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심화편
"지구에 혼자 남겨져 700년 동안 쓰레기를 치우는 로봇이 있다. 우리는 이 녀석을 왜 응원하게 될까?"
내가 하도 주인공에게 '장애 와 초목표!' '장애!' '결핍!' 하니까 노이로제가 걸린 지망생들이 가끔 보인다. 그래서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주인공을 꼭 불쌍하게 만들어야 하나요? 그냥 멋있고 능력 있는 주인공은 안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자. 안 된다.
되긴 하는데 관객은 응원하지 않는다.
관객은 완벽한 주인공을 응원하지 않는다.
관객은 뭐라도 부족한 주인공, 뭔가 결여된 주인공, 세상에 치이는 주인공을 응원한다.
왜? 그게 우리 자신이니까.
우리는 모두 결핍 덩어리다. 돈이 부족하거나, 사랑이 부족하거나,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완벽한 주인공은 공감이 안 된다. 속된 말로 재수없다.
픽사는 이걸 정확히 안다. 특히 『월-E』는 '장애와 결핍' 이라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들이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를 버리고 떠난 지 700년. 월-E는 홀로 남아 쓰레기를 압축하고 쌓는다. 매일, 700년 동안. 이 설정만으로 우리는 이미 월-E를 동정하고, 응원하기 시작한다.
700년간 단 한 명의 대화 상대도 없었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바퀴벌레 한 마리.
월-E는 인간들이 남긴 영화 『헬로 돌리!』를 보며 사랑이 뭔지 배운다. 손을 잡는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며 동경한다. 고독은 월-E의 가장 근본적인 결핍이다. 그는 연결을 갈망한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싶어한다. 사랑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700년간 그럴 대상이 없었다. 이 장애는 영화 시작 30분 동안 대사 없이 보여진다. 월-E가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는 모습. 그 적막함이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월-E는 쓰레기를 치우는 기계다. 그게 전부다. 사랑할 수도, 꿈꿀 수도, 모험할 수도 없다. 그냥 쓰레기를 압축하고 쌓는다. 영원히. 하지만 월-E는 기능을 넘어서고 싶어한다. 그래서 인간의 물건들을 수집한다. 라이터, 루빅스 큐브, 포크와 숟가락. 그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존재다.
월-E가 컨테이너 집으로 돌아와 수집품들을 정리하는 장면을 보라. 그는 각 물건의 용도를 모른다. 하지만 소중히 다룬다. 이 물건들이 자신을 기계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월-E는 말을 할 수 없다. "월-E" 와 "이브" 정도의 단어만 발음 가능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소리와 몸짓뿐이다. 이브를 처음 만났을 때 월-E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그는 사랑을 느끼지만 말할 수 없다. 손을 잡고 싶지만 이브는 그를 위협으로 인식한다. 비에 젖은 이브를 우산으로 보호해주고, 해가 뜰 때 함께 그 빛을 바라보는 장면. 월-E는 말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답답함, 전달되지 않는 감정의 벽이 관객을 안타깝게 만든다.
이 세 가지 장애 - 극도의 고독, 기능적 존재로서의 한계, 소통 불가능 - 가 월-E를 완벽한 '언더독'으로 만든다.
700년을 혼자, 말도 못 하고, 기계로서만 존재하는 로봇. 우리는 첫 10분 만에 월-E를 응원하게 된다.
왜? 그가 우리니까.
외롭고, 자신의 한계에 갇혀 있고,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니까.
픽사는 언더독 만들기의 대가다. 모든 픽사 주인공은 초반에 명확한 장애와 결핍을 갖고 시작한다.
『UP』의 칼 할아버지는 78세 노인이다. 평생의 사랑 엘리를 잃었다. 그들이 함께 꿈꾸던 남미 파라다이스 폭포 여행은 이루지 못했다. 이제 집마저 철거 위기에 처했다.
