흡혈귀의 영화 감상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