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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Nov 09. 2019

전태일기념관+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하고운-서울 한성과학고-blog.naver.com/gilly71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청계천을 걷다 우연히 전태일기념관을 발견했다. 

눈에 확 띄는 외관이었다. 전태일의 글이 건물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 전 낮은 마음이 동생과 그 근처를 지나다 이 건물을 보자마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이었다. 내가 아... 궁금하다, 했더니 민샘이 들어가 볼래요? 한다. 폐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고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전태일기념관은 올해 4월에 개관했고, 서울시에서 건물을 빌려주어 을지로3가 쪽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기념관은 생각보다 공간이 컸는데 단순히 전시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연과 강연도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노동인권운동과 관련한 교육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잘 만들어진 전태일 기념관으로 들어가면서 마음이 떨리면서도 이상하게 착 가라앉았다. 


전태일의 생애와 더불어 그가 했던 고민, 당대의 노동 환경, 그리고 전태일이 어떻게 평화시장을 바꾸어 나가려 했는지, 그의 이상과 현실 그리고 좌절이 하나하나 전태일의 발언과 서류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가 매일 걸었던 출퇴근길과 차비를 털어 동생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일화, 그가 나누어준 노동환경 설문지, ... 무엇보다 그의 말들.

당대 사회와 역사를 향한 전태일의 치열한 고민을 마주하며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또 한없이 슬퍼지기도 했다. 인생과 진리, 도덕과 사랑. 그런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가려 했던 청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들리지 않았던 사회에서, 그가 마주쳤을 절망을 본다. 그리고 그의 바람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현실을 본다. 

전태일기념관의 외벽에 씌어진 글은 전태일이 당시 평화시장 여공들의 근로조건을 고발한 편지다. 전태일의 편지 사이로 한여름의 청계천 풍경이 보인다. 전태일이 이 풍경을 본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창밖은 한없이 평화로운데 우리의 노동 조건은 여전히 제자리다.             



종로 3가와 을지로 3가 사이에 있다. 서울에 사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입장료는 없다.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봐도 좋고, 을지로의 힙한 카페들(커피한약방, 아러바우트, 호랑이...)을 가봐도 좋다. 을지로에는 노멀에이라는 독립출판물 서점도 있고, 을지면옥도 지척이다. 그러니까 청계천 여행 삼아 한번 다녀오는 김에 전태일기념관에도 들러서 힘을 받아오면 좋겠다.            



  


지난 금요일에는 망원동에서 점심 약속이 있는 김에 마음에만 담아두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발걸음을 했다. 근처 곳곳에 김복동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었다. 가는 길 곳곳에 노란 나비가 날고 있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박물관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엄숙해졌다.      

입장료는 3천원. 티켓을 사고 나면 오디오가이드를 주신다. 세심하게 준비된 공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또 열심히 들었다. 박물관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마음으로만 담고 왔다.      

전시장은 지하에서부터 시작한다. 입구의 또 다른 철문을 열면 기찻길이 등장하고 대포 소리와 경적 소리가 들린다.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철길의 끝에서 책에서만 보았던 할머니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복사본이라고 기재되어 있지 않은 걸 보아 원화인 것 같았다.) 김복동 할머니의 그림,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 ... 그걸 눈으로 직접 보니 그림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지하에서부터 2층으로 올라가면서는 할머니들이 하신 발언들이 계단이 있는 벽에 하나하나 붙어 있다. 목소리. 그녀들의 목소리. 절망과 원망에서 연대로 나아가는 목소리. 2층에는 당시 '위안부'의 현황과 관련 자료, 위안소 설치 지역 등이 전시되어 있고, 1991년 8월 14일의 첫 번째 증언 이후의 정대협의 활동과 수요집회의 역사 등도 소개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쓰시던 물건과 용기 있게 증언하신 할머니들의 얼굴도 함께.       

2층 테라스는 추모관이다. 지금까지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공간. 울음이 터졌다. 영화 '김복동'에서 이순덕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김복동 할머니가 했던 말들이 막 생각이 났다. 잘 가소, 잘 가소... 그리고 추모관의 끝에 놓인 추모공간에는 '이제 남은 분은 스물분입니다.'이라고 적혀 있었다. 



태양이 몹시 뜨거운 날이었다. 그 환한 태양 속에서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웃는 얼굴로 우릴 맞아주고 있었다. 자신들이 억울함을 씻는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여성들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들은 나비기금을 만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증언을 했다. 박물관의 1층에서는 현재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콩고와 다른 나라들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꼭 거길 가 봐야 아나. 나는 마음 아파서 안 갈란다.' 

'그거 보면 슬플 거 같아, 나 그 영화 안 볼래.'     

내 안에도 그런 마음들이 자란다. 그렇지만 그 마음들과 싸워서 이기려고 한다. 나 하나 마음이 아픈 데서 끝나지 않고, 더 큰 힘을 내려고 한다. 이 날도 그런 날이었다. 할머니들의 용기가 내게도 살아가는 힘을 주는 날이었다.     

이곳은 망원동 연남동과 가깝다. 지척에 전통의 맛 좋은 베이커리 리치몬드 제과점 본점이 있고, 훈고링고브레드라는 멋진 카페도 있다. 그림책방 책방사춘기가 가깝고, 맛집들도 한두 개가 아니다. 홍대쪽으로 놀러올 적에 이곳도 같이 발걸음하면 좋을 것 같다.      

* 공간만이 주는 힘이 있다. 망각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방법은 그 장소에 직접 가보는 것뿐이라는 <약한 연결>의 주장을 나는 믿는다.     