칼의 장애는 '상실' 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꿈을 잃고, 삶의 의지를 잃었다. 그는 과거에 갇혀 있고,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영화 초반 10분, 칼과 엘리의 일생을 보여주는 몽타주를 보라.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슬픔, 여행 자금을 모았다 쓰기를 반복하는 삶, 결국 엘리가 죽는 순간.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칼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영화를 시작한다. 세상에 맞설 힘도, 의지도 없다. 그냥 혼자 집에 틀어박혀 엘리의 추억만 붙잡고 산다. 우리는 엘리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부터 칼을 응원한다. 그가 풍선 수천 개로 집을 띄워 올릴 때, 우리는 환호한다. 늙고 외롭고 무력한 노인이 세상에 맞서는 순간이니까. 칼의 장애는 월-E와 닮았다. 둘 다 극심한 고독 속에 있고, 과거에 갇혀 있고, 새로운 연결을 두려워한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는 11살 소녀다.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간다. 친구들을 잃고, 익숙한 환경을 잃고, 아이스하키 팀도 잃는다.
라일리의 장애는 '적응 불가능' 이다. 그녀의 감정 시스템은 혼란에 빠진다. 기쁨(Joy)은 슬픔(Sadness)을 배제하려 하지만, 결국 슬픔 없이는 진정한 기쁨도 없다는 걸 배운다. 라일리는 겉으로는 밝게 웃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다. 새 학교 첫날, 미네소타 추억을 이야기하다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스하키 선발전에서 실패한다. 부모님과도 거리가 생긴다.
라일리의 또 다른 장애는 '감정 조절 실패' 다. 그녀는 슬픔을 인정하지 못한다. 기쁨만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무너진다. 우리는 라일리가 무너지는 걸 보며 가슴 아파한다. 그녀의 감정들이 본부로 돌아가려 애쓰는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라일리의 장애도 월-E와 연결된다. 둘 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둘 다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고통받는다.
『토이스토리』의 우디는 카우보이 인형이다. 앤디의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생일 선물로 온 버즈 라이트이어가 모든 걸 빼앗아간다.
우디의 장애는 '존재 가치의 위협' 이다. 그는 더 이상 1등이 아니다. 새롭고 멋진 우주 레인저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우디가 앤디의 침대 위 자리를 차지하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을 보라. 다른 장난감들에게 자신의 리더십을 과시하려 애쓰는 모습을. 하지만 버즈가 오자 모든 게 무너진다.
우디의 또 다른 장애는 '질투와 불안' 이다. 자신이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앤디의 사랑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 우디가 질투하고, 실수하고, 버즈를 창밖으로 떨어뜨리는 순간조차 우리는 그를 이해한다. 그의 절박함이 느껴지니까. 우디의 장애도 월-E와 같다. 둘 다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월-E는 700년간 버려진 존재였고, 우디는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는 최고의 겁주기 괴물이다. 회사의 스타다. 하지만 어린 인간 소녀 부(Boo)가 괴물 세계로 들어오면서 모든 게 무너진다.
설리의 장애는 '시스템과의 충돌' 이다. 그는 부를 보호하려다 회사, 친구, 심지어 자신의 신념과도 싸워야 한다. 설리는 처음에 부를 무서워한다. 인간은 괴물에게 치명적이라는 게 괴물 세계의 상식이니까. 하지만 부가 자신을 "키티"라고 부르며 웃을 때, 설리는 혼란에 빠진다.
설리의 또 다른 장애는 '기존 신념의 붕괴' 다. 그는 평생 아이들을 겁주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부를 만나면서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설리가 부를 안고 눈보라를 헤쳐 나갈 때, 우리는 그의 편이다. 시스템이 아니라 한 아이를 선택한 그의 용기를 응원한다. 설리의 장애도 월-E처럼 '연결'에 관한 것이다. 설리는 부와의 연결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월-E는 이브와의 연결을 통해 기계 이상의 존재가 된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약 월-E가 처음부터 말을 유창하게 하고, 친구도 많고, 외롭지도 않았다면?
우리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칼이 처음부터 행복하고 아내도 살아있고 꿈도 이뤘다면?
