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 2

part 2. 내면에서 날아오는 화살

by 풀빛

물리적 단절을 하고 난 이후,

처음엔 나는 내 선택의 정당성을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당장 생활이 불가능하니까, 살아야 하니까 내린 결정이었을 뿐.

이제야 숨을 쉬는 것 같다 싶다가도

몇 톤의 무게로 나를 누르는 죄책감에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식당에서 삼대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온 날이나,

목욕탕에서 나이 드신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을 하시는 분을 본 날이면

나는 여지없이 눈물이 났다. 참기 힘들 때에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울었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감당하지 못한 거야.'

'부모님이 미숙하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치는 거야?'

'이 선택이 정말 정당해?'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는 건 없어.'

'부모님이 아프시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더 이상은 원가족과 함께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는데.

이미 더 이상은 원가족 안에서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한데.

한계를 절절히 실감했는데.

원가족 밖으로 나와

죄책감을 감당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려, 끙끙대며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정서적 학대의 가장 비극적 측면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물리적 단절을 한다 할지라도

심리적 단절은 매우 어려운데,

특히 내면에 자리 잡은 '내사된 부모의 목소리'는

계속 나의 선택의 정당성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죄책감의 화력이 더 강해지도록 부추겨 그

불은 겨우 남은 정신을 사르는 것 같았다.


나르시시스트 가족은 나의 성장 과정에서

나의 내면의 생각을 진심으로 궁금해하거나, 공감해 준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나는 내 생각이 수용받을 만한가에 관한 의구심이 늘 존재했다.

게다가,

'가족 구성원이 좀 더 편안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하면 더 행복하려나'라고 생각하며

늘 전전긍긍하며 최선을 다해도

비난의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나는 나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감을 갖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짜증을 내거나 불편함을 표현하면

다 내 잘못처럼 느껴지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몸에 배어있었다.

물리적 단절을 했다고 해서 이러한 내 모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고

'나 때문이야.'라는 비난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나를 찔러댔다.


물리적 선택은 내면의 확신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는 불가피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는 내 삶이 애틋했다.

중년에 다다른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삶만큼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외부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내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심리적 방패는

원가족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과 자기 감각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를 위해 '나르시시르트'와 관련된 도서와 '정신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영상을 살펴보았다.

우리 가족의 문제를 마치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서술해 놓은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가족 문제에 관한 인식이 생기다 보니

'내가 힘들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이해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가족인데 내가 다 수용해야 해, 이해해줘야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러한 인식이 나에게 힘을 주었지만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고통이 뒤따랐다.


원가족과 심리적으로 한 몸처럼 얽혀있는 나로서는

원가족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마치 나의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자기'를 인식하는 힘이 생겼고

나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내면의 나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 증거이다.

처음에 이 글을 쓸 때에도 내 안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계속 잡았는데

'무슨 좋은 이야기라고 가족이야기를 글로 써서 공개해?'

'너의 선택의 죄책감을 덜려는 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등등의 목소리가 나아가려는 나를 넘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면의 비난의 목소리와 싸워

늘 이기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나처럼 아픈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가

거리 두기를 결심하고, 그 소중하고 애틋한 자신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 이 글이 그런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


상담 과정에서 상담사가 나에게 한 말 중에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한 말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변호하듯이 이야기를 많이 하시네요.

그런데 자신에게는 너무 가혹해요.

괜찮다고 생각하기까지 스스로 정해둔 허들이 너무 많아요."라는 말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변호할 것이고,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할 것이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내가 누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외부에서, 내면에서 나를 찌르려는 시도는 계속되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맞서 직시하고, 목소리를 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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