매년 4월이 되면 세월호 사건이 마음을 짓누르는 것처럼, 매년 8월 광복절이 다가올 때마다 할머니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난 주에 군산 마리서사에 놀러갔다가 서점의 한 섹션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섰다. 쿵 다시 가슴이 내려앉았다. 작년에 읽기로 해놓고 외면해버린 책 두 권이 사이좋게 놓여있었다.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숨 작가가 쓴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다. 작년 이맘 때 두 책이 출간되었고, 나는 고요서사에서 이 책을 보고 살까 말까 하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다시 꽂아놓고 나왔었다. 그런데 벌써 일 년이 지났고, 그 사이 김복동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날이 영화 '김복동' 개봉일이었다.      

군산의 소설여행 게스트하우스에 다리를 펴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만큼 참혹하지는 않았다. 다만 많이 슬펐다. <한 명>은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징그럽고 처절해서 읽는 동안 계속 책을 덮었고, 피하고 싶었다. 반면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에서는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날 이후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풍경은 다대포 앞바다에 멍하니 앉아있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양산 통도사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다. 욕실에서 자기 몸을 박박 문지르며 씻고 씻고 또 씻어내는 모습이다. 그리고 방 안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사위가 허옇게 흐려지는 풍경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 풍경 속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잊힌 메아리 같은 소리가 들려,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하는.

"복동아, 너 어디에 있어?"

아흔세 살이 되어서야 내가 나를 찾네.

삼라만상이 내 안에 있었어. 이승도, 저승도, 아비지옥도.

관세음보살님도, 지장보살님도, 부처님도.

"복동아, 너 어디 있어?"

"요시코는?"

"미에코는?" (199쪽)     

나에 대해 생각한 적 없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는 것을 견딜 수 없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는 복동. "아흔 세 살이 되어서야 내가 나를 찾네."라는 그 말은 이제는 할머니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걸까.      

진실로 내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진실로.     

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하겠어.

형제도 못 믿는 내가 누구를 믿겠어.     

슬픔이 아름다운 거라네.

아름다운 거라서, 

내가 평생 놓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나봐.     

전생을 알고 나서 받아들였어, 내 운명을.

전생이 아니고는 이해할 길이 없었어. (216쪽)     

김숨의 문장으로 다시 태어난 할머니의 증언. 책을 읽으며 김복동이라는 한 사람의 내면 속에 오래 있다 나온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생각을 오래 했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까 궁금했는데 우리 할머니도 매일 공상을 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옛 생각을 하실까.      

그리고 오늘 영화 <김복동>을 보고 왔다. 

처음엔 조금 망설였으나,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힘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책으로만 보던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도 들으니 좋았다. 할머니의 눈빛과 미소가 좋았다. 할머니의 유머와 할머니의 말이 좋았다. 다 다 좋았다. 내 할 일은 해야지. 머라쿠노. 하는 양산 사투리도 좋았다. 할머니가 보내는 눈빛과 미소가 내게 와 닿았다.      

할머니의 당부대로 나도 계속 싸울 것이다. 

<숭고함은 나를 들여보는 거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작가의 말을 여기 옮겨둔다.      

연초 김동희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신데, 더 나빠지시기 전에 할머니의 삶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간곡한 바람을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20년 가까이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분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했던 권리와 존엄성 회복을 위해 성설히 활동가로 살아온 그녀였습니다. 자신에게 피를 나누어준 친할머니가 편찮으시기라도 한 듯 그녀는 눈과 코가 빨개지도록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증언 활동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해오신 할머니께서 지금껏 들려주지 않으셨던 이야기를 끌어내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보자, 김동희 선생님의 눈가장에 고인 눈물을 바라보며 저는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처음 찾아뵌 날, 할머니는 항암약을 드시고 홀로 누워 싸우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육체와 영혼과 기억과...     

할머니께서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일까, 가장 그리운 것은...... 사랑은 해보셨을까,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 인간에 대해서는......     

할머니께 드리고 싶던 질문들 중 단 하나의 질문도 드리지 못하고 저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뀔 즈음 할머니께서 문득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전생의 죄......     

'죄'라는 무서운 단어와 함께 글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으로 계절을 갈아타며 이어진 인터뷰 내내 김동희 선생님은 할머니와 저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통역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작고 불분명한 제 목소리가 할머니의 먼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던 데다, 그녀는 섬세하고 예민한 할머니와 소통하는 법을 온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질문들을 '김동희 선생님의 입을 빌려' 할머니께 드리며, 인터뷰는 외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때로는 윤미향 선생님의 입을 빌려, 때로는 손영미 선생님의 입을 빌려.     

마지막 날 제가 할머니께 드린 질문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사랑......     

오늘따라 바다가 그립습니다.

할머니께 바다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2018년 여름 

김 숨     

++     

김복동 할머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윤미향 대표가 쓴 책, <20년간의 수요일>에서였다. 이 책을 읽고 8월 14일에 처음으로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증언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김학순 할머니, 강덕경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 할머니들의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김복동'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 함께 싸워 온 윤미향 대표와 정의기억연대 사람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고맙고 또 고맙다.     

+++     

"연대는, 온갖가지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이유로 어떤 고통을 겪어냈던 없었던 사람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은 덜 겪도록 모든 것을 최대한 알려주는 것이더라고요.  ‘너는 나보다 덜 힘들었으면 해. 그러니 내가 겪은 모든 걸 알려줄게.’ 이게 연대예요." 

- 정혜윤의 말 [일간 이슬아 / 인터뷰] 2019.04.10. 당신 말을 알아듣는 나를 믿어요 - 정혜윤 PD     

++++     

<정의기억연대>에 월 1만원씩 후원하던 것을 3만원으로 증액했다. 일본은 사과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할머니도 그걸 알고 계셨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 목소리를 내는 거니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되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싸울 거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부탁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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