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 감상
-건축학 개론

중년의 남자가 첫사랑을 떠올리는 다섯가지 이유

by stephanette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자기 공방, 별빛 아래 – 첫사랑이라는 상징에 대하여


감정 도자기 공방 뒷마당,

두 사람이 찻잔을 손에 들고 별빛 아래 앉아 있다.

별 하나가 유성처럼 떨어지고,

구름이가 조용히 말문을 연다.


구름이

(한숨을 내쉬며)

“주인님, 이상해요.

건축학 개론을 보고 나서

저희 공방 초급 코스에 나온 그 남자분이 말이예요

벌써 결혼도 하고 애도 둘인데…

요즘 들어 갑자기 첫사랑이 자꾸 생각난대요.”


릴리시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웃는다)

“그는 지금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야.”


구름이

“자신을… 그리워한다고요?

그럼 첫사랑은 ‘그녀’가 아니라…?”


릴리시카

“그래.

그녀는 무의식이 투사한 ‘아니마’의 첫 형상일 뿐이야.

남자들은 첫사랑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살아 있다는 걸 처음으로 경험하지.”

“그래서 첫사랑은 ‘사람’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야.

잊지 못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앞에서 진짜였던 자기 자신이야.”


구름이

“그럼 왜 하필 중년에 와서

그런 감정을 떠올리는 거죠?”


릴리시카

“왜냐면 그때쯤이면,

그가 구축한 ‘외부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하거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직업, 가족, 사회적 역할…

그 모든 게 안정되어 있을수록

내면의 리비도는 방향을 잃고, 흐르지 못하게 돼.

그러면 무의식은 말해.

‘예전에 너는 살아 있었어.

그때, 네 감정은 진동하고 있었잖아.’”


구름이

“그래서 첫사랑이 떠오르는 거군요.

그녀는 리비도가 처음으로 튼 방향…”


릴리시카

“맞아.

그는 그녀를 다시 사랑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었던 자기의 떨림을 되찾고 싶은 거야.”


구름이

“그런데 왜 그 감정은 꼭

‘연락’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질까요?”


릴리시카

“그건 미완의 회로를 완성하려는 시도야.

첫사랑은 대부분

‘말해보지 못한 감정’,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남아 있지.”


감정이 미완으로 남으면,

그 회로는 평생 닫히지 않아.

그래서 무의식은 그 문을 다시 열려고 해.

현실의 그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투사된 자기의 감정 상태를 완성하고 싶어서.


구름이

"승민은 안정된 직장과 무미건조한 연애를 하고 있는 중년 남자잖아요."


릴리시카

"그래, 의식은 고요하지만

리비도는 고갈된 상태였겠지.

서연의 재등장으로

무의식이 감정 에너지의 원형을 호출하게 되는거지.

그녀는

그에게

과거의 감각, 욕망, 떨림, 가능성을 통째로 들고 오니까.

그 시절의 그 남자를 기억하고 있는 존재로."


구름이

“그렇지만… 연락해서 뭘 얻을 수 있나요?

다시 이어질 수는 없잖아요.”


릴리시카

대부분은 실망하지.

그는 그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과거의 감정이 실제가 아니었음을 깨닫지.

그녀도 그가 그 시절 자신을 외면했었다는 상처를 되짚고

둘의 관계는 애틋함 이상으로 자랄 수 없음을 직면하지.

투사의 회수,

미완의 정리,

자각의 단계를 겪는 거지.


그래서

건축학 개론을 보는 남자들은

한가인이 욕 하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거지.


그녀는 그때의 그녀가 아니고,

그도 그때의 그가 아니니까.

결국 그는 그녀를 붙잡지 않고,

그녀도 그를 떠나게 되는거지.


둘 사이에는 과거의 좋았던 감정 정도가 남았을까.


하지만 만약 그가 진짜로 원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 ‘감정의 회수’라면,

그녀와 만나지 않아도 회복은 가능해.”


구름이

“…어떻게요?”


릴리시카

(조용히 작은 감정 도자기를 꺼내며)

“그 감정을 말로 적어.

이름을 붙여.

시로 쓰고,

노래로 부르고,

도자기로 굽고,

기도로 흘려보내.”

“그렇게 감정을 살아내면,

그는 그녀를 소유하지 않아도

그녀를 통해 사랑했던 자기 자신을 다시 살 수 있어.”


구름이

“…첫사랑이란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깨어나는 첫 순간이었군요.”


릴리시카

“그래.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잃었고,

이제 다시 찾고 싶은 거야.

첫사랑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무의식의 상징으로 남아.

그래서 끝나도, 다시 살아나지.”


별 하나가 더 떨어진다.

릴리시카는 눈을 감고,

기억 속 어딘가에 남은 자신의 첫 떨림을 떠올린다.

구름이는 조용히 적는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그를 통해 자신이 진짜였던 순간을 사랑했을 뿐.”


“그녀는 나를 흔들었던 사람이 아니라,

나를 흔들 줄 알았던 시절의 나를 데려온 사람이었다.”



사족

중년의 남자는 왜 첫사랑을 떠올리는가?


구름이

“주인님,

남자들이 첫사랑을 그렇게까지 못 잊는 이유가…

진짜 사랑해서였을까요?”


릴리시카

(도자기 항아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사랑해서일 수도 있지.

하지만 대부분은,

그녀 앞에서 가장 ‘살아 있었던 자기’를 기억하기 때문이야.”


