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심화편
"캐릭터가 우선인가요? 플롯이 우선인가요? 아이템이 우선인가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궁금해 한다. 과연 답이 있을까?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단언코
단발성 기획이라면 상관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야 시리즈화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플랫폼이나 제작사 측 구미를 당기기는 힘들지 않을까?
1939~1940s
밥 케인 (Bob Kane)
빌 핑거 (Bill Finger)
제리 로빈슨 (Jerry Robinson)
1970s
데니스 오닐 (Dennis O’Neil)
닐 애덤스 (Neal Adams)
1980s
프랭크 밀러 (Frank Miller)
앨런 무어 (Alan Moore)
데이비드 마주켈리 (David Mazzucchelli)
브라이언 볼런드 (Brian Bolland)
1990s
제프 로브 (Jeph Loeb)
팀 세일 (Tim Sale)
더그 먼치 (Doug Moench)
켈리 존스 (Kelley Jones)
2000s
그랜트 모리슨 (Grant Morrison)
폴 디니 (Paul Dini)
에드 브루베이커 (Ed Brubaker)
그렉 루카 (Greg Rucka)
2010s
스콧 스나이더 (Scott Snyder)
그렉 카풀로 (Greg Capullo)
톰 킹 (Tom King)
2020s
제임스 타이넌 4세 (James Tynion IV)
숀 머피 (Sean Murphy)
칩 즈다르스키 (Chip Zdarsky)
맷슨 톰린 (Mattson Tomlin)
당연히 '캐릭터' 가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또 다시 언급하지만 주인공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설정해야 하는 것은?
"이 인물의 장애는 무엇인가?"
"이 인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인물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인물의 초목표는 무엇인가?"
자... 이제 심화편이니까 위의 4개 설정에 X2. 이 모든 것은 '외면적'과 '내면적' 두 층위로 나뉜다.
『록키』또 록키다.
외면적 장애:
- 경제적 궁핍 (빈민가 삼류 복서)
- 사회적 무시 (대출업자 심부름꾼으로 연명)
- 기술적 한계 (제대로 된 훈련 환경 없음)
내면적 장애:
- 자존감 부족 ("나는 멍청하고 별볼일 없는 인간")
- 체념에 익숙함 (진지한 도전보다는 포기)
- 자기 가치 의심 (스스로를 믿지 못함)
외면적 장애는 눈에 보인다. 관객이 즉시 파악할 수 있다. "아, 저 사람 가난하구나. 무시당하는구나."
내면적 장애는 행동을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록키가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에이드리언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 기회가 왔을 때도 "난 안 돼"라고 말하는 순간들. 즉 서브텍스트.
이 두 층위의 장애가 겹쳐질 때 캐릭터는 입체적이 된다.
외면적 초목표:
- 15라운드 완주하기
- 세계 챔피언과의 경기에서 버티기
- 에이드리언과의 사랑 이루기
내면적 초목표:
- 자존감 회복
- 스스로를 증명하기
- "나도 누군가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외면적 초목표는 플롯을 만든다. "록키가 15라운드를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이 관객이 따라가는 서사의 선이다.
내면적 초목표는 주제를 만든다. "한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 이것이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진짜 이야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내면적 초목표가 결국 '주제' 라는 나의 스토리텔링 원칙. 강조강조 꽃표.
록키는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판정패했다. 외면적 초목표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15라운드를 완주했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내면적 초목표는 성공했다. '성공적인 주제 완성'
관객은 록키가 이긴 것처럼 느낀다. 왜? 진짜 싸움은 링 위가 아니라 록키의 내면에서 일어났으니까.
『브레이킹 배드』또 월터화이트 다.
외면적 장애:
- 경제적 무력감 (고등학교 교사 월급으로는 가족 부양 불가)
- 말기 폐암 진단
- 사회적 무시 (능력 있지만 인정받지 못함)
내면적 장애:
- 억압된 자아 (평생 착실하게만 살아옴)
- 열등감 (그레이 매터즈를 떠난 후의 원한)
-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좌절
외면적 초목표:
- 가족을 위한 돈 벌기
- 치료비 마련
- 유산 남기기
내면적 초목표:
- 진정한 자아 발견
- 자신의 능력 증명
- 인정받기
시리즈 초반, 월터는 "가족을 위해서" 라고 말한다. 이것이 외면적 초목표다. 외면적 초목표는 플롯을 만든다.
하지만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진실이 드러난다. 월터의 내면이 진짜 원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 증명이었다. 내면적 초목표가 주제를 만든다.
