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과 얽힌 기억 중 몇 가지는
자연스레 잊혀서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원가족과의 단절 이후 새로이 찾았다.
낯선 일이었다.
원가족과 단절하기 전에는 늘
주로 ‘폭력’이나 ‘모욕적 언어’ 같은
극단적인 장면만이 기억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단절 이후에는 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사건에서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잘 생각나지 않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
아주 중요한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집기를 부수거나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위협하곤 했다.
거친 언성과 욕설은 밤새 이어졌고,
전화를 걸어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하루도 술에 취하지 않고 잠든 날이 없었다.
그럴 때면 엄마와 동생은
나에게 아빠를 말려주길 원했다.
(내가 도서관에 있을 때에도, 내가 혼자 지방에서 자취할 때에도 전화가 왔다)
나는 엄마가, 동생들이 너무 불쌍해서
내가 아빠를 제지하면
엄마나 동생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가 나서면
아빠는 오히려 더 격해졌다.
아빠를 말리는 과정에서
아빠의 옷이 찢어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누군가를 죽이러
가겠다고 날뛰는 아빠의 손에
있는 칼을 빼앗아 윗집 화분 밑에 숨겨둔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나의 감정도 한계에 이른다.
그러다 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문자 그대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증상이
트라우마의 신체화 증상이었던 것 같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고,
형편도 넉넉지 않았기에 찜질방을 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편히 자본 적이 없었다.
자다가도 멀리서부터 아빠의 발소리가 나면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날이 많았던 나,
작은 소리 하나에도 깜짝 놀라길 잘하는 나였다.
나는 생존을 위해
청각과 관련된 신경이 늘 곤두서 있었다
(지금도 설거지하는 소리를 방에서 들으면 심장이 강하게 뛰고 불안도가 높아진다)
그러니 찜질방에서는 잠에 들기도 어렵지만
겨우 잠이 들더라도 얕은 잠에 들었다 깨기 일쑤였다.
너무 잠이 고픈 나는
어느 날 허름한 여인숙을 찾아야 했다.
잠금장치가 느슨하고, 불빛도 희미한 공간이었다.
나는 거기서도 역시 무서웠지만 집보다는
숨 쉴 수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다음날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지극 정성으로 아침밥과 해장국을
아빠에게 대접한다.
그리고는 나는
‘네가 아빠를 자극해서 아빠가 더 난리를 쳤다.
너만 안 그랬어도 우리 집이 평안했다.'
이런 식의 비난을
엄마와 동생으로부터 들어야만 했다.
정작 문제 행동을 한 아빠에게는
왜 한마디도 안 하고 도리어 아빠를 말린 나에게
화를 내는 거냐고 하면 더 큰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여기까지가 보통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조각이었다.
그때 집안의 분위기, 가슴 두근거림,
숨이 안 쉬어져 뛰쳐나온 집
아빠의 술주정, 엄마와 동생의 부당한 비난,
그런 위기 속 긴장감, 공포감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런데 단절을 하고 난 다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우리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왜 나의 행방을 궁금해한 적이 없지?
그 새벽에 나이도 어린 딸이, 언니가, 누나가 뛰쳐나갔는데?'
수없이 새벽에 집을 뛰쳐나왔지만,
단 한 번도, 그 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은 날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제야 그 무관심이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
여느 아빠나 엄마나 동생과는 많이 달라.
아마 보통의 경우, 어디 갔을까? 어디서 잔다는 걸까? 하고 걱정할 텐데
우리 집은 한 번도 나를 걱정을 해주거나 궁금해하거나 하지 않았어.'
라는 생각.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걸까?
마치 내 마음의 여러 방중에
어떤 방에 중요한 것들을 밀어 넣어두고 잊고 있었는데
그 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 '아! 이런 게 이 방에 있었지!' 하는 사람처럼.
내가 이런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 것에는
원가족과의 단절이 큰 역할을 했다.
단절 이루어지자 내가 사는 삶의 영역을 재규정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지금의 내 삶의 영역이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리 뇌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인지한 경우
‘생존을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데 모든 자원을 소모한다.
나 역시 그랬다.
'생존'이라는 우선순위에 밀려 무관심한 태도에 상처 입은 나의 감정은 후순위로 밀려있었다.
이제 '안전'이 보장되자 나는 이제 그간 살피지 않은 내 감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와 인격의 생존을 위해
전전 긍긍하던 시간과 멀어지자
당시에는 처리하지 못했던, 공감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상처 입은 마음과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그 닫힌 기억의 조각을 넣어둔 방을 이제야 연 것이다.
단절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 방에 쌓아둔
내 소중한 감정들과 욕구들을 다시 꺼낼 수 있었을까?
이런 나의 바람들 말이다.
나는 내가 그 새벽에 어디에 있었었는지
물어봐주기를 바랐다.
나는 잠은 잘 잤는지 한 마디만 해주기를 바랐다.
아빠를 말리느라 고생했다고 한마디만 해주기를 바랐다.
정당하고 합당한 욕구들이다.
중요하고 가치 있다.
나의 마땅한 바람들은
원가족으로부터 공감받지 못했고 철저히 외면당했다.
공감 능력이 현저히 낮은 나르시시스트였기에
나의 아픔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고 무감각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아프고 슬펐다.
그러나 이제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내가 그 아픔을
스스로 이해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남편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잃어버린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맞춰보고 헤아려주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정말 잘 버텼어.
그리고 고마워,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여담으로, 이 글을 쓴 계기를 말하고 싶다,
나르시시스트 가정 내에서 정서적 학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이해와 공감을 해줄 수 있는 단 한 명이 참 소중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내가 만난 다수의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을 내가 더 이해해줘야 하고,
더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생각으로 죽을 힘을 다해 살아오다가
도저히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멈춘 건데,
그 지점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원가족 내에서 생긴 상처도 버거운데,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다.
잘 모르고 하는 말이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이차 가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정말 어렵게 용기 내어
원가족과 단절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런 말을 듣고 온 날은,
온 우주에 나 홀로, 피투성이로, 덩그러니 서있는 기분이 든다.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누군가에게
멈추고 싶은 당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이 내 이야기를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