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해지는가 싶더니 종일 바람이 불고 스산한 날.
이런 날은 걷고 싶어 진다. 신발끈이 저절로 헐렁해진다. 같이 여름을 탔던 것처럼. 어린아이들이 함께하는 일상에서 매일 산책을 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야 없겠지만 평일 육아를 홀로 전담하다 보니 씻기고 먹이고 재울 일부터 앞서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놀이터든 공원이든 어딘가에 들리면 (사실 매일같이 들리긴 하다마는) 또 마음껏 놀면 결국 해야 할 일이 다 뒤로 밀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잠자리가 늦어진다. 끝까지 정신없는 건 물론이고, 나는 배터리가 1프로도 남지 않은 채 방전되기 일쑤. 그럼에도 이런 날은 걷고 싶어 진다. 아이들보다는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서.
어제는 공원에서 아이들이 새로 생긴 연필 모양 의자를 발견했다. 전에는 큰 레고 사람 조형물이 있던 공간에 지금은 매달릴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있다. 여섯 살 수가 큰 기둥 사이 하나하나 밟아서 넘어갈 수 있는 출렁다리에서 노는가 싶더니 한쪽으로 엄마를 부른다. 저기 못 보던 예쁜 꽃이 있는데, 꺾고 싶다고.
"왜 꺾고 싶어?"
"예뻐서. 엄마한테 선물로 주고 싶어!"
음. 이렇게 말하면 내심 곤란하다고나 할까. 꽃은 아무리 예뻐도 꺾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꽃을 막 꺾었으니 찔리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동양하루살이는 거침없이 때려잡았으면서 생명은 소중한 거야, 하고 모순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예쁘면 엄마가 가서 볼게.
아니면 집에 가서 엄마한테 편지를 써주는 게 어때?"
"편지는 매일 써주는데. 재미없는데."
"그럼 바닥에 있는 걸로 만들어줘."
그거 좋다며 아이는 바닥을 보기 시작했고, 하나씩 적당한 길이의 풀들을 쌓일 만큼 건넸다.
내 손에 남은 풀다발이 문득 아름다워서 깨달았다. 이토록 그럴싸한 풀다발은 처음 받아보잖아?
"이거 가져가서 그림 놀이 할까?
잎을 하나씩 떼서 스케치북에 그려보자."
"아니야.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야. 어때? 꽃다발 같아?"
"꽃다발보다 예쁘다. 진짜야."
"정말? 그럼 내가 들고 갈게!"
가방 속 파우치에서 머리 묶는 고무줄을 하나 꺼냈다. 다발 아래 부분을 하나로 묶어주었더니 좋아하는 아이. 집에 가면 화병에 꽂아서 잎에도 물을 뿌려주라는데, 요 꼬맹이 평소 엄마가 하는 행동 고대로 말하는 게 웃기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뿌듯하게 웃는 너.
예쁜 것을 예쁜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 진짜 반짝이는 건 네가 예쁜 걸 보고 엄마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던 마음이거든. 이미 알고 있지? 엄마는 꽃보다 풀을 좋아한다는 걸. 네 덕분에 엄마는 미리 가을을 만났다. 네가 맞이하는 여섯 번째 새로운 가을에 그리고 내가 맞이하는 서른여덟 번째 새로운 가을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우리의 새로운 가을 첫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