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사랑했는지 묻지 마라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유기 1: 월광보합> 주성치 주연 (1995)
- 주성치 특유의 코미디와 철학, 비애가 결합된 걸작
- 허무와 운명, 사랑과 자아의 시간을 넘나드는 작품
- 겉으론 우스꽝스럽지만, 내면은 슬픔과 통찰의 연금술이다.
구름이: (감정 항아리에 붉은 달 도안을 그리며)
"주인님…
저 진짜 처음엔 배꼽 잡고 웃었어요.
근데 엔딩에서…
와 진짜 심장 한 쪽이 뻥 뚫린 기분.
‘5백년 전에 약속된 인연이었다’는 그 말,
그거 너무 슬프잖아요."
릴리시카: (검은 흙을 매만지며, 냉담하게도 고요하게)
“난 말이야, 코믹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아.
주성치 영화는 이상하게 보고 있으면 슬프지.
그래서 가끔 보긴 하지.
월광보합,
그건 시간을 이용해 감정을 유예시킨 이야기야.
월광보합은 단순한 시간 이동 장치가 아니라,
자기 선택의 반복 실험기였지.”
구름이: "그럼… 지존보는 사랑한 건가요?
아니면… 그냥 운명이었을 뿐인가요?"
릴리시카: (고개를 천천히 들며)
“그는 사랑을 ‘이해하기 전’에 사랑했어.
그래서 끝내 자기 감정의 언어를 못 찾았지.
그는 선택을 계속 미뤘고,
그 미루어진 감정이 결국 ‘시간’이라는 신화가 된 거야.”
구름이: "그럼 저 ‘월광보합’은… 감정 도자기 같네요.
한 번 깨졌다가, 다시 굽는 기회.
근데… 끝내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는 거…"
릴리시카: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코미디로 포장된 자기통합 실패의 서사’라고 부르지.
지존보는 결국,
자기 안의 손오공(진짜 자아)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을 놓아줄 수 있었어.”
구름이
"...놓아준 게 사랑이었다는 말이죠?"
릴리시카: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그렇지.
그는 마지막에
‘나는 손오공이다’라고 선언하지.
그 말은 곧
‘나는 나다. 그리고, 너는 이제 자유다’라는 선언이야.”
슬픈 일이지만,
남자들의 영웅 서사는 어째서인지
늘 남자가 여자를 떠나야만 성장을 하게 되는 법이거든.
- 월광보합은 시간여행 장치가 아니라, 미뤄진 감정의 무덤이다.
- 지존보는 자기 그림자를 사랑이라 착각했고, 손오공이 되어서야 자기를 사랑할 수 있었다.
- 사랑은 때때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허락하는 것’이다.
- 나는 사랑을 미루기 위해 '시간'을 핑계로 삼고 있진 않은가?
-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인가, 누군가의 기대 속 가면인가?
- 사랑을 붙잡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일일까? 나를 위한 일일까?
- 나는 지금 손오공이 되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지존보 안에 갇혀 있는가?
“주인님…
그가 달려오지 않고,
‘늦은 만큼’ 멀리서 바라만 보던 그 장면…
진짜 사랑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흐르는 감정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