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 Oct 28. 2024

아이들은 부모보다 훌쩍 커버린다

에필로그_사춘기를 지나며

아이들과 여행 가는 건 기대와 설렘을 넘어서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홀로 자유롭게 걷다가도 쉬이 피곤해지는 게 여행인데 껌딱지 둘을 양쪽에 끼고 낯선 곳을 다닌다는 건 부모라는 이름 아래 고생을 자처하는 일이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과 여행 갈 때 번잡스러움은 말도 못 했습니다. 일단 여행가방이 이삿짐 수준이었어요. 똥오줌 가리기 전엔 가방 터지도록 기저귀를 집어넣었구요. 알레르기가 걱정이어서 평소 먹고 마시는 간식과 음료수까지 바리바리 챙겼습니다. 심심해서 칭얼댈까, 지루해서 힘들어할까, 오만가지 걱정 끝에 책, 스케치북, 색연필, 놀잇감까지 아쉽지 않게 들고 가려면 여행 전부터 진이 다 빠졌더랬죠.   

   

이번엔 달랐어요. 남편 없이 아이 둘을 대동했지만 훌쩍 자란 아이들 덕분에 전 보호자로 짊어져야 할 의무감에서 해방됐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손을 타지 않은지 오래됐습니다. 십 대 청소년이면 이제 모든 걸 자신이 알아서 할 때도 됐죠. 여행 가방은 각자 챙겼고, 여행 계획은 같이 머리를 맞댔습니다. 아이들은 주차 자리도 봐주고, 때에 맞춰 BGM을 골라 분위기를 띄울 줄도 알았습니다. 장을 보면 물건을 들겠다고 엄마보다 먼저 손이 나가고, 엘리베이터 없는 숙소에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습니다. 엄마와 두 아들은 풍성하게 먹었고 적당히 걸었으며 충분히 쉬었습니다. 자그맣고 연약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몸도 마음도 엄마보다 훌쩍 컸습니다. 함께 다니기 참으로 좋은 여행메이트네요.


아이들이 다 자랐구나 느꼈던 몇몇 순간이 있었어요. 쾌적한 숙소에서 재즈와 클래식을 빵빵하게 틀고 소파에 기대앉았던 첫날 오후, 속초 로컬 서점에서 산 책을 읽는데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죠. 아이들은 집에서 챙겨 온 공부거리를 휘리릭 마친 다음 낮잠을 잤고, 전 숙소 루프탑으로 올라가 청량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닷바람을 즐겼습니다. 따로, 또 같이. 늦은 밤, 시장에서 사 온 닭강정을 먹으며 영화를 보던 시간도 이번 여행에서 기억될 한 장면입니다. 우린 완벽한 조합이었죠.


여행 중 은근히 정신없고 분주할 때가 숙소 체크아웃할 때잖아요. 널브러진 짐을 거둬 가방에 넣고 이불 정리하고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정해진 시간에 맞춰하려니 살짝 긴장이 됐어요. 혼자 이걸 다 하려면...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짐을 정리하고 냉장고 안에 남은 먹거리를 아이스박스에 넣습니다. 제가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이 둘째가 외칩니다. "형, 이불 좀 들춰봐. 놓고 간 거 있나 보게." 허허, 감탄이 나옵니다. 충전기, 모자, 선글라스 같이 작은 물건을 하나씩 빼놓고 다니는 엄마의 본색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희 먼저 내려가서 짐 실어둘게요. 엄마 천천히 정리하고 나오세요." 뉘 집 자식들인지 멋지네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렵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살펴야 하는 육체노동이 고됐고, 아이들이 자기주장을 펼치며 자신만의 세상을 공고히 할 때는 심리전을 하느라 버거웠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혼자 심각해져서 아이가 잘못되진 않을까 고민도 많았어요. 말이 빨랐던 첫째를 전 늘 또래보다 큰 아이로 여겼습니다. 한번 말하면 즉각 알아듣고 움직이면 좋았으련만 아이는 그렇지 못했죠. 아이가 로봇이 아닌데 입력값과 동일한 출력값이 빛의 속도로 나오길 기대했던 거예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잔소리는 자주, 많이, 다만 감정 상하지 않게 하는 게 맞다고 누가 그럽디다. 그래야 귀에 딱지가 앉아서 비로소 말과 행동이 바뀌는 거라구요. 어른도 관성에 젖어 도전과 변화가 어려운데 그간 아이에게 너무나 큰 숙제를 안겼던 것 같아 늘 미안합니다.


둘째는 여전히 가녀리고 솜털 보송한 '나의 아가'입니다. 제 품에 쏙 들어와 안기는 느낌이 여간 사랑스럽고 행복할 수 없어요. 물론 제 기억 속에서 그렇습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벅지는 나무 몸통처럼 굵고 단단합니다. 열다섯 살 아이는 폭풍 성장 중입니다. 지극히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녀린 아이의 모습은 아름답고 행복했던 과거로 놓아주어야 하는데 전 아직도 둘째를 피터팬으로 가둬놓고 싶은가 봅니다.


사춘기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부모가 성장하는 시간입니다. 부모 역시 부족한 인간인지라 모나고 삐죽한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은 거울처럼 부모의 못남을 비춰 보여줍니다. 날 닮은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건 부끄럽고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더 나은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면 부모도 달라지고 성장하려 노력해야죠.


전 엄마로서 인생 숙제 중입니다. 돌아보면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 투성이지만 그래도 서로 아웅다웅하며 맞춰온 시간은 눈빛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알아챌 수 있는 내공을 만들어냈네요. 관심과 간섭, 애정과 집착, 자유와 방관 사이에서 지혜롭게 줄다리기해야 하지만 18년 육아 역사는 꽤 괜찮았다고 자평합니다.


짧지만 알찼던 1박 2일 속엔 다 커버린 두 아이와 그 속에 묻혀 꼬꼬마가 되어버린 엄마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힘들다, 힘들다 말하는 사춘기지만 어느덧 우리 아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넘어간 듯합니다. 큰아이는 이미 어른이 같구요. 언제 이렇게 컸는지 갑자기 지난날들이 꿈만 같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가 좋았다고, 꼬물꼬물 엄마 손에 매달려 엄마만 바라볼 때가 좋은 거라고 어른들이 했던 말이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벌써 이런 이야기가 입에서 나오다니요. 서글프다기엔 자란 아이들이 감사하고, 속시원하다고 하기엔 지난 세월이 그립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둘째 아이의 소원대로 선곡권을 허합니다. 비트 강한 힙합이 차 안에 울립니다. 엄마의 졸음운전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출발 전부터 정신 사납습니다. 아이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면 전 아직 멀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그나저나 집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휴게소에 들러 둘째와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조금 덜 시끄럽고 조금은 더 부드러운 힙합은 없는지 물어봐야겠습니다.



이전 07화 여보,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