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른들이야 좋게 생각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좋게 인식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직업으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것이 교사인데, 까이는 이유는 주로 ‘가르치려 든다’, ‘세상 물정 모르고 답답하다’, ‘애들이랑 지내서 유치하고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주제도 모르고 눈이 높다’, ‘꿀 빨면서 징징댄다’ 류의 것들이다.
주로 그런 글이나 댓글에서는 항상 싸움이 일어나는데, ‘부러워서 그러냐, 부러우면 너도 교사해라’, ‘교사 따위 줘도 안 한다’, ‘해보지도 않고 밖에서만 본 모습으로 남의 직업 함부로 까지 말아라’, ‘교사들 다 잘라버려야 한다’, ‘방학 때 월급 주지 말아야 한다’ 등 안 봐도 비디오인 내용이다.
교사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착하고, 순종적이고, 튀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던져 주면 어떻게 해서든 해내고 마는 직업병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밖에서 받는 저런 평가를 들을 때 더 쉽게 좌절감과 우울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해도, 현장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져도, 까이는 이유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교사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그렇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받는 대부분의 조언은 ‘교사는 적성에 맞지 않으면 정말 힘든 일이다’라는 것이다. 유독 교사라는 직업과 적성이라는 말은 자주 엮이는 느낌이다.
교사가 적성에 맞는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일단, 당연히 아이들을 좋아해야 할 것이다. 축구가 너무 싫은데 축구선수가 되진 않을 것 아닌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대하는 직업이니, 아이들을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다 똑같아서 고깃집에서 일을 하면 고기 냄새도 맡기 싫어지고, 민원 업무를 하면 사람이 다 꼴 보기 싫어지듯,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점점 아이들에게 질리고 싫어지는 것이 아이러니다.(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물론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첫 제자들을 맡았을 때 주말에도 내내 우리 반 아이들 사진만 들여다보고, 학년이 끝나는 날의 디데이를 세며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우울해할 정도로 아이들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했고, 일이 힘들지언정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학교 가는 게 좋았다.
매년 교원평가의 학부모 의견 란에 가장 많이 나왔던 말들은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예뻐해 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였다. 그랬던 나도 이제는 아이들에게 점점 거리를 두게 되고, 관심이 사라지고, 쉽게 실망하고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만둔 지금은, 앞으로는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일은 하고 싶지가 않다.
내 MBTI의 첫 글자는 I고, 마지막 글자는 P다. MBTI가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내 성향 중 특히 몇 가지가 교사와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두 지표가 그것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 같은 성향임에도 교사가 천직인 분들도 있을 수 있다. 아래 내용은 모두 개인적인 생각들일뿐이다.)
I는 내향형을 의미한다. ‘내향형’의 의미를 검색해 보면, 개인 내부요소에 관심을 가지고, 내적 욕구의 영향을 받는 성향으로 고독과 사생활을 즐기며, 사람 및 사물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지극히 내향형인 사람이었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걸 좋아하고, 소수의 사람들과 깊고 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시끄럽거나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이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사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어떤 일을 하든 내향형이 외향형보다 더 어려움을 느끼겠지만, 소음과 갈등으로 둘러싸인, 하루 종일 많은 인원과 말을 하고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학교 교실은 극 내향형 인간인 나에게는 과장을 좀 보태면 지옥과도 같은 곳이 아니었나 싶다.
교사가 된 후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이 요즘 일 어떠냐는 안부를 물을 때면 나는 항상 ‘독방에서 혼자 글 쓰는 일 하고 싶어..’라고 하곤 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혼자서 조용히 생각에 몰두해서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 적성에 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생각해 보니 적성만 따지면 넌 개발자가 참 잘 맞을 것 같다고 했지만, 개발자는 다음 생에 도전해 봐야겠다.)
P는 인식형을 의미하는데, 반대 개념인 J는 판단형을 의미한다. 흔히 인식형은 ‘융통성’, 판단형은 ‘계획, 정리정돈’이 대표적 특성이라고 한다. 나는 꼼꼼하게 무언가를 계획하고 챙기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잘하지 못했다.
교사는, 특히 담임교사는 항상 학급의 모든 일을 꼼꼼하게 챙기고 기록하면 일하기가 수월한데 나는 이런 성향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학급일지 같은 것은 한 번도 만들어서 써본 적이 없었고, 출결사항도 탁상달력에 적었다가, 학급일지 대신 쓰는 공책에 적었다가, 인쇄해서 파일에 끼워 둔 명렬표에 적었다가 하며 꼼꼼히 관리하지 못했다. 놓치거나 실수한 적은 별로 없었지만, 일을 할 때 필요한 것을 허둥지둥 찾아야 했고, 한꺼번에 여러 일을 처리하다 보니 항상 정신이 없는 느낌이었다.
교사들을 보면, 판단형인 사람이 많은 듯했고,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더 교사 체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해야 할 일, 학생들과 관련해서 챙겨야 할 사항을 빼곡하게 정리하고, 공개수업이라도 하면 발문 하나하나까지 대본으로 만들어 계획하는 분들도 계셨다.
