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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Oct 22. 2023

학생과 학부모

  내가 그만두었다고 하면, 다들 첫마디로 “왜! 누가 힘들게 했어????”라고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사 vs 학생과 학부모’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그들로 인해 심적으로 많이 힘들고 괴로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 운이 좋게 무난한 학군의 학교로 발령받아 특별한 이슈가 없는 아이들을 만나왔고, 저경력 교사인 나를 존중해 주시는 따뜻하고 상식적인 학부모님들을 만나왔다.


  그래도 교사라면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교사 관련 문제가 커지면서 학부모 갑질, 진상 학부모 사례 리스트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나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지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버스에 우리 아이가 원하는 아이와 앉지 못했다며 찾아와 우셨던 학부모


-밤 10시에 개인 휴대폰 전화로 오늘 졸업앨범선정위원회에서 선정된 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교감 선생님이 뇌물을 받은 것 같다, 선생님은 사회 초년생이라 잘 모른다, 애 아빠가 쫓아가려는 걸 말렸다(나도 이 말을 들어봤다! 그런데 이런 내용으로 들을 줄은 몰랐다.) 하셨던 학부모


-우리 아이가 과학 교과 시간에 ‘왕따’인 아이들과 같은 모둠이 되어 하늘이 무너질 듯 울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신 학부모


-아침 7시부터 아이가 동아리나 방과 후 교실에서 겪었던 교우관계 문제, 자존감 문제들에 대해 A4 몇 장은 되어 보이는 분량의 문자로 보내며 마음을 읽어달라고 하시는 학부모 (꼭 이런 분들은 본인이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을 아이에게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신다.)

*여기까지는 모두 한 해에 있었던 일이고, 이 해에는 유독 학부모들에게 저런 류(딱히 나의 잘못이 아니거나 나와 관련이 없는 일이라 내가 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일들과 관련된)의 장문의 연락이 이른 아침이고 늦은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왔었다. 그 학년도 이후로 나는 개인 휴대폰 번호를 더 이상 공개하지 않게 되었다. 또 나는 이때 이후로 모르는 번호 공포증이 생겨 지금까지도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다, 아니 받지 못한다. 진짜 필요하면 문자가 다시 오겠거니 한다.


-학급운영 SNS에 매일같이 내가 꼭 챗봇인 양 한 마디 인사말도 없이 본인의 용건만 띡 하고 남기시던 학부모 (이런 걸 뭐라 순화해서라도 말할 수도 없는데, 안 하고 그냥 넘어가자니 학년이 끝날 때까지 매일 너무 기분이 나빴다.) 심지어 그 용건도 아주 사소하고 불필요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내일 시간표에 국어가 있나요?’와 같은...


-같은 반 친구에게 지속적으로 욕설과 폭력을 저질렀다는 학생의 부모님께 다른 아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연락을 드렸더니, 오죽했으면 때렸겠냐며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친구들을 배려도 잘하고 인기도 많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많은 걸 참았을지 생각하니 속상하다, 앞으로는 본인도 더 이상 가만있지 않고 나서겠다고 하시고, 그 뒤로 다른 아이들이 하는 사소한 장난 하나하나를 다 지도해 달라며 매일 연락하시는 학부모


-코로나19 자가진단 미완료 건으로 한창 바쁜 아이들 등교 시간에 연락드렸더니, “선생님이 저희 남편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라고 하셨던 학부모


-이전 학년이나 이전 학기 담임, 또는 다른 학부모를 험담하는 학부모     



  그 외에 사소한 것들은 이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년 말에 우리 아이는 누구와 반을 떨어뜨려 달라, 붙여 달라 하는 건 너무나 많아 굳이 쓰지 않았다. 쓰고 나니 이 정도면 나는 교사들 사이에서 명함도 못 내밀 럭키 교사인 것 같다.


  좋은 분들이 훨씬 많았지만, 한두 명의 특이하고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분들은 꼭 있었고, 그런 사람들과 1년 내내 엮여 있으면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사실, 그런 사람들의 귀한 자녀분들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고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불쾌함과 짜증, 스트레스가 나의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심하면 한 학기나 1년을 망쳐버릴 때도 있었다.        

