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내리막길에서 깨달은 지혜
바다와 강이 수백 개의 산골짜기와 물줄기에 복종하는 이유는 항상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면 그들보다 아래에 있고,
그들보다 앞서기를 바란다면 그들 뒤에 위치하라.
__ 공자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제네시 일기》 등 20여 권의 책을 출간한 헨리 나우웬 교수는 1986년 교수직을 돌연 사임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지적 장애아들을 돌보는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그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는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다. 누군가가 그에게 왜 그런 삶을 사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동안 오르막길만 걸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일등으로 달려서 하버드대학 교수까지 올라갔지요. 그러나 나이 들면서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은 내리막길에서 훨씬 성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백척간두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갑자기 그런 상황에 부딪힌 사람도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처음에는 현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전과 다름없이 살면서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뜻밖의 행운을 바라기도 하지만, 그런 일 역시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쯤 되면 모든 것을 체념하기 시작한다. 될 대로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아이와 아내, 늙은 부모님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이것이 바로 오만하고 자만한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정이다.
상황이 나빠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일의 결과를 바꾸려면 생각을 바꿔 행동의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중요한 것은 높은 곳에서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만과 오만이 그것을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 이르러야만 그것을 볼 수 있다.
의료기 영업일을 하는 크리스 가드너는 아내 린다, 아들 크리스토퍼와 함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울 만큼 힘든 생활을 이어간다. 집세는커녕 불법 주차 과태료도 내지 못할 정도다. 이런 생활에 지친 아내가 가족을 떠나고, 두 사람은 어렵고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증권 중개인이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갖은 노력 끝에 증권 회사 인턴이 된다. 하지만 무보수인 데다가 정규직이 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그의 삶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밀린 세금 때문에 계좌가 압류되면서 그는 아들과 함께 길거리로 쫓겨나고 만다. 눈물을 머금고 아들과 함께 지하철 공중 화장실에서 잠을 자야 했고, 노숙자들을 위한 보호소에 자리를 얻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최선을 다해 일한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욱더 그래야만 했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줄거리다.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는 실존 인물이다. 즉,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만큼 현실적이어서 보는 이들을 조마조마하게 하고, 주인공이 절벽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 감정 이입을 끌어낸다. 마치 자신의 삶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깨달음의 순간인 셈이다. 잘나갈 때보다 힘들 때 그런 경우가 많다. 가장 힘든 순간, 진실한 나와 비로소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체투지. 바닥에 엎드려서 절할 때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는 데서 이름 붙여진 티베트인들의 수행법이다. 그만큼 고통스럽다.
티베트인들은 누구나 평생 한 번은 자신을 내려놓는 오체투지 고행을 떠난다. 자만과 오만을 떨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참된 자신을 찾기 위해서다. 심지어 한쪽 다리를 잃고도 그런 고행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겹겹이 꿰매 다 떨어진 누더기를 바닥에 깔고, 땀과 때에 절어 새까매진 얼굴로 끊임없이 오체투지 하는 그들을 보면 존경심이 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면서 삶의 진실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자, 자만과 오만에 빠져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 자신에 관한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높은 곳에 서야만 내가 보이는 게 아니다. 가장 절박하고 힘들 때, 즉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비로소 나와 마주할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보는 나는 오만하고 자만할 수 있지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나는 더는 잃을 것이 없기에 더없이 겸손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만과 자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만, 겸손과 진실함은 자신을 바로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