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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행어”: 다음 화가 궁금해 미치는 기술

by 꼬불이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려?”


시리즈물을 보다가 이런 말을 해본 적 있는가? 주인공이 총구를 겨눈 채 화면이 암전되거나,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다음 화에 계속”이라는 자막이 뜨는 순간. 리모컨을 집어던지고 싶지만 동시에 다음 화를 당장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그 기분.


그것이 바로 클리프행어(Cliffhanger)다.


직역하면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다. 주인공이 절벽 끝에 손가락 하나로 매달려 있는데 화면이 꺼지는 상황. 관객은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다음 화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 일주일이 지옥이다.


클리프행어는 시리즈물의 생명줄이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기술이다.


왜? 관객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영화는 2시간 안에 모든 걸 해결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수십 화를 이어가야 한다. 매 화마다 관객이 이탈할 위험이 있다. 클리프행어는 그 이탈을 막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왕좌의 게임”: 클리프행어의 교과서


『왕좌의 게임』 시즌 1 에피소드 9.

주인공 네드 스타크가 반역죄로 처형당한다. 시즌 내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인물이 9화에서 목이 잘린다. 관객은 충격에 빠진다. “주인공이 죽어?” 에피소드는 거기서 끝난다.


다음 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있는가? 네드가 죽었으니 이제 누가 주인공인가?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가? 복수는? 전쟁은?


이것이 클리프행어의 첫 번째 유형이다. ‘충격적 사건 클리프행어’.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던지고 그 결과는 다음 화로 미룬다.



『왕좌의 게임』 시즌 4 에피소드 10의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다.

타이윈 라니스터가 화장실에서 아들 티리온에게 석궁으로 쏘여 죽는다. 시즌 내내 절대 권력자였던 인물이 가장 초라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화면이 암전된다.


관객은 궁금하다. 티리온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니스터 가문은? 왕좌는? 이 모든 질문이 다음 시즌까지 이어진다.



『왕좌의 게임』의 클리프행어는 단순히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세계관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한 인물의 죽음이 모든 세력 관계를 재편한다. 그래서 관객은 다음 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브레이킹 배드”: 도덕적 클리프행어


『브레이킹 배드』는 다른 방식의 클리프행어를 사용한다. 시즌 3 에피소드 13 “Full Measure”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월터 화이트가 마약왕 거스의 명령으로 제시를 죽이러 간다. 하지만 월터는 제시를 죽일 수 없다. 대신 게일이라는 다른 화학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월터가 제시에게 전화를 건다.


“게일의 집 주소를 알아내. 그리고 그를 죽여.”


제시가 게일의 집 문 앞에 선다. 총을 꺼낸다. 게일이 문을 연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친다. 제시가 총구를 겨눈다. 게일의 얼굴에 공포가 번진다.


총소리.


암전.


관객은 미친다. 제시가 정말 쐈는가? 게일은 죽었는가? 제시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인가?


이것이 클리프행어의 두 번째 유형이다. ‘도덕적 선택 클리프행어’. 캐릭터가 중대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화면을 끊는다. 관객은 그 선택의 결과뿐 아니라 캐릭터의 영혼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한다.


『브레이킹 배드』 시즌 4 마지막 화도 마찬가지다. 월터가 거스를 폭탄으로 죽인다. 거스가 폭발 후 방에서 걸어나온다.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자 그의 얼굴 절반이 날아가 있다. 거스가 쓰러진다.


월터가 스카일러에게 전화한다.


“I won.”


시즌 끝.


관객은 충격과 동시에 공포를 느낀다. 월터가 이겼다. 하지만 그가 진 것은 무엇인가? 그의 인간성? 가족?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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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행어는 단순히 “다음 화가 궁금하다”가 아니라 “이 인물은 이제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클리프행어”: 2시간 안의 긴장


영화는 드라마처럼 다음 화가 없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도 클리프행어는 작동한다. 중간 중간 긴장의 정점에서 장면을 끊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인셉션』을 보자. 코브 팀이 꿈 속에서 피셔의 무의식을 조작하려 한다. 하지만 여러 꿈의 층위가 동시에 진행된다. 1층에서는 차가 다리에서 떨어지고, 2층에서는 호텔 복도에서 싸우고, 3층에서는 눈 요새를 공격한다.


