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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잠시 쉬어 갑니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대체할게요

by 도심산책자

“뭐 재미있는 얘기 없어?”

얼마만의 카페 나들이인지 모르겠다.

실로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카페 나들이를 갔다.

보통 이 질문을 엄마에게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다.

“젊은 네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줘야지. 할머니가 무슨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그런데 이 날만은 달랐다.

“재밌는 얘기 좀 해볼까?”

엄마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지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친구분의 새댁 시절이라고 한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큰며느리인 할머니에게 깨를 볶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 번도 깨를 볶은 적 없던 할머니는 깨 볶기 미션을 받고 조심조심 깨를 볶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심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었는지 글쎄 깨를 모조리 태우고 만다.

(깨를 볶아 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당황한 할머니는 깨를 태웠다는 것을 알리면 혼쭐이 날 테니 완전범죄를 져지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뒷마당을 파서 감쪽같이 묻어버리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한 번의 실패로 자신감을 잃고 망연자실해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귀인이 나타났으니 바로 동서였다.

동서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자신이 깨를 볶겠다며 나섰다. 달리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던 할머니는 동서에게 미션을 일임한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믿고 맡긴 깨 볶기 미션은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완전범죄를 꿈꿨던 두 분이 생각해 낸 것은 바로 돼지먹이로 주는 거였다. 마침 밥시간도 되었으니 돼지에게 먹이면 되겠다며 의기투합한 두 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더랬다. 돼지는 새카맣게 탔지만 고소한 깨를 정신없이 먹 어제 꼈고 두 분은 완전범죄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돼지 얼굴을 보고 나서야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물에 동동 뜬 깨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돼지 얼굴이 연탄재 묻은 것처럼 검게 물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할머니는 정신없이 돼지 얼굴을 세수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검게 그을린 돼지 얼굴을 상상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그걸 또 세수시키겠다고 우왕좌왕했을 할머니(당시에는 새댁)를 상상하니 배꼽이 빠질 것 같았다. 이야기는 노인정 단골 이야기가 돼서 재탕 삼탕으로 들어도 너무 웃기다며 할머니들 사이에 인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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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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