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가족 안에서 줄곧 자신을 외계인처럼 느꼈다.
(나의 뿌리가 되는 가족을 여기서는 ‘원가족’이라 부르려 한다.)
다섯 명의 가족 중, 네 명과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다.
나는 지나치게 타인중심적 사고를 했고
넷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사고를 했다.
우리 가족은 여러 심각한 문제가 존재했다.
경제적인 문제, 정서적인 문제, 폭력적인 문제, 비행 문제…
문제의 원인은 내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늘 가족의 문제를 중재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나는 원가족 내에서
'문제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매일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계속 쏟아졌다.
하나하나 대응하기도 숨이 찼다.
책임감은 점점 내 정체성 전체를 삼켜버렸다.
나는 결국 헛깨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타인의 감정과 생각은 빠르게 알아차리고,
현실을 논리적으로 파악해 해결을 주도할 수는 있었지만
내가 뭘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전혀 모르는 헛깨비.
해결사의 역할은 자처한 것이기도 했고,
떠안겨진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늘 가족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으로 몰렸다.
위선적 평화를 깨고 싶었으나
문제를 대화의 테이블 위에 올리면
‘문제를 지적한 죄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애써도
‘예민하다’, ‘부모 공경하지 않는다‘, 싸가지 없다’는 말들만 돌아왔다.
단절을 결심하게 된 건,
아빠와 엄마의 이혼 과정을
내가 대신 주도하게 되면서였다.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그 모든 측면에서
난 나를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던졌다.
영혼을 갈아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는데
그럴수록
인신 공격성 발언과 뻔뻔한 거짓말, 지독한 위선은
오히려 더 강도가 세졌다.
결국 나는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르렀다.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직장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손은 떨렸다.
잠도 오지 않았다.
아이도 있었고,
일도 계속해야 했기에
나는 일단 살아야 했고,
그런 나를 견디게 하기 위해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가는 조심스럽게
원가족과의 거리 두기를 제안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동기는
처음엔 당장 일단 '살아야'해서였다.
거리를 두고 내가 회복되면
다시 돌아가서 중재자,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 낼 줄 알았다.
단절 이후,
나는 내 가족의 문제와 내 아픔을 보다 깊이,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토록 애썼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고
막연히 내가 애쓰면 손에 잡힐 것 같은ㅡ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것.
우리 가족은 분명히 나르시시스트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나는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였다.
이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는 과정은
내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마침내 나는 원가족 안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스스로의 의지로 결단했다.
건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나는 아픔을 느낀다.
혼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마음에 생긴 편안함이 생경하고 감사하다가도,
가끔은 왜 이렇게 된 걸까 하고 슬퍼진다.
사랑받고 싶어 애쓰느라
나를 끝없이 지워야 했던 시간들을
정리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글을 쓰기로 했다.
원가족의 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은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다시 아픔과 마주해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보다
그 아픔을 가벼운 하소연 정도로 쏟아내지 않고 싶은데
결국 내 글이 어둠을 말하면서도 빛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늘 마음 한 켠에는 이 일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업처럼 느껴졌다.
그래야 진짜 고통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나처럼 가족 안에서 상처투성이로
아파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끊어내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당신을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이 글을 통해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다.
또 나와 같은 결심 앞에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가족과 단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에
나도 같이 아프게 해내고 있다고
뜨겁게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내 글들이
어떤 모양이든 하나의 의미가 되기를 바라며,
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