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생각이 유연해야 하는 이유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도 죽었다가 살아났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잊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칭기즈칸이 되었다.
__ 칭기즈칸
사람은 생각이 유연해야 한다. 특히 나이 들수록 자신이 처한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막힘없이 잘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대응할 수 있다. 단,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 즉 ‘원칙’에서 어긋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유연함이 아닌 기회주의가 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만 무조건 옳다고 가르치려고 하며, 다른 사람 얘기, 특히 자기보다 어린 사람 얘기는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아직 어린 네가 뭘 아느냐?’라는 것이다. 그들을 가리켜 흔히 ‘꼰대’라고 한다. 자기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고 그것을 강조하는 것, 즉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모두 ‘아니다’라고 하는 일을 혼자서만 ‘맞다’라고 우기는 것은 신념이 아닌 고지식함일 뿐이다. 그래서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
자기 생각만 무조건 옳다고 강조하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다. 어떤 얘기를 해도 막무가내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만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행여 그것을 지적하기라도 하면 ‘경우 없다’라며 무조건 화부터 낸다. 그러면서 시대를 탓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이다. 그런 사람과 대화하기란 어렵다. 그러다 보니 ‘꼰대’는 외롭다. 누구도 자기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과 신념은 자전거의 두 바퀴와도 같다. 그것이 조화를 이룰 때 자전거는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 때문에 원칙과 신념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이라는 말이 있다. ‘매화는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선비의 지조’를 의미한다. 그 때문에 퇴계 이황을 비롯해 수많은 선비가 그 말을 즐겨 사용하며 삶의 신조로 삼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야말로 선비가 지녀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일본 드라마를 즐겨 보곤 했다.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선과 정의를 추구하고, 신념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드라마의 플롯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은 일을 못 해(ウチの夫は仕事ができない)>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누구보다도 착하고,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남편은 일을 정말 못한다. 어떤 일을 맡겨도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회사에 손해만 끼친다. 회사 관점에서 보면 당장 해고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리고 착할뿐더러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에게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본 상사에 의해 다른 부서로 발령받고 그와 함께 일하지만, 거기서도 실수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단 한 번도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응원한다. 결국, 남편의 진심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일에서도 크게 성공한다.
인간미 넘치고, 순수함이 가득한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이 무시로 따뜻해지곤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흔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의 성공에 대리만족하는 것 역시 바로 그 때문이다.
2013년에 방영된 <한자와 나오키(半澤直樹)>는 일본 TV 드라마 시청률 신기록을 세운 바 있다. 드라마는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지기 전, 1990년대 초 은행에 입사한 한자와 나오키가 직장 상사의 부조리에 맞서 그들의 비리를 과감히 드러내고 단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때문에 일본 내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극 중 대사인 “당하면 두 배로 갚아준다”라는 말이 한동안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누구나 이해관계 앞에 서면 마음이 흔들리기 쉽다. 그 때문에 선과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 신념과 원칙을 지키는 삶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공평하고 올바로 서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비록 답답해 보이지만,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이 존경스러운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유혹을 참고, 조금 힘들지언정 올바른 길을 가는 모습이 공감을 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은 가능한 한 융통성을 제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융통성을 갖추되, 위반하면 예외 없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면서 법망을 빠져나가는 대신 죽음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융통성을 발휘해서 예외로 취급하게 되면 공평함이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이 대우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융통성과 특별한 대우를 바랄 가능성이 크다.
한적한 시골길에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자, 순간 차가 멈칫하더니 곧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찰은 급히 차를 세우고 운전자에게 면허증을 내놓으라고 한다. 운전자는 급해서 그랬다면서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하지만, 경찰은 단호하기 그지없다. 그러자 운전자는 자신이 새로 부임하는 경찰서장임을 밝힌다. 그런데도 경찰은 우렁차게 경례한 후 신호 위반 딱지를 뗀다.
영화 〈바르게 살자〉의 첫 장면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경찰의 태도가 무척 고지식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봤던 많은 이들이 그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신분을 구별하지 않고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는 경찰의 태도가 마음을 후련하게 했기 때문이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규칙과 자기 사상,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의지는 꼭 필요하다. 그러자면 생각은 유연하고, 신념은 굳건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꼰대’ 소리 듣지 않고 어른 대접받을 수 있으며, 공평하고 살 맛 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