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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Jul 16. 2024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사람이 되지” 이 다섯 글자가 잠시 나의 고민을 내려 놓을 수 있게 


내가 고른 시는 윤동주가 쓴 ‘아우의 인상화’라는 시이다. ‘아우의 인상화’는 형이 동생을 보고 커서 무엇이 될 건지 물어봤다가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를 담은 시이다. 나는 이 시를 읽어보고 어떻게 이 시가 쓰여졌는지, 누가 어떤 이유로 썼는지 궁금해져 생각해봤다. 




나는 이 시속의 ‘말하는 이’와 시를 쓴 시인 윤동주는 동일인물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동주는 실제로 윤일주라는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담, 실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살고 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여러가지의 차별,폭력, 그리고 탄압을 받던 시기이다. 그래서 윤동주는 아마 동생과 밤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험난하고 포악한 세상에 문득 동생을 어떻게 가르쳐주고 키워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을 것 같다. 그래서 “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라고 질문을 했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되지”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대답이 인상 깊어서 이 시를 썼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내가 윤동주였어도 신선해서 시를 쓸 것이다. 하다못해 일기장에라도 적었을 것 같다. 나도 처음에 이 시를 읽을 때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시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시의 처음과 막바지에 아우의 얼굴이 슬픈 그림이라는 구절이 있다. 아우의 얼굴에는 왜 슬픈 그림이 드리워져 있을까, 여러 번 생각해봤다. 시에서 표현되기에 “앳된 손”이라 했으니 아마 나이는 어리지만 나라를 빼앗긴 일과 자기의 개인적인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역사를 배우면 안타까운 일이 정말 많은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 구절을 보면서 모든 독립운동가분들이 편히 쉬셨으면 좋겠고, 이 ‘아우’도 얼굴에 슬픈 그림 대신 밝고 웃음이 나오는 그림이 걸려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윤동주의 시는 다 독립운동과 관련되어 있거나 나라를 잃은 아픔을 드러낸 시, 자기 반성 등 깊고 어려운 주제로만 시를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윤동주의 시 중에서 이 ‘아우의 인상화’처럼 재미있고 뭔가 쉽게 읽히는 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윤동주는 정말 대단한 시인인 것 같다. 시를 읽으면 배경과 내용이 궁금해지고, 그걸 알게 되면 다른 시가 또 궁금해진다. 윤동주는 도대체 뭘까. 뭐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시를 잘 쓰는 것일까. 윤동주의 시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묘한 이끌림이 있다. 나는 곧 이 이끌림을 따라 시에 빠져 허우적 댈 거 같은 예감이 든다.




편견을 부수는 다섯 글자


‘아우의 인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이다. 처음 스치듯이 읽었을 때는 이 문장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설은’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는데 정확한 의미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충 설 = 이야기라고 생각해 “아우의 이야기(대답)은 진정코 옳은, 맞는 대답이다” 정도로 해석했다. 보통 사람들은 너는 커서 무엇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목표나, 장래희망으로 삼은 직업을 얘기한다. 그러니 이 시 속 화자의 동생은 틀을 벗어나 “사람이 되지” 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이야기해 인상 깊었다. 




 요즘 나는 무엇을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인정받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와 같은 진로의 방향을 정하는 문제로 여러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되지” 이 다섯 글자가 잠시 나의 고민을 내려 놓을 수 있게 해주었고, ‘진짜 맞는 대답이네’라고 생각하며 나의 편견을 깨 주었다. 그리고 남들에게 비춰지는 모습만 생각하고, 돈을 어떻게 하면 잘 벌 수 있을지만 신경 쓰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또 내 미래에 대해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많은 걸까?, 행복한 걸까?, 그렇다면 그 행복의 기준이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내가 생각하는 ‘잘 산다’의 기준을 좀 더 생각해보고, 그 기준에 맞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 볼 것이다. 아마 단 번에 명쾌한 답이 나오진 않을 것 같다. 원래 인생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 20년뒤에 나도 계속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아무나 되자


 이 시를 읽고 떠오르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한끼줍쇼라는 6년전 프로그램 속 42화의 한 장면이다. 한끼줍쇼는 이경규와 강호동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밥 한 끼 얻어먹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이효리가 나왔었다. 지나가던 한 어린아이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강호동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는 질문을 했고, 이경규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며 답했다. 하지만 이효리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이 장면이 아우의 인상화와 매우 비슷해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내가 이 시를 읽고 모햐게 끌렸던 것도 이 장면을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일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성공과 업적을 매우 중요시하는 경쟁 사회이다. 일에 치이고 결혼하면 육아에 치이고 행복과 자기 자신만의 삶, 취미 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지,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비교하며 끝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시를 읽고 나서 나는 굳이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훌륭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멋있기야 하겠지만,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자기 자신만의 삶인데 남과 경쟁하고 남에게 비추어지는 모습만 고려한다면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보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내가 만족하고 내가 행복 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 아닐까. 이것이 내가 생각한 나만의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의 좌우명은 ‘아무나 되자(주관적 훌륭한 삶)’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 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20년 뒤 나에게


내가 이 시를 20년 뒤 나에게 보내고 싶은 이유가 있다. 내 mbti는 ESFP-A로 약간의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걱정을 많이 하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했으면 좋겠고, 실수를 하면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아마 20년 뒤에도 이렇게 걱정이 많을 것 같다. 20년 뒤 쯤이면 38살인데 아마 한창 회사를 다니거나 일을 하며 이제 자리를 잡았을 시기일 것이다. 정확히 어떤 고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 고민을 나름대로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결혼을 했다면 아이는 어떻게 키울지, 양육비 부담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때 아이는 나의 욕심으로 과하게 교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잘 키우라는 의미에서 이 시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아직 혼자라면 승진은 언제 할지, 노후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가 고민일 것 같다. 그런 나에게 걱정 근심은 잠시 내려놓고, 편하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이 시를 보내려고 한다. 




 어쩌면 이 시를 20년 후에 보내는 것도 일종의 미래에 나에 대한 걱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이 시를 읽고 걱정을 약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는 점점 기억속으로 잊혀져 가고 까먹은 채로 살아갈 때쯤 다시 이 시를 읽게 된다면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들까 궁금해졌다. 과연 지금의 나처럼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20년 뒤에 나라면 이 시를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생각까지는 아니여도 20년전의 나, 즉 지금의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며 잠시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행복이란


내가 지금 생각하는 ‘잘 산다는 삶’의 기준은 행복이다. 내가 느끼기에 내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잘 산다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 보았다. 생각해 본 결과 행복의 크기를 키우는 것 보다 행복의 빈도수를 높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까닭은 큰 행복은 인생에서 얼마 없는 순간들이다. 그래서 평상시에 조금이라도 행복한 일 흔히 말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빈도수를 높이면 내 일상이 행복해 질 것이다. 예를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시청하는 것처럼 내가 실천해서 그 즉시 행복해 지는 것이 늘어나면 그 날은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나쁘지 않았던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나의 인생에는 기쁘고 행복한 날이 늘어날 것이다. 20년뒤의 나도 힘든일을 겪고 있을 때 이 내용을 시와 함께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 20년뒤의 나의 행복의 기준은 바뀌어 있을 수 있지만, 분명히 어느 방면으로든 이 시와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회사 일이 힘들면 점심시간이나 일이 끝난 뒤에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고, 매사에 너무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힘들면 하루 쉬고 잠시 걱정을 내려놓아 보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 20년 뒤에 나이던, 30년 뒤에 나이던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이 시에 담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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