각 층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 때마다 화면은 다른 층위로 넘어간다. 차가 물에 빠지려는 순간, 호텔 복도의 총격전, 눈 요새의 폭발. 관객은 각 층위의 결과를 알고 싶지만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다. 긴장은 계속 쌓인다.


이것이 클리프행어의 세 번째 유형이다. ‘병렬 긴장 클리프행어’. 여러 장면을 교차 편집하며 각 장면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다크나이트』의 페리씬 대결도 마찬가지다. 조커가 두 배에 폭탄을 설치한다. 한 배는 죄수들, 다른 배는 일반 시민들. 각 배에 상대 배를 폭파시킬 버튼이 있다. 자정까지 한 쪽이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둘 다 폭발한다.


화면은 두 배를 오간다. 시민들의 배에서 버튼을 누르려는 사람, 죄수들의 배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배트맨이 조커와 싸우는 장면, 다시 시민들의 배. 각 장면이 클리프행어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마다 관객은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고 외친다.


영화의 클리프행어는 드라마와 다르다. 일주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음 장면까지 몇 분간 관객을 긴장 상태로 유지한다. 그 몇 분이 영화 전체의 리듬을 만든다.




“클리프행어의 본질”: 미완의 문장


클리프행어는 결국 “미완의 문장”이다.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채 멈춘다. 관객의 뇌는 그 문장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주인공이 절벽에 매달렸다. 그런데…”
“주인공이 총을 쐈다. 하지만…”
“주인공이 선택을 내렸다. 그래서…”


“그런데”, “하지만”, “그래서” 뒤의 이야기를 관객은 알고 싶어한다. 인간의 뇌는 미완성을 견디지 못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부른다.


완료된 일보다 미완료된 일을 더 잘 기억하는 현상이다.


클리프행어는 이 효과를 극대화한다. 관객은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그것을 생각한다. 일주일 내내. 친구들과 이야기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토론한다. 유튜브에서 리뷰를 본다. 다음 화를 기다리며 이전 화를 다시 본다.


드라마 제작자들이 클리프행어를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클리프행어는 관객을 이야기 속에 붙잡아둔다. 다음 화까지 일주일이 아니라 일년이 걸려도 관객은 돌아온다. 왜? 그 미완의 문장을 완성하고 싶으니까.



“나쁜 클리프행어 vs 좋은 클리프행어”


모든 클리프행어가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나쁜 클리프행어는 관객을 짜증나게 만든다.


나쁜 클리프행어의 특징:

1. 인위적이다. 자연스러운 긴장이 아니라 억지로 만든 위기다.
2. 반복된다. 매 화마다 같은 패턴의 클리프행어를 쓴다. “주인공이 위험에 처했다 다음 화에서 쉽게 벗어난다”를 반복하면 관객은 학습한다.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3. 해결이 너무 쉽다. 전 화에서 주인공이 절벽에 매달렸는데 다음 화 첫 장면에서 가볍게 올라온다. 관객은 배신감을 느낀다.


좋은 클리프행어의 특징:

1. 필연적이다. 이야기의 흐름상 그 지점에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다. 억지가 아니다.
2. 다양하다. 물리적 위기, 도덕적 선택, 관계의 파국, 비밀의 폭로. 매번 다른 종류의 클리프행어를 사용한다.
3. 해결에 대가가 따른다. 전 화의 위기를 해결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무언가를 잃는다. 관객은 납득한다.