『브레이킹 배드』는 "한 남자가 가족을 위해 범죄자가 되는 이야기" 가 아니다.
"억압된 자아가 폭발하며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의 이야기" 다. 왜? 내면적 초목표가 작품의 주제! 니까.
『그래비티』또 라이언 박사다.
외면적 장애:
- 우주 쓰레기 폭파로 동료들 사망
- 산소 부족
- 지구로 돌아갈 방법 상실
내면적 장애:
- 4살 딸 사라를 잃은 트라우마
- 삶의 의지 상실
- 고립 (지구에서도, 우주에서도)
외면적 초목표:
- 지구 귀환
- 생존
- 중국 우주정거장까지 도달
내면적 초목표:
- 다시 살고 싶다는 의지 회복
- 딸의 죽음 받아들이기
- 삶의 의미 재발견
라이언이 우주복 안에서 산소를 끄려는 순간을 보자. 그녀는 살 이유를 찾지 못했다. 외면적으로는 생존이 목표지만, 내면적으로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맷 코왈스키의 환영이 나타나 그녀에게 묻는다. "넌 뭘 좋아했지?"
라이언은 그 순간 깨닫는다. 아침의 햇살, 개 짖는 소리, 그런 일상의 것들.
그녀의 내면적 초목표가 바뀌는 순간이다. "살고 싶다."
지구에 착륙한 라이언이 물에서 나와 진흙을 움켜쥐는 마지막 장면.
그녀는 외면적 초목표(지구 귀환)도 달성했고, 내면적 초목표(삶의 의지 회복)도 달성했다.
장애가 있으면 그것을 극복하려는 갈망이 생긴다.
결핍이 있으면 그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생긴다.
『노팅힐』또 서점 아저씨다.
외면적 결핍:
- 이혼 후 혼자
- 경영난에 시달리는 서점
- 평범하고 안전한 삶
내면적 결핍:
- 로맨스에 대한 두려움
- 자신감 부족
- 새로운 도전에 대한 회피
외면적 갈망:
- 안나와의 사랑 성취
- 신분 격차 극복
- 행복한 관계
내면적 갈망:
- 진정한 사랑에 대한 용기 회복
-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상처를 넘어선 새로운 시작
윌리엄이 안나에게 "나는 그냥 서점 주인일 뿐이에요. 한 소녀 앞에 서서 사랑해달라고 부탁하는" 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외면적 신분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용기를 회복한다.
두려움 - 장애의 또 다른 이름
『월-E』
외면적 두려움:
- 700년간의 극도 고독
- 소통 상대 부재
- 기능적 존재로서의 한계
내면적 두려움:
- 영원한 외로움
- 버려짐
- 의미 없는 존재로 끝나기
월-E가 이브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행동을 보자.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브가 자신을 공격할까봐 두렵지만, 700년의 외로움이 그 두려움보다 크다.
두려움과 갈망이 충돌하는 순간, 캐릭터는 선택을 해야 한다.
월-E는 갈망을 선택했다. 이브와 함께 있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외면적 두려움은 상황에서 나온다. (우주선이 폭발할 수 있다)
내면적 두려움은 정체성에서 나온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을지 모른다)
『쓰리빌보드』 밀드레드 헤이즈.
외면적 두려움:
- 딸의 범인을 영원히 찾지 못할 것
- 마을 전체와의 갈등
- 법적 처벌 (방화, 폭행)
내면적 두려움:
- 딸이 잊혀지는 것
- 자신이 나쁜 엄마였다는 죄책감
- 분노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밀드레드가 광고판을 세우는 것은 외면적으로는 경찰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딸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안젤라가 죽던 날 밤, 그들은 싸웠다. 밀드레드는 그 죄책감을 안고 산다.
광고판은 딸에 대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구원이다.
1. 인물의 장애는 무엇인가?
- 외면적: 눈에 보이는 불리한 조건
- 내면적: 마음속 상처와 트라우마
2. 인물의 결핍은 무엇인가?
- 외면적: 돈, 지위, 관계 등 부족한 것
- 내면적: 사랑, 자존감, 의미 등 채워지지 않는 것
3. 인물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 외면적: 상황적 위협 (죽음, 실패, 상실)
- 내면적: 존재적 공포 (버림받음, 무가치, 의미 상실)
4. 인물의 초목표는 무엇인가?
- 외면적: 플롯을 만드는 구체적 목표
- 내면적: 주제를 만드는 궁극적 갈망
이 네 가지에 답할 수 있을 때, 당신의 캐릭터는 '입체적으로다' 완성된다.
