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면

by 단팥

퇴근 후 타게 되는 1호선의 지하철은 사람들로 너무나 갑갑하다. 가장 신기한 건, 더 이상 사람이 탈 수 없을 것 같은 그 공간에 다음 정거장의 사람들이 또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얌체족들도 때론 많이 보이고 종종 화나는 일도 생긴다.

평소의 나는 자리에 앉는 일이 거의 없다. 한날은 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났고 그 희망이 없던 공간 안에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 행운을 맞이했다. 그런데 불현듯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보이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먼저 쏙 하고 앉아버렸다.

우쒸 내 자린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 바로 앞이었는데 앉지를 못했다니 억울했다. 먼저 앉아 의기양양하게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의 정수리를 쏘아보며 '꿀밤을 아주 세게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하게 상상에만 그쳤지만.

그때였다. 반대편 출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어, 그래 내려 인마, 내려 자식아."


"야, 시끄럽다 가라 가. 너 같은 놈이랑 말도 섞기 싫다."


"내리라고!"


아마도 출입구에서 승하차를 하다가 다툼이 생긴 모양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보았지만 이내 열차는 출발했고 함께 그쪽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기 바빴다.


간혹 티브이를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핸드폰 액정 화면이 보인다. 핸드폰 전광판 어플을 이용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문구를 써서 보이는 것이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 너무 슬픈 마음. 혹은 이도 저도 다 귀찮고 남과 이야기하기도 싫은 그런 날엔 내 마음의 전광판, 혹은 '마음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싶다.

'저 오늘 너무 슬퍼요. 위로가 필요합니다.'

'여기 내 자리거든!'

'말하기 싫어요. 말 시키지 말아 주세요.'

'저 오늘 화장 좀 잘 받지 않았나요?'

'배고파서 힘이 없어요'


등등.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마음을 말이다. 내 자리를 새치기 한 여자에게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만일 이런 마음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다닌다면 관종, 혹은 진상 등으로 분류될 것이 뻔하다.


'마음 이름표'를 달고 누군가를 대할 수도, 내 마음이 이래 하고 알아 달라고 보챌 수도 없다. 또한 말하지 않는 타인의 마음을 내가 미리 다 알 수도, 부러 알려고 하는 것도 그에게 실례가 된다.


하지만 가끔은 억울한 일뿐만 아니라 평소의 우리들의 마음도 조금 표현하고 싶다. 타인의 표현도 보고 싶다. 알 수 없는 마음과 기분은 서로를 답답하게 만들고 오해를 불러일으니까.


출근해서 동료들끼리, 학교에서 친구들끼리의 마음도 그렇다. 그저 우리 마음의 날씨에 따라 보이는 분위기와 기분의 냄새 등으로 서로를 흐릿하게 알아며 어림짐작을 할 뿐이.


그러니 힘들 땐 힘들다고 조금 티를 내주면 좋겠다.

세상만사 귀찮을 땐 조금 짜증을 내어도 좋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도록.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도록. 그 마음이 보일 땐 당신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 위로해 주고 싶다. 내 마음도 위로받고 싶다.




사진/ 영화 '환상의 빛'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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