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야기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을 때
회사에서 새로 운영할 교육을 미리 들었을 때였다. 감정관리에 관한 교육 과정이었기에 교육을 경험하기 전과 후 나의 마음의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을 선보여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을 가장 잘 팔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담을 과정 중간중간 반영해야 했다. 콘텐츠의 취지, 내용과 구성, 신선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하나의 주제에 몰두해서 나온 결과물의 깊이가 저절로 느껴졌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강사는 당신이 이 과정을 어떤 목적으로 도입하게 되었고, 어떤 생각으로 다듬어서 시장에 내놓게 되었는지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불편함이 올라왔다. 나중에서야 이 불편한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은 지식 하나를 더 알게 되는 과정과는 달랐다. 마음을 다루는 과정이기에 참여자들을 어디로 데려갈지를 마음에서 시작해서 마음으로 세밀이 살피고 조심조심 데려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안내자가 되어야 할 강사님은 한 번도 그 길을 통과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여정을 시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그 여정에 적합한 길이 있다는 것을 수소문해서 찾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리고 여정을 시작했으나 아직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만일 이 과정에 참여했더라면 안내자를 믿고 여행할 수 있을까?
내 답은 ‘아니다’였다.
나는 여행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안내자의 기분을 살피느라 분주했을 것 같다. 그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A코스는 통과했는데, B코스는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우리의 여정이 A코스가 아닌 B코스까지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A코스를 거쳐 B코스까지 가는 여정을 기대하고 이 과정을 선택했을 것이었다.
얼마 전 친구가 일기처럼 써내려 간 삶의 이야기를 출간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출간을 경험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부정적인 피드백이 너무 많아서 출간을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이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너무 정보가 적으면 독자가 이해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정보가 너무 많으면 그것들을 다 소화할 수 없다. 날것의 경험들은 누군가에게는 감당이 안될 정도의 자극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통과한 다음에 돌아본 과거는 그것을 통과한 지점에서 느꼈던 날카로움마저도 뾰족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불편했던 과거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을 때 그때가 비로소 독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 때가 아닐까. 그제야 독자가 필자의 기분을 살피는 게 아닌 스스로의 마음속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