개론편에서 등장했던 크리넥스 티슈통을 또 꺼냈다. 고정된 시점으로 한쪽에서 보면 그것은 그냥 직사각형이다. 하지만 시점을 바꾸는 순간 깊이가 생긴다. 당신의 캐릭터에 '깊이' 가 생기는 순간 이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놓인 색종이. 2차원 평면에서는 X축과 Y축만 존재한다. 이것이 평면적 캐릭터 다.
X축은 정보 전달. "나는 의사다", "나는 복수하겠다", "나는 엄마를 잃었다." 누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지를 나타낸다.
Y축은 감정 표현. 울거나, 웃거나, 분노하거나. 그 감정을 얼굴과 목소리로 드러낸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객은 그 정보와 감정을 받아들이지만, 그게 전부다. 그 캐릭터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표면 아래에 무엇이 흐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Z축이 필요하다.
3차원의 입체공간. Z축은 깊이를 의미한다. 캐릭터의 세계에서 Z축은 서브텍스트 다.
Z축: 숨겨진 의미
무의식적 욕망
억압된 감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기도 모르는 방어기제
표면적 행동 뒤의 진정한 동기
캐릭터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처
개론편에서 소개했던 어떤 상황을 다시 보자.
"남자와 여자가 약속을 했다. 남자는 30분 늦게 나타난다"
2차원 표현(X축+Y축만)
남자: 미안해. 차가 막혔어.
여자: 나는 화가 났어. 왜냐하면 넌 약속을 어겼거든.
X축에는 '약속 파기'라는 정보가 있다. Y축에는 '화남'이라는 감정이 있다. 관객은 상황과 감정을 파악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이 두 캐릭터는 평면 위의 점이다.
3차원 표현(X축+Y축+Z축)
남자: 미안해. 차가 막혔어.
여자: 괜찮아... 어차피 익숙해.
여자의 "괜찮아. 어차피 익숙해" 라는 한 문장 안에는 여러 층의 의미가 녹아 있다.
반복된 실망의 역사
포기해버린 기대
상처받기를 거부하는 방어기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
남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
혼자만 상처받아온 경험
이제 관객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한다. 여자의 한 문장은 그녀의 전체 감정사를 암시한다. 캐릭터가 살아난다. 입체적으로다.
헤밍웨이의 빙산이론이 바로 이것이다.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8분의 1에 불과하고, 8분의 7은 수심 아래... 아니 크리넥스 통 아래 숨어 있다. 그 숨겨진 부분이 Z축이다. 서브텍스트 다.
Z축이 가장 강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Z축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캐릭터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능동적 참여자가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한다.
둘째, Z축은 보편성을 만든다.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상처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으로 승화된다. 남자의 지각과 여자의 화남은 개별적이지만, 그 뒤에 숨은 반복된 실망과 포기는 모든 관객이 느낀 감정이다.
셋째, Z축은 캐릭터에 도덕성을 부여한다. 여자의 "괜찮아. 어차피 익숙해"는 한 문장이 용서보다는 항복처럼 들린다. 관객은 여자를 불쌍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 체념 속에 담긴 지혜와 슬픔을 본다. 캐릭터가 더 이상 단순한 감정의 집합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이 된다.
그렇다면 Z축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금지된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절대로 "그녀는 상처받았다"고 직접 말해서는 안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정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보여져야 한다.
『쓰리빌보드』그녀가 안젤라의 방 문을 여는 장면
밀드레드가 안젤라의 방 문을 연다. 방은 7개월 전 그대로다. 포스터, 책, 베개.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 그녀가 침대에 앉는다. 스프링이 삐걱거린다. 그녀가 베개를 안는다. 잠깐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손을 뗀다. 베개를 다시 원래 자리에 놓는다. 정확히 원래 자리에. 그녀가 일어난다. 방을 나간다. 문을 닫는다. 손잡이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여기서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베개를 안는다" = 딸이 그리워서
"냄새를 맡는다" = 딸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갑자기 손을 뗀다" = 감정에 취해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
"정확히 원래 자리에" = 혼자만의 의식, 강박적 행동
"손잡이를 한 번 더 확인한다" = 방금 한 것이 현실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대사도 없다. 음악도 강요되지 않는다. 오직 행동만으로 Z축을 드러낸다. 그것이 진정한 서브텍스트의 힘이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밀드레드의 슬픔, 강박, 자신에 대한 통제, 딸에 대한 그리움, 감정의 불안정성을 모두 본다. 그 모든 것이 Z축이다.