그가 풍선으로 집을 띄워도 우리는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라일리가 이사를 잘 적응하고 새 친구도 금방 사귀었다면?
우리는 그녀의 여정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우디가 처음부터 버즈와 친했고 앤디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의 성장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설리가 처음부터 인간 아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부와의 우정은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가 없으면 변화도 없다.
변화가 없으면 이야기도 없다.
이야기가 없으면 응원도 없다.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다.
월-E로 다시 돌아가자.
월-E의 장애는 두 가지 층위로 작동한다.
외면적 장애와 내면적 장애. (미안하다. 지겹겠지만 어쩔수가 없다. 이게 그렇게 중요하다.)
외면적 장애는 700년의 고독, 소통 불가능, 기능적 한계다. 이건 눈에 보이는 장애다. 관객이 즉시 파악할 수 있다. 월-E가 혼자라는 것, 말을 못 한다는 것, 그저 쓰레기 치우는 기계라는 것. 이 외면적 장애가 월-E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든다. "불쌍한 로봇이네." 하고 느끼게 만든다.
내면적 장애는 연결에 대한 갈망, 사랑받고 싶은 욕구, 기계 이상이 되고 싶은 열망이다. 이건 월-E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장애다. 그가 『헬로 돌리!』를 수백 번 돌려보는 이유. 손 잡는 장면에서 멈추는 이유. 인간의 물건을 수집하는 이유. 이 내면적 장애가 월-E를 공감의 대상으로 만든다. "나도 저렇게 외로웠어." "나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어." 하고 느끼게 만든다.
픽사의 천재성은 이 두 장애를 완벽히 조화시킨다는 것이다.
『UP』의 칼은 외면적으로 78세 노인이고 아내를 잃었고 집이 철거 위기에 처했다. 내면적으로는 과거에 갇혀 있고 새로운 관계를 거부하고 꿈을 상실했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는 외면적으로 이사를 갔고 친구를 잃었고 새 환경에 부적응했다. 내면적으로는 슬픔을 거부하고 감정 조절에 실패하고 진정한 감정을 인정하지 못했다.
『토이스토리』의 우디는 외면적으로 버즈가 등장했고 앤디의 관심을 잃었고 다른 장난감들의 인정을 잃었다. 내면적으로는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의심했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는 외면적으로 인간 아이가 침입했고 회사와 충돌했고 친구와 갈등했다. 내면적으로는 기존 신념이 붕괴되고 용기가 필요했고 옳은 선택에 대해 고민했다.
외면적 장애는 플롯을 만든다.
내면적 장애는 주제를 만든다.
외면적 장애는 관객을 끌어들인다.
내면적 장애는 관객을 붙잡는다.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내면적 장애가 더 중요하다.
내면적 장애가 결국 '작품의 주제' 이기 때문이다.
언더독(underdog)은 약자를 의미한다.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주인공. 왜 언더독이 관객의 응원을 받을까?
첫째, 우리가 언더독이니까.
우리는 매일 불리한 싸움을 한다. 월급은 적고 물가는 높다. 시간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다.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예쁘고, 더 똑똑하고, 더 성공했다. 월-E를 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본다. 700년을 혼자 쓰레기 치우는 로봇. 그게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우리 자신이다. 젠장. 띠바.
둘째, 변화의 폭이 크니까.
바닥에서 시작하면 올라갈 곳만 남는다. 월-E는 지구 쓰레기장에서 시작해 우주로 간다. 칼은 외로운 집에서 시작해 남미 정글로 간다. 라일리는 무너진 상태에서 시작해 감정의 균형을 찾는다. 이 변화의 폭이 감동을 만든다. 처음부터 완벽한 주인공은 변할 곳이 없다. 변하지 않으면 감동도 없다. 캐릭터 아크를 위해서 언더독이 유리하다.
셋째, 승리가 더 달콤하니까.
