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하원하러 가면 다른 아이 엄마들과 짧은 대화를 종종 나누게 된다. 그만두기 전에, 나는 일찍 출근해야 해서 등원은 남편이 했지만 단축 근무인 육아시간을 쓸 수 있어서 하원은 휴직 중일 때와 비슷하게 내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들 내가 계속 휴직 중이라고도, 애초에 처음부터 전업주부였다고도, 퇴근을 일찍 하는 직장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교사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를 통해 알게 되는 엄마들에게 교사인 신분을 굳이 밝히지 않는 것이 중론이다. 엄마들끼리 만나면 주된 대화 주제는 결국 아이들, 보내는 기관 등에 대한 것인데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런 불만을 얘기하는 자리에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엄마들이 험담을 편하게 할 수 없으니 불편해하거나, 혹은 거리낌 없이 교사에 대해 대놓고 면전에서 불쾌한 말을 해서 내가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알고 지내는 엄마도 한두 명밖에 없었기에 내 직업이 교사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직업을 아는 사람들은 퇴사를 했다고 하면 ‘너무 아깝다.’라는 반응이 대세이고, 내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축하해요! 너무 부러워요!’라고 한다. 퇴사 후 하원하러 간 어느 날, 어쩌다 내가 퇴사했다는 말을 다른 엄마들과 하게 될 일이 있었다. 내 직업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축하와 부러움을 한껏 받고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워서. 그만두기엔 그렇게도 아까운 ‘교사’라는 직업이 내 직업이라서, 이제야 퇴사를 한다. 직장인들이 급여든, 복지나 워라밸이든, 상사나 동료, 통근 거리 같은 것들이든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더 나은 직장으로 몇 번씩 이직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데, 심지어 축하까지 받는데, 교사가 그만두는 건 도대체 뭐가 그리도 아까운 일인가?
복직연수에 갔을 때에도, 복직한 새 학교에서도 많은 선생님들은 의원면직, 명예퇴직, 이직 등 교사 탈출을 생각하고 계셨다. 하지만 대부분 나이의 제약, 육아의 제약, 시간과 체력의 제약 등으로 이제는 못한다며 꿈만 꾸고 계셨고, 그분들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은 "선생님은 아직 젊잖아요.", "제가 선생님 나이였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저는 바로 그만둘 거예요.", "그 나이면 뭐든지 다시 할 수 있어요."였다.
그동안의 시간이 기회비용처럼 느껴지고 너무 아까워서 머뭇거렸었지만, 이제는 나의 젊음과 남은 내 인생이 기회비용으로 느껴져서, 더는 기회비용을 날리고 싶지 않아서 결정을 했다.
기나긴 고민과 고뇌, 성찰, 숙고의 시간 끝에 의원면직을 결정하고 나니, 새롭게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 앞에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처럼,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무슨 일이든 적어도 지금만큼의 노력을 쏟는다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은 없었지만, 먼저 ‘나’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순응하고, 대세에 묻어가고, 의문이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으며 영혼 없이 흘려보냈던 지난날 한 번도 미처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성향인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현실적인 나와 우리 가족의 상황 등을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정리해 보기로 했다.
또, 의원면직을 한 교사, 공무원들의 경험이 담긴 글과 영상도 많이 찾아보았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나는 몇 년 전에 출판사로의 이직을 생각하며 유명 출판사들의 채용 공고문을 모아 정독했던 적이 있었다. 블라인드에서 현직들의 격한 반대 의견을 보고 접긴 했지만. 교사로서 일하는 것과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을 비교해 보기 위해, 또 교사들은 어떤 분야로 이직을 많이 하나 궁금해서 그 당시에 교사 이직, 면직 등을 검색했을 땐 사례가 많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다들 그만두게 된 계기가 된 생각이나 일화가 비슷했고, 그분들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생각들에 공감도 많이 되고 좋은 영향도 많이 받게 되었다.
시야가 좁은 교사로 살아왔던지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일단 여러 분야의 책과 영상을 최대한 많이 접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일상의 스트레스 없이 고요하게, 몰입해서 책을 읽는 시간이 그 자체로 선물처럼 좋았다. 빠른 속도로 며칠 만에 꽤 많은 권수의 책을 탐독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여러 분야의 영상도 많이 찾아보았는데, 이별을 하고 나면 세상의 모든 노래가 내 마음을 대신하는 노래처럼 느껴지듯 모든 영상이 지금의 내 상황에 도움이 되고 울림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밥 먹으며 무심코 틀어둔 유튜브 영상들에서조차 퇴사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나에게 피와 살이 되는 주옥같은 명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특히 두 가지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는데, 첫 번째가 ‘포기도 용기다’라는 말이었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영상 중 가수 윤종신 님이 문상훈 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나온 말이었는데, ‘삶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보다 아닌 걸 빨리 포기하는 게 더 현명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의원면직을 한다고 했을 때, ‘진짜 용기 있다, 멋있다, 그 용기가 대단하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래, 포기도 용기다. 어쩌면 가장 큰 용기인 것 같다. 아니다 싶을 때가 많았는데, 용기가 없어서 멈추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쌓아둔 내 인생의 모든 용기가 지금 발휘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큰 용기를 낸 사람이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자 한 이순신 장군처럼, 그간의 수많은 생각들과 괴로움, 학교에 남으면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것 같은 두려움을 모두 모아 앞으로도 계속 용기로 바꿔보고자 한다.