  

  학생들도 대부분은 다 착하고 귀여웠다. 애초에 내가 예의, 안전, 폭력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이 세 가지에 있어 선을 넘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는 학급 경영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특별히 예의 없이 굴거나 나의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은 없었다. 물론 이것은 100%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내가 느낀 건 점점 예의, 눈치, 개념이 없는 학생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교사 커뮤니티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항상 말이 나왔다. 심지어 늦둥이 자녀의 학부모님들께서도 상담을 하실 때 큰애들 키울 때랑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며 여러 모로 힘들어졌다고 하실 정도였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고, 욕구를 바로바로 충족해야만 하고, 불편한 것은 참지 못한다. 긴 글을 읽는 것을 힘들어하고, 설명을 잘 듣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꼭 해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없어진다. 화가 나면 그것을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출하고, 휴대폰 영상과 게임, SNS에 빠져 산다. 잘못을 지적당하면, 그게 왜 잘못인지를 정말로 모른다. 돈에 대해 잘 알고, 돈을 중시하고, 돈으로 비교를 한다. 예의의 개념 자체가 예전과 달라진 건가 싶을 정도로 언행에 예의가 부족하다.     


  나는 처음 교단에 섰을 때부터 교실이 조금 더럽거나, 아이들이 좀 시끄럽거나, 학습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이 많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예의 없는 것에 있어서는 참을 수가 없는 교사였다. “그런 말은 하면 안 돼~” 수준으로 적당히 살살 지적하고, 못 들은 척 못 본 척 눈감아주는 것이 애초에 되지가 않았다. 조금이라도 예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말 그대로 ‘쥐 잡듯이’ 잡아 눈물이 쏙 빠질 때까지 혼을 내서 가르쳤다. 그래야만 내가 감정을 가라앉히고, 평정을 되찾고 다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보통 본보기로 한두 명만 잡아도, 나머지 아이들이 벌벌 떨며 알아서 예의를 깍듯이 지키게 될 정도로 예의에 있어선 무섭고 엄격했다. (대신 예의만 잘 지키면 평소에는 정말 친절하게 대해줘서 ‘친절한 선생님’, ‘친절하지만 화나면 무서운 선생님’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이런 내 교육관 때문에 나는 해가 갈수록 교실이 싫어졌다. 처음에 몇 번 좋은 말로 해서는 그치지 않고 꼭 큰 소리를 내며 버릇을 고쳐줘야만 하는 아이가 점점 많아졌다. 분명 어제 혼을 내고 반 전체를 대상으로 같은 잔소리를 했는데, 24시간도 안 돼서 오늘도 또 똑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도대체 저 애의 부모님은 평소에 어떻게 가르쳤길래 저 모양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차피 듣지도 않을 잔소리를 왜 내가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며 반복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점점 짜증이 났다.


  물론 초등학생들은 미성숙한 존재이고, 가르쳐주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교와 교사의 일이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지,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당연하게 배우고 체득해야 하는 것들까지도 왜 학교가 책임져 주어야 하나. 욕하지 말아라, 때리지 말아라,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예의 지켜라 등의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하고 알림장에도 주기적으로 적어 주는데, 뭔가 문제가 생길 때면 학교와 담임교사는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를 무쓸모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곤 한다.

  그런 아이들 때문에 교사의 몸과 마음이 지쳐 휴직을 하고 담임이 바뀌면, 그저 그 교사는 아이들을 휘어잡지 못한, 학급경영 능력이 부족해 아이들에게 '잡아먹힌' 교사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엔 눈을 보며 진심으로 걱정하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담임선생님으로서의 마음을 전하면, 그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든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이 되었다고, 우린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느껴졌는데, 점점 생활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내가 부족한 교사여서 일 수도 있겠고, 유독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관계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교육 철학과 지도 방식은 변한 것이 없었고, 오히려 경력과 노하우가 쌓였고 이제는 부모의 마음으로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까지 했는데 생활지도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싫어지고, 담임을 맡고 싶지가 않아 졌다.


  게다가 나는 운이 좋아 나에게 대놓고 욕설을 하거나, 나를 때리는 학생을 아직까지는 만나본 적이 없었으나, 그런 경험을 실제로 하거나 가까이서 본 사람이 내 주변에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고, 언제 나에게도 생길지 모르는 일이 되어 이전에는 학교 안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 불안, 의심이라는 감정까지 느껴보게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라는 직업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데,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 고요한 교실에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고(원로 선생님들께서는 “애들만 없으면 참 좋은 직업이야~”라는 농담을 하시기도 한다.), 오늘도 진상 학부모의 연락이 올까 봐 스트레스를 안고 1년을 보내며, 서로 기를 쓰고 담임을 맡지 않으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싶었다.

  나를 포함해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 직업을 가짐으로써 해야 하는 일과 만나야 하는 사람, 겪어야 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보다는 부정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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