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늘 Oct 12. 2024

두 아이와 한 계절





올해 여름, 우리 집 아이들이 가장 많이 입었던 옷은 단연코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 특히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숲활동 하는 날을 제외하곤 매일 이 원피스를 입었다. 월화수목금 (당연히 주말에도!) 똑같은 원피스에 똑같은 왕관에 똑같은 레깅스를 입은 지도 어언 몇 달째. 건조기에 돌려 다음 날 준비를 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어떤 날은 어린이집 활동사진을 보며 걱정이 차오르기도 했다. 혼자서만 매일 같은 차림이네.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데. 애 옷도 안 사주고 도대체 뭐 한다고 생각할까. 왜 맨날 같은 옷만 입힌다고 생각할까.  실밥이 다 풀려나가는데…… 등등등. 아무리 내가 남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지만 아이의 일은 달랐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내심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분홍색 원피스도 여러 벌 사봤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입지를 않았고, 같은 원피스를 그럼 더 사야겠다 싶었지만 이미 품절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윤에게 왜 이 원피스가 좋은지 물었다. 예뻐서라고 했다. 아이의 눈에는 이 원피스가 가장 예쁘고, 그래서 매일 입고 싶은 거다. 그치. 엄마도 그런데 너라고 왜 안 그러겠어.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를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얼른 추워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돌이켜 보면 수도 그랬다. 네 살 여름, 그토록 고집하던 옷이 있었으니까. 우리 집 아이들의 이상한 고집은 한 계절 한 가지 옷에 다 쏠린 건가. 그때 나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어떤 날은 수를 설득하고, 어떤 날은 화를 내기도 했다. 그 옷을 고집함으로써 생기는 일들. 가령 건조기 돌리는 걸 깜박했는데, 축축한 옷을 당장 해결할 수는 없고, 그래도 그걸 입겠다고 아침 내내 울음으로 대치할 때. 그럴 때 나는 결국 이성을 잃고 언성을 높였다. 이제 와서 무슨 옷이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걸 보면 왜 그렇게까지 열을 올렸을까. 수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남아 윤을 더욱 내버려 두나 싶기도 한데, 엄마도 엄마로서 경험치가 쌓이는 중이겠지. 우리들의 계절이 흘러가며 엄마도 배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한 계절쯤은 너희들의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로 남는다 한들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도. 



(누더기 옷이 되면 어떠하리, 너희가 입고 행복만 하다면!)



이전 09화 키 크기 요정의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