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um Musica Nov 19. 2024

2024 바닥소리 신작 단편소리집

<아홉수 가위> 리뷰

들어가며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소리꾼들의 창작 판소리 활동을 지원하며 젊은 세대들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판소리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여성, 청년, 아동, 노동자, 장애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을 통해 현대사회의 약자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집단이기도 한다. 필자는 "바닥소리"에서 "바닥"의 뉘앙스가 궁금하였다. 사전적인 의미처럼 "Floor", "무대", "공연의 장"이라는 의미의 "바닥"일 수도 있을테고, 사회적 약자 혹은 소외된 계층을 의미하는 사회적 맥락에서의 "바닥"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바닥"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끌어안고 가겠다는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가치관을 상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작 판소리 <아홉수 가위>

 필자가 관람한 공연은 창작 판소리 <아홉수 가위>였다. (11월 15일, 연우소극장) <아홉수 가위>는 범유진 작가의 소설 <아홉수 가위>를 판소리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 문화에서 "아홉수"와 "가위"는 다소 불길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홉수"라는 미신은 인생에서 가급적 피해야 하는 것, 그리고 "가위" 역시 "가위눌림"의 줄임말로 심리적 불안과 불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창작 판소리 <아홉수 가위>는 한국에 오랫동안 만연되었던 미신 문화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 세대들의 불안과 분노, 소외감을 다루었다. 29세의 주인공은 매번 꼬여가는 자신의 인생에 비관하여 삶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옛 할머니의 집에 가게 된다. 그녀는 할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매일매일 가위눌림을 당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며칠을 할머니 집에서 보내다가 아무도 없는줄 알았던 할머니 집에 지박령 귀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귀신과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되는 주인공. 귀신과 주인공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탐색하게 되고, 서로의 연약함을 알아가면서 차츰차츰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귀신과 친해지고 귀신으로부터 위로를 얻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죽음이 아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소리꾼 강나현의 탁월한 일인다역  (一人多役)

 창작 판소리 <아홉수 가위>는 소리꾼 강나현의 1인극으로 진행되었다. 공연 시작 전 그녀의 나이를 보니 <아홉수 가위>의 주인공의 나이 (29세)와 비슷했다. 그래서일까. 강나현은 아홉수를 제대로 맞고 있는 주인공의 복잡하고 고단한 감정에 누구보다 깊게 이입되어 한에 맺힌 듯한 주인공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강나현은 아홉수를 맞은 주인공을 마냥 슬프게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MZ세대들의 발랄함과 호기심 많은 모습을 아니리 부분을 통해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엉뚱하고 허당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강나현 본인이 직접<아홉수 가위>의 판소리 각색 작업을 직접하였다는 것이고, 이 작품 외에도 다양한 창작 판소리 작품 각색에도 참여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작품은 아까도 언급했듯이 강나현의 1인극이기 때문에 강나현은 귀신 역할 및 할머니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나갔다. 즉, 그녀의 목소리에는 할머니의 손녀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지박령 귀신의 주인공을 향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강나현은 소리꾼으로서 거친 세상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는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용기를 전해주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며

 이번 공연을 통해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를 알게 되면서 지금 이 시대의 판소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보게 되었다. 사실 조선시대부터 판소리는 사회에 만연해있는 비리에 대한 풍자 혹은 양반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바닥소리에 소속된 소리꾼들은 단순히 기존의 작품을 연행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본인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판소리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해 필자 역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고 싶고, 그렇기에 이들의 차후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된다. 판소리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좀 더 따뜻하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들의 활동을 통해 우리 판소리의 미래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 관객비평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역 청년 우수 공연 <끝올 프로젝트> 공연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