두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역시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자 초등교사 의원면직 선배님(?)이신 ‘유랑쓰’의 영상에서 몇 번 들었던 말인데, 이상하게 그만두고 나서부터 책이나 영상, 미디어에서 유독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아마 요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교대와 초등학교라는 곳은 나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곳이었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남은 인생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벗어나 무엇이든 해보려 한다. 사소하고 생각지 못한 일에서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했던 나의 일상에, 언제 어디서 어떤 기회를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되고 설레기까지 하는 반짝임이 생긴 느낌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는 일이나,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알게 되는 등 이름이나 신상이 퍼지는 것, 개인 정보 유출과 같은 것들에 왠지 모르게 너무 민감하고 거부감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께서 수업 중 하신 질문에 대한 답을 책에서 봐서 다 알고 있는데 발표를 하면 나에게 시선이 집중될까 봐 항상 짝에게 “답 이거야. 네가 발표해.” 하고 대리 발표(?)를 시키는 아이였다. 엄마가 머리를 새로운 스타일로 묶어 주거나 새 옷을 입혀 등교시키면 누가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말 거는 것이 싫어서 가는 길에 머리를 다시 평소처럼 묶고, 옷을 갈아입으러 되돌아오곤 했다.
어떤 선택을 할 때에는 튀기 싫어서 거의 항상 집단 내에서의 대세의 흐름에 따랐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생일 때나 그 이후까지 했던 모든 SNS 계정은 친구 공개로만 설정해 두었고, 각종 사이트의 마케팅 관련 동의는 절대 하지 않는 것으로 내 번호가 어떤 목적으로든 활용되지 않게 했다.(덕분에 보이스피싱 전화는 살면서 받아본 적이 없고, 스팸 문자도 잘 오지 않는 편이다.)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고, 카톡 친구 추천 목록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뜨면 가차 없이 바로 차단을 한다. 쓰고 보니 약간 병적인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이런 성향이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가로막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괜히 나댄다고 할까 봐, 쟤는 왜 저런 길을 가냐는 말을 들을까 봐, 모르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면서 하는 평가를 당하는 것이 싫어서 내가 가진 것을 너무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어떤 것을 이루는 데에 있어 가끔은 가진 걸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의 그동안의 행적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너무 신원이 특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옆에서 남편이 “요즘은 다 얼굴 까고 유튜브 하는 세상이야.”라며 나를 놀렸다. 그래, 맞다. 요즘은 자기 PR 시대다. 가진 것을 적극 활용하고 세상에 보여줘야 성공하는 시대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씩 노력해보려고 한다. 가진 것이 많아지도록 다양한 방면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필요할 땐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꺼내 보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의원면직에는 또 다른 용기가 있었다.
실망도 하고 충격도 받고 속상하기도 하셨을 텐데도 딸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시는 부모님의 용기.
어쩌면 부담도 되고, 놀랐기도 했을 텐데도 무한한 지지와 응원, 아낌없는 조언을 보내 주는 남편(그리고 시부모님)의 용기.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결정이라는 것을 내리는 데에 큰 힘이 되고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소식을 듣자마자 그동안 얼마나 많이 고민했겠냐며, 고민하느라 많이 힘들었겠다며, 분명 훨씬 더 좋은 앞날이 펼쳐질 거라며 마냥 쉽게 저지른 결정이 아님을 알아주는 말을 건네주는 가까운 이들이 있어 든든하고 또 감사하다.
“교사는 평생직장”,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가 최고”, “그래도 연금이 있잖아”, “그래도 방학이 있잖아”
교사로 살면서 숱하게 많이, 또 너무나 당연하게 들어왔고 해 왔던, 주고받았던 말들이다. 돌아보니 저 말들에 갇혀서 밖으로 나와보지도 못한 나의 주관, 나의 생각, 나의 관심사, 나의 역량, 나의 적성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삼십여 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그만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고 있어 보이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내 눈에 좋아 보이고 내 마음이 동해서 선택한, 100% 행복하진 않더라도 대부분의 날들에 꽤 만족스러운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나는 우리말 가사가 깊이 있고 멋진 노래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인, 잔나비의 ‘웃어도 될까요’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안정적인 직장을 팔아요, 그대의 젊음과 공평히 바꿉시다
안정적인 직장에 나의 20대를 온전히 팔아먹었다. 어쩌면 이제 나의 젊음의 값어치는 20대에 비하면 반의 반값도 안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간절히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었던 안정적인 직장을 다시 환불한다.
학교를 떠난 지금, 벌써 행복해서 웃음이 난다. 항상 웃는 날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웃는 날이 더 많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더 많은 포기와 다채로운 실패도 경험해 보며,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려 한다.
한 번 용기를 내니, 용기가 화수분처럼 계속해서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선택을 했다가 또 아니다 싶을 땐, 또다시 용기를 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