1. 갈등 속에 욕망 숨기기
캐릭터가 말하는 것과 원하는 것이 다를 때, Z축이 빛난다.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해" vs "나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이 두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 Z축이 만들어진다. 캐릭터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2. 무의식적 반응으로 내면 표현하기
캐릭터가 완전히 통제된 행동만 하면 평면적이다. 모순되는 순간, 통제되지 않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밀드레드가 베개에서 손을 뗀다. 이것은 의식적 선택이 아니다. 감정에 압도당한 순간의 반사 행동이다. 그 반사 행동이 Z축이다.
3. 반복되는 제스처와 습관으로 심층 드러내기
같은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그 의미는 깊어진다.
'노팅힐'의 윌리엄이 엄지손가락을 깨물 때마다 그것은 긴장을 드러낸다. 하지만 어디서는 불안감이고, 어디서는 거짓을 감추려는 것이고, 어디서는 욕구 불만이다. 같은 제스처가 상황에 따라 다른 깊이를 갖는다.
4. 침묵의 활용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강력할 수 있다.
라이언이 "사라야. 엄마야."라고 말한 후 침묵한다. 그 침묵은 무한하다. 그 안에는 죄책감, 후회, 달래는 마음, 이별의 최종 인정, 모든 것이 있다.
5. 신체 언어의 세밀한 관찰
"그녀가 의자에 앉는다"는 것도 그 앉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떨어지듯 앉는다 = 피로와 체념
조심스럽게 앉는다 = 공포와 불안
무너지듯 앉는다 = 절망과 항복
권위 있게 앉는다 = 통제와 자기방어
같은 동작이 다양한 Z축을 표현할 수 있다.
개론편에서 다루지 않았던 T축. T축은 무엇인가? Time, 시간의 축이다.
3차원에서는 현재만 존재한다. X축과 Y축에서 벌어지는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캐릭터가 입체적이 되려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 순간에 겹쳐 있어야 한다. Z축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Z축은 현재 보여지는 서브텍스트, T축은 그보다 좀 더 먼 시간대의 과거와 미래로 나눈다.
"컨택트(어라이벌) 에서 루이즈를 보자"
루이즈가 헵타포드의 언어를 해독하는 장면.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간다. 그리고 미래의 한나가 보인다.
현재: 헵타포드와 소통하려는 시도
과거: 한나와의 함께했던 시간들
미래: 한나가 죽음을 맞는 장면
이 세 시간대가 한 화면에 겹쳐 있다. 루이즈는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살고 있다. 그것이 T축이다.
또는 영화 '어바웃타임'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해변을 걷는 장면에서 현재와 과거가 교차한다. 이 순간이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아들만 알고 있다. 그 비동시적 시간 인식이 T축을 만든다.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는 어떤가?"
월터가 약을 제조하는 현재의 장면. 하지만 그 장면 안에는:
과거: 그레이 매터즈에서 쫓겨난 원한
현재: 말기 암 환자로서의 절박함
미래: 그가 되고 싶은 큰 존재
이 세 시간대가 충돌하는 곳에서 월터가 만들어진다. 과거의 수치심, 현재의 절박함, 미래의 욕망이 교직되어 한 명의 복잡한 인간이 된다.
T축이 없으면 월터는 단순히 "암 환자인 화학자"이다. 보여지는 현재상태. 하지만 T축이 있으면 월터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미래) 굴욕당한 천재(과거)"가 된다.
"UP의 칼은 어떤가?"
칼이 러셀과 함께 모험을 시작하는 현재 순간. 하지만 그가 매 순간 죽은 엘리를 생각한다는 것을 관객은 안다.
과거: 엘리와 함께 꿈꾼 파라다이스 폭포
현재: 낡은 집과 풍선으로 하는 모험
미래: 엘리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할 삶
칼의 모든 행동은 이 세 시간대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T축이다. 과거를 소유하려다 현재를 놓치고, 현재를 살려다 과거에 사로잡힌다. 그 갈등이 칼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1. 플래시백의 활용
과거가 현재를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직설적인 플래시백은 피해야 한다. 대신 현재의 행동에서 과거의 잔상이 스쳐 가게 한다.
라이언이 무전기를 잡는 손떨림. 그 손떨림 속에 4년 전 사라를 잃던 날의 손떨림이 겹쳐 있다.