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켜자마자 메신저 폭탄을 받고, 수업을 하는 중에도 전화가 몇 통씩 걸려오며 이동 수업을 간 아이들이 갑자기 다쳐서 교실로 올라오고, 아이들을 교과실에 보내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하려 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보결을 들어가게 되기도 하고, 오늘까지 결재받아야 하는 공문을 바쁘게 쓰고 있는 중에 갑자기 지금 최대한 빨리 이 파일을 작성해서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는 등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일을 처리할 때가 많은 학교라는 곳에서, 바탕화면 아이콘 정렬도 지저분하고 책상 위도 지저분한 나 같은 사람은 꼼꼼하고 계획적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이런 담임을 만난 아이들 입장에서는 너무 숨 막히지 않고 적당히 풀어주니 좋은 점도 있었을 것이다. 날씨도 좋고 아이들도 상태가 좋은 날이면, 오늘 수학 진도를 여기까지 끝내려고 했다가도 즉흥적으로 나가서 체육을 신나게 하고 들어오곤 했다. 그러다 수행평가 계획을 급 떠올리고 부랴부랴 다음 진도를 타이트하게 계획하기도 했다. 갑자기 더 좋은 수업 자료와 활동을 생각해 내면, 이미 인쇄해 둔 활동지라던지 이미 계획해 둔 단원 지도의 흐름 등에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계획을 수정했다.
담임교사로서의 내 계획들은 거의 대부분 수정되는 편이었고, 말 그대로 항상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교실을 무탈하게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내 성향을 거슬러 더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을 추가해야 했고, 이런 게 바로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예의를 중시하는 내 성향도 지금 생각해 보니 적성의 한 부분이었다. 놀 땐 확실히 놀고, 할 땐 확실히 하자, 기본만 잘하자, 선 넘지 말자, 말 안해도 알아서 잘하자가 학급 경영관이었던 나는, 앞서 언급했듯 예의만 잘 지킨다면 나머지는 크게 간섭하지 않고 오케이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반이 되는 아이들은 매년 그림같이 앉아있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노는 게 제일 좋은 해맑은 뽀로로들 같았다. 숙제를 많이 내주거나, 공부 계획표를 나눠 주고 지키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늘 너희, 좀 잘하는데? 기분이다! 체육 하자!” 하는 스타일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좋을 땐 유튜브로 노래방처럼 가사가 나오는 영상을 틀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이들 텐션이 한껏 올라간 날엔 즉흥 장기자랑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 날뛴다. 아이들과 내가 어느 정도 서로 맞춰지고 나면, 대부분의 날들은 그렇게 서로 즐거웠다.
그러다 가끔 예의가 실종되는 사건이 터질 때면, 잠들기 전까지 열받아서 혼자 씩씩거리며 내일 어떻게 참교육할지를 곱씹었다. 사직원을 제출한 뒤에도 이러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아니, 어차피 그만둘 건데 왜 그렇게 그걸 신경 쓰고 앉았어?”라고 말했다. 어? 그러네? 나 왜 너무 열받지?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나의 이런 성향 또한 교사와 맞지 않는 것이었다는 것을. 애들은 애들이니까 하며 미성숙한 학생들이 생각 없이 뱉는 말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교사들도 많다. '에휴 넌 그렇게 살아라. 네 인생만 손해지. 너희 부모님만 고생하시겠지.'하고 적당히 지도하고 넘기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더 좋을 것이다.(왜냐하면 교사가 지도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고, 교사가 지도할 수 있는 정도와 범위도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날 때부터 성정이 그러한지, 누군가 예의 없는 언행을 하면 그냥은 못 넘어갔다. 꼭 짚고 넘어가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진상 학부모 이슈가 사회적으로 이렇게 파장이 커지게 되기 전에도 항상 ‘학생이나 학부모가 나에게 욕을 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언행을 한다면 난 안 참고 똑같이 하고 그만둘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아이들이 유난히 들떠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나를 화나게 하는 사건들이 하루에 몇 개씩 생겼고, 선을 넘는 아이들에게 무섭게 화를 내고 나서 나 혼자만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정작 나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난 아이는 바로 다음 쉬는 시간에 와서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저 이거 만들었다요~’ ‘선생님 밥 먹고 운동장 나가서 놀아도 돼요?’ 등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칠렐레 팔렐레 즐겁게 논다. 나만 쓰레기지 또..)
나랑 성향이 너무 비슷한, 6학년은 쥐 잡듯이 잡을 수 있는 엄격한 스타일의 동학년 선생님께 이 얘기를 했더니 진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게 교사랑 안 맞는 포인트 같다며 무릎을 탁 치면서 공감을 하셨다. 예의 없는 학생은 흐린 눈을 하고 살려둘 수가 없는 우리 같은 교사는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학급 경영에 탁월한 재능과 소질이 있는, 적성이 의외로 맞는 교사인 줄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젊은 교사였을 때, 그리고 운이 좋게 난이도 '하'의 학급을 만났을 때의 얘기였다.
나는 교사로서 소명을 갖고 한 학생의 유년시절에 내가 무언가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변화시키거나 평생의 은사가 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다. 그저 내 입맛에 맞게 나를 잘 따르는 아이들과 1년 무사히 보내면 그것이 그만이었다.
힘든 아이 한 명이 있어도 나머지 예쁜 아이들을 보면 싹 잊힌다거나,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예뻐서 갈수록 장점이 빛이 바래 가는 이 직업을 포기할 수가 없다는 참 교사 분들도 계시지만, 복직을 해보니 난 그런 타입은 절대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운이 좋아 적성에 맞아 보였을 뿐, 안 맞는 쪽에 훨씬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일이 많아도 즐겁다고 말한다. 나는 즐겁지 않았다. 내 적성에 교사보다는 좀 더 잘 맞는 일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