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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행복의 닻을 올릴 것입니까?

출발에 관한 단상

by 도심산책자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알랑드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이 대목은 수많은 문장들 속에서도 여행의 의미를 잘 대변해 주는 문장인 것 같다. 일상의 변화가 필요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여행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생각만 했다가 방문하지 못했던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기관차' 수채화 작품이었다. 작품의 색감과 인상이 전해주는 것에 이끌려 제목을 확인했더니 '출발하는 기관차'였다. '달리는 기관차'가 아니고 '출발하는 기관차'이기에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압도되었던 것 같다.


알랑드보통은 비행기가 이륙할 때 급상승하는 건 우리를 짓누르던 억압에서 빠르게 벗어남을 상징한다고 표현했다. 나는 '출발하는 기관차'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기관차가 출발할 때도 비슷한 감상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의 의무감에서, 그리고 관성적으로 행해지던 것들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과도 같다.


'출발하는' 것에는 그것이 비행기든, 열차이든간에 출발의 에너지가 모인다. 비행기가 비상하는 순간에, 그리고 열차가 역을 떠나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해방감을 느낀다. 칸칸이 자리한 승객들이 저마다의 목적지와 이유를 갖고 있다. 승객 수만큼의 사연과 설렘이 모여 들끓는 공간이 된다.


며칠 후면 나도 여행길에 오른다. 장기근속 휴가를 받아 계획했던 여행길. 마치 그것을 예고라도 하듯 출발의 에너지를 담은 '출발하는 기관차'에 눈길이 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출발하는 기관차' 앞에서 나는 이미 여행길에 오른 기분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을 미리 당겨와 설렘을 누리고 있으니 이미 여행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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