2. 앞뒤로 보기
캐릭터가 미래를 예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터가 약을 제조하는 장면. 그런데 그의 눈이 가끔 초점을 잃는다. 그 초점 잃은 눈 속에는 미래의 자신이 보인다. 권력자로서의 자신, 아니면 죽을 순간의 자신.
3. 현재 장면에 과거와 미래를 섬유처럼 짜 넣기
가장 미묘하고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캐릭터는 현재를 살지만, 그 모든 움직임에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불안이 스며 있다.
밀드레드가 광고판을 세우는 현재의 행동. 그런데 그 행동 속에는:
과거: 계속 외면받았던 억울함의 축적
현재: 마을을 향한 절실한 외침
미래: 그 광고판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한 알 수 없는 예감
세 시간대가 한 동작 안에 압축되어 있다.
4. 나이의 변화를 통한 T축 표현
우리는 모두 과거의 자신을 안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을 추측한다. 나이가 들면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T축을 시각화하는 방법이다.
'UP'에서 칼의 주름 진 손. 그 손은 평생을 살아온 이력서다. 그 손이 러셀을 잡을 때, 과거와 미래가 만난다.
5. 같은 행동의 반복과 변화
캐릭터가 같은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의미가 변한다. 그것이 T축을 드러낸다.
처음: 라이언이 우주복을 입는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빛.
중간: 라이언이 우주복을 입는다. 절박한 생존 본능.
마지막: 라이언이 우주복을 벗는다. 변화된 눈빛.
같은 행동이 T축을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변한다.
평면적 캐릭터: X축 + Y축 = 정보 + 감정
입체적 캐릭터: X축 + Y축 + Z축 + T축 = 정보 + 감정 + 서브텍스트 + 시간의 층위
"입체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모순이다.
캐릭터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캐릭터가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
캐릭터가 원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 라이언은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은 돌아갈 이유를 찾고 싶어한다.
- 루이즈는 외계인과 소통하려 하지만, 실은 미래의 선택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
- 밀드레드는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 실은 딸이 잊혀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 월터는 가족을 위해 약을 만든다고 하지만, 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 칼은 어린 러셀을 도우려 하지만, 실은 엘리와의 약속을 대리 완수하려고 한다.
이 모든 모순이 겹쳐 있을 때, 캐릭터는 비로소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다.
절대로 캐릭터의 내면을 "입으로!" 설명하지 말 것.
"그녀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따위의 표현 말이다.
대신 그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다.
베개를 안고 냄새를 맡던 밀드레드의 동작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딸을 부르는 라이언의 침묵으로.
폭풍우 속에서도 유지하는 월터의 냉정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되 아무것도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입체 캐릭터의 기술이다.
캐릭터는 쓰면서 만들어진다.
Z축을 고민하면서 당신은 그 인물의 상처를 마주한다.
T축을 그으면서 당신은 그 인물의 시간을 이해한다.
모순을 발견할 때마다 그 캐릭터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래서 좋은 캐릭터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계획되고, 고민되고, 부정되고, 다시 고민되면서 만들어진다.
당신이 어젯밤 만든 캐릭터에게 물어보자.
"넌 정말로 그 말을 믿니?"
"그 행동 뒤에 뭐가 있는 거야?"
"넌 미래를 두려워하니?"
"과거가 지금을 어떻게 만들었니?"
그 캐릭터가 대답을 거부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침묵 속에서 그 대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Z축과 T축을 탐색하는 작가의 여정이다.
월-E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700년의 침묵 속에 모든 것이 있다.
라이언은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무한한 복잡성이 있다.
밀드레드는 "정의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의와 복수의 경계는 그녀도 모른다.
월터는 "가족을 위해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 뒤의 욕망은 자신도 모른다.
칼은 "내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러셀과의 모험은 그 시대를 다시 소환한다.
모든 캐릭터의 진정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은 부분에 있다.
당신이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은 그 말하지 않은 부분을 그림처럼 그려내는 것이다. (*나나 잘 하자!)
X축과 Y축은 관객도 본다. 하지만 Z축과 T축은 오직 예민한 관객만, 그리고 당신의 의도를 받아들인 관객만 알아챈다.
그 관객들이 당신의 캐릭터에 눈물을 흘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그 캐릭터 속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입체적 캐릭터 안에는 항상 관객이 들어갈 공간이 있다. 그것이 Z축의 마법이다. 그것이 T축의 힘이다.
평면이 아닌 입체, 말하는 것이 아닌 침묵, 현재가 아닌 시간의 다른 층위. 그것이 관객과 캐릭터 사이를 잇는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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