월-E가 이브의 손을 잡는 순간, 우리는 환호한다. 700년을 기다린 그 순간이니까. 칼이 러셀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 우리는 미소 짓는다. 엘리를 잃고 세상을 거부했던 그가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니까. 라일리가 부모님께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는 순간,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드디어 진짜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이니까. 우디가 버즈에게 "당신은 장난감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멋진 장난감"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의 성장을 느낀다. 설리가 부를 보내고 나중에 재회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힘을 믿는다. 언더독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다. 그들이 이기면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지망생들의 습작을 볼 때 흔히 보이는 실수가 있다.
"주인공이 너무 완벽하다." 능력도 있고, 외모도 좋고, 성격도 좋고, 인기도 많다.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으면 이야기도 없다.
주인공을 만들 때 자문하라. "이 인물의 장애는 무엇인가?" "이 인물이 가장 갈망하는 건 무엇인가?" "이 인물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무엇인가?"
월-E의 장애는 고독, 소통 불가, 기능적 존재다.
월-E의 갈망은 연결, 사랑,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다.
월-E의 두려움은 영원한 외로움, 버려짐이다.
칼의 장애는 상실, 과거에 갇힘, 세상과의 단절이다.
칼의 갈망은 엘리와의 약속 이행, 의미 있는 삶이다.
칼의 두려움은 엘리를 배신하는 것, 새로운 상실이다.
라일리의 장애는 적응 실패, 감정 조절 불가다.
라일리의 갈망은 행복, 안정, 소속감이다.
라일리의 두려움은 슬픔에 압도당하는 것, 부모님 실망시키기다.
우디의 장애는 질투, 가치 의심, 리더십 상실이다.
우디의 갈망은 앤디의 사랑, 1등 자리, 인정이다.
우디의 두려움은 버려지는 것, 무가치해지는 것이다.
설리의 장애는 신념 붕괴, 시스템과의 충돌이다.
설리의 갈망은 부 보호, 옳은 일 하기다.
설리의 두려움은 부를 다치게 하는 것, 친구 잃는 것이다.
이 세 가지 - 장애, 갈망, 두려움 - 가 명확하면 주인공은 살아난다.
이게 없으면 주인공은 그냥 종이 위의 이름일 뿐이다.
픽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명확하다. 주인공은 완벽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받는다. 장애가 있어서 공감받는다. 결핍이 있어서 응원받는다.
월-E는 700년을 혼자 보냈기에 이브와의 사랑이 아름답다. 칼은 모든 걸 잃었기에 러셀과의 우정이 소중하다. 라일리는 무너졌기에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용감하다. 우디는 질투했기에 우정의 가치를 깨닫는다. 설리는 두려워했기에 용기의 의미를 안다.
장애는 약점이 아니다. 장애는 가능성이다. 주인공이 어디서 시작하는지가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바닥에서 시작하는 주인공만이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다.
작가 지망생 여러분. 당신의 주인공을 사랑한다면, 그를 완벽하게 만들지 마라. 대신 그에게 장애를 주어라. 결핍을 주어라. 두려움을 주어라. 그리고 그 장애를 극복하는 여정을 보여주어라.
월-E가 이브의 손을 잡기까지 700년이 걸렸듯이. 당신의 주인공도 자신만의 700년을 견뎌내게 하라. 그 기다림이 감동을 만든다. 그 고통이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그 장애가 이야기를 만든다.
완벽한 주인공은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처 입은 주인공, 불완전한 주인공, 세상에 치이는 주인공에게는 모두가 박수를 보낸다. 왜? 그게 우리 자신이니까. 우리도 매일 싸우고 있으니까. 우리도 결핍 속에서 살아가니까. 젠장. 띠바.
픽사는 이 진리를 안다. 그래서 그들의 주인공은 모두 바닥에서 시작한다. 월-E는 쓰레기장에서, 칼은 텅 빈 집에서, 라일리는 무너진 감정에서, 우디는 질투에서, 설리는 두려움에서. 하지만 그들은 모두 별에 도착한다. 사랑에, 우정에, 성장에, 용기에.
당신의 주인공도 그렇게 만들어라. 바닥에서 시작하게 하라. 그래야 별까지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