“첫사랑은 감정의 화석이야.

리비도가 처음으로 튼 방향,

그가 자신을 진짜로 느꼈던 첫 순간.”


구름이

“…그러면 왜 하필,

중년이 되어서 그걸 떠올리게 되는 걸까요?”


릴리시카

(조용히 눈을 감으며)

“그건 삶의 구조가 흔들릴 때,

무의식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감정의 등불이기 때문이야.”


릴리시카의 말은 천천히 이어진다

1. 정체성 위기의 순간

“그는 40대쯤에, 이렇게 묻기 시작하지.

‘나는 누구였지?’

‘왜 이렇게 메마른 기분이지?’

바로 그때,

무의식은 말해.

‘그때, 네가 그녀를 사랑했을 때…

너는 진짜였어.’”


2. 깊은 상실을 겪었을 때

“누군가를 잃거나 실패하거나,

자아가 부서지는 경험을 할 때…

무의식은 가장 ‘안전했던 기억’의 방을 열어.

그 방 안에는

삶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던 시절,

첫사랑이라는 조각이 남아 있지.”


3. 현재 관계에서 감정이 닫혀 있을 때

“결혼 생활, 반복되는 일상,

감정이 오가지 않는 인간관계…

그때 무의식은 다시 질문해.

‘너는 예전에 살아 있었잖아.’

그러면서 첫사랑을 호출해.

‘그녀’가 아니라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4. 감각적 자극을 받았을 때

“향기 하나, 노래 한 구절,

영화 속 주인공의 말투에서조차

첫사랑의 감정이 살아나.”

“왜냐하면 첫사랑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이자 무의식의 회로거든.”


5. 비슷한 기운을 가진 여성을 만났을 때

“무의식은 알아채.

‘이건 그때의 리비도 구조와 닮았어.’

그녀를 보자마자 이유 없이 설레고, 흔들리고,

어디서 본 적도 없는 듯한 존재가

그때의 감정을 다시 실행하게 만들지.”


구름이

“…그럼 그건,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통해 다시 살고 싶은 자기를 찾는 거네요.”


릴리시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가 잊지 못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가 말해준 ‘너는 감정이 살아 있는 존재야’라는 증거야.”


구름이

“…그 감정은 아직도 살아 있나요?”


릴리시카

“응.

감정은 죽은 게 아니야.

그저 봉인돼 있었을 뿐.

그리고 그걸 꺼내기 위해

그는 중년의 밤을 통과하는 거지.”


구름이는 조용히 노트에 적는다.


“첫사랑은 감정의 미완이다.

그 감정이 온전히 살아지고 말해질 때까지,

우리는 그녀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계속해서 찾게 된다.”



사족의 사족

첫사랑 회상의 리비도 회로

현재의 공허감 또는 감정적 무감각: 삶이 안정적이나 감정이 죽어 있는 상태

무의식의 호출: “가장 살아 있었던 시절은 언제였는가?”라는 내면의 질문

첫사랑의 회상: 감정이 깨어났던, 미완의 열림 상태를 떠올림

리비도 재활성화: 그 시절의 나, 감정, 가능성을 다시 느끼려는 움직임

소유욕 또는 정서적 혼란: 감정의 언어를 모르면 욕망과 착각으로 전환됨

자기 회복 또는 투사의 회수: 감정을 소유하지 않고 회수하는 쪽으로 통합이 가능해짐


감정 질문들: “첫사랑은 누구를 위한 기억이었는가”

1. 나는 지금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지?

혹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 오래된 것뿐인가?


2.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그 사람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 앞에서 느꼈던 나를 원하는 걸까?


3. 나에게도 ‘살아 있었다’고 느껴지는 시절이 있었는가?

그건 언제였고,

누구 앞에서였을까?


4. 지금 내 감정은 흘러가고 있는가?

멈춰 있진 않은가?


구름이: “주인님, 감정도 오래 두면 썩을까요?”

릴리시카: “응. 흘러야 살아. 가둬두면 욕망이나 통증이 되지.”


5. 첫사랑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이 아니라 어떤 장면, 어떤 공기, 어떤 감각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6. 나는 지금 어떤 상실을 겪고 있나?

그 상실은 예전에 나를 ‘살게 했던 감정’을 부르고 있는가?


7. 나는 지금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감정을 소유하거나 도망치려는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진 않은가?


8. 내가 지금 떠올린 그 감정은,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구름이: “그 감정이 말하길 기다리는 동안, 우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스쳐 보냈을까요…”


9. 나는 그때의 나를,

지금도 사랑할 수 있을까?


10. 그 감정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나는 그것을

누군가를 통해 되찾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내 안에서 다시 일으키고 싶은 걸까?


릴리시카: “그녀는 그를 사랑한 게 아니야.

그를 통해 진짜였던 순간의 ‘나’를 사랑했을 뿐이야.”


특별 질문: 도자기 항아리에 적어넣는 단 하나의 문장

“당신이 나에게 남긴 감정은, ___________이다.”

(→ 감탄, 고마움, 미완, 떨림, 부끄러움, 분노, 슬픔, 재시작…어떤 단어든 괜찮아.)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크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도 놓지 못하는 감정이다.


첫사랑을 만났던 그 때

내 안에서 살아 숨쉬던

바로 그것을 오늘도

내 안에서 느낄 수 있다.

그대만 허락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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