『브레이킹 배드』의 클리프행어가 위대한 이유는 세 번째 특징 때문이다. 제시가 게일을 쏜 후, 그는 살았지만 영혼은 죽었다. 월터가 거스를 죽인 후, 그는 이겼지만 인간성을 잃었다. 모든 클리프행어의 해결에는 비극적 대가가 따른다.




“습작생들을 위한 클리프행어 체크리스트”


당신이 시리즈물을 쓰고 있다면, 각 화의 마지막을 점검하라.


1. 긴장의 정점인가?

- 이 시점이 그 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은 순간인가?

- 아니라면 왜 여기서 끊는가?


2. 관객이 궁금해할 질문이 있는가?

- “그래서 어떻게 돼?”

-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까?”

- “이 비밀이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

- 명확한 질문이 없으면 클리프행어가 아니다.


3. 다음 화 첫 장면이 준비되어 있는가?

- 클리프행어를 만들고 나서 다음 화를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는 것은 늦다.

- 클리프행어를 만들 때 이미 해결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4. 캐릭터에게 진짜 위기인가?

- 주인공이 총구를 겨눴는데 관객이 “어차피 안 죽어”라고 생각한다면 실패한 클리프행어다.

- 관객이 “정말 쏠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해야 성공한 클리프행어다.


5. 이전 화들과 패턴이 다른가?

- 매번 같은 방식의 클리프행어는 효과가 떨어진다.

- 물리적 위기 도덕적 선택 관계의 파국 비밀의 폭로. 다양하게 섞어라.




“클리프행어의 최종 목표”: 신뢰


역설적이지만 클리프행어의 최종 목표는 관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이 작가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클리프행어를 남발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억지로 긴장을 만들지 않는다.”


관객이 이렇게 믿을 때, 클리프행어는 최대의 효과를 발휘한다. 『왕좌의 게임』 초반 시즌들이 그랬다. 관객은 제작진을 믿었다. “이들은 정말 주인공을 죽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클리프행어가 진짜 위기로 느껴졌다.


반대로 『왕좌의 게임』 후반 시즌들은 그 신뢰를 잃었다. 중요한 캐릭터들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계속 살아남았다. 관객은 학습했다. “어차피 안 죽어.” 클리프행어의 효과가 사라졌다.


클리프행어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이 작동하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관객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약속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진짜 위기를 보여줄 것이다.”
“나는 너희가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만들 것이다.”
“나는 너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킬 때, 클리프행어는 관객을 절벽 끝에 매달아놓는다. 그리고 관객은 기꺼이 매달린다. 다음 화까지. 다음 시즌까지. 끝까지.


당신의 클리프행어는 관객과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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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영화 『클리프행어』(1993) - 실베스터 스탤론


제목부터 클리프행어인 이 영화는 록키의 스탤론이 산악 구조대원으로 나온다. 콜로라도 로키산맥이 배경이다.


산악 구조대원 게이브 워커(스탤론)는 동료 할의 연인 사라를 구조하다 그녀를 추락사 시킨다. 죄책감에 산을 떠난다. 8개월 후, 옛 연인 제시를 설득하기 위해 산으로 돌아온다. 그때 조난 신호가 들어온다. 게이브가 할과 함께 구조에 나선다. 하지만 조난 신호는 가짜였다. 범죄자들이 1억 달러를 훔쳐 산에 숨기다 돈 가방들을 잃어버렸다. 리더 퀄렌(존 리스고)은 게이브와 할을 인질로 잡고 돈을 찾으라고 협박한다. 게이브는 탈출해 눈 덮인 절벽과 빙벽을 오르며 범죄자들과 싸운다. 동료를 잃은 죄책감, 극한의 추위, 범죄자들의 위협. 모든 것이 게이브를 절벽 끝으로 몰아간다.


이 영화는 클리프행어의 은유를 문자 그대로 실현한다. 주인공은 진짜로 절벽에 매달린다. 여러 번. 손가락 하나로. 관객은 그가 떨어질 때마다 숨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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