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내가 행복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by 마테호른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만 오랫동안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은 보지 못한다.

__ 헬렌 켈러




◆ 낮은 자존감은 애정결핍과 열등감을 초래한다


능력이 출중하고 잘나가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기가 쉽다.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악성 댓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나에 관한 거짓 정보를 마구 퍼뜨리고, 인격 모독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대부분 그것을 참지 못할 것이다. 그 때문에 그런 일을 겪은 연예인 대부분이 심한 공황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심지어 절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기도 한다.


‘키 큰 양귀비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정원사가 정원을 가꿀 때 빨리 자라는 꽃은 쳐내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집단 내에서 재능이나 성과가 뛰어난 사람이 분노와 공격 대상이 되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눈에 띄는 장점이 있는 사람이나 잘나가는 사람을 공격해서 깎아내리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 때문에 ‘남보다 빨리 성공할 경우 빨리 꺾일 수 있다’라는 경고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이 널리 퍼진 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튀면 안 된다’라는 걱정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 등을 눈앞에 두고도 물러서거나 뛰어난 능력을 숨긴 채 살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는 뇌 과학으로도 입증되었다.


영국 방송사 <BBC>의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내가 월급 300만 원을 받고 다른 사람이 350만 원을 받는 것’과 ‘내가 150만 원을 받고 다른 사람이 100만 원을 받는 것’ 중에서 후자를 훨씬 많이 선택했다. 절대 액수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많이 받는 것에 더 큰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피하고자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걸까. 능력과 역량이 충분한데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범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문제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만 높고 자존감은 낮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심각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 때문에 그것을 풀고자 잘못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드러날까 봐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카렌 호나이 박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낮은 자존감은 애정결핍과 개인적인 성취에 극단적인 열등감을 느끼는 성격을 초래할 수 있다.”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칭찬받고 싶은 욕구, 성공하고 싶은 욕구, 안주하고 싶은 욕구, 의존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 역시 지나치면 폭발하게 되어 있다. 앞서 말한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악성 댓글’이 그 대표적인 예다.



◆ 행복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행복하면서 살아야 한다


벌써 15년째 한적한 시골 면 소재지에서 경찰 생활을 하며 사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대부분 동료가 아이 교육과 문화생활, 의료 서비스 등을 이유로 도시로 발령받고자 애쓸 때 일찌감치 도시를 떠나 그곳에 정착했다. 도시 출시인 그가 도시가 싫다며 스스로 떠난 것이다.


사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친구보다는 그 아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혜택과 즐거움을 포기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시골에서의 삶을 순수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갖 낯선 것과 마주하는 용기가 없다면 그런 선택을 감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새로운 직장을 선택할 때 망설이는 이유는 대부분 일이 아닌 사람에 있다.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이 부담스러운 데서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 아내는 남편의 이기적인 선택을 받아들였다.


그때만 해도 먹고사는 일에 치여가며 바쁘게 살던 나는 그 일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몇 년쯤 살다가 아이들이 학교 들어갈 때쯤 다시 도시로 나오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때쯤 되자 친구와 그의 아내, 아이들 모두 그곳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을 뿐만 아니라 크게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학교 다닐 때도 특별히 즐기는 일이 없던 친구에게 시골의 한가로움이 지루할 법도 했지만, 그는 그럴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찾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은 한밤에 전화해서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농담 삼아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라고 했더니, “오늘 아는 사람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했는데, 제법 많이 얻어서 한 상자 보내줄게”라고 했다. 고구마 캐는 경찰이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마음 한쪽이 뭉클해졌다.


친구는 시골에 살면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낚시를 즐긴다. 한번은 까맣게 탄 얼굴로 나타났기에 한여름 땡볕 정도는 피해서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바쁜 생활에 쫓겨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내가 나 같지가 않아.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모를 때가 많거든. 그때부터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어. 그런데 땡볕 아래서 물고기 입질을 기다리다 보면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지어져.”


순간, ‘아,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런 기억이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 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지금까지 우리는 크고 대단한 것에서만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행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크고 대단한 것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습관이라는 말이 있듯, 행복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행복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중년이 되면 삶에 자그마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일들을 더 잘 인식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부족하고 어리석은 부분을 비로소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젊은 날 원대하게 세웠던 계획들이 대부분 분별력이 없거나 허영심에 가득 찼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이때다. 중요한 것은 그러는 순간,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소용없다. 가족의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도 가족의 행복을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 때문에 가족의 행복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만 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비교’와 ‘불만’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불만을 품으로써 스스로 불행에 빠뜨리는 것이다. 남이 잘되는 것과 비교할수록 더 불만족스럽고 불행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일본의 철학자 미키 기요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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