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주일 중에서 화요일이 가장 힘들다. 월요일엔 그나마 푹 쉬었던 일요일이 있으니 덜 힘들고, 수요일, 목요일은 일주일의 반을 보냈다는 생각 때문에 덜 힘들다. 금요일은 이제 하루만 버티면 주말이 된다는 희망이 보이니 즐겁다. 하지만, 화요일은.... 화요일은 참 절망적이다. 겨우 월요일을 보냈을 뿐이고 주말까지 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늘 화요일 같았다. 어린 두 아이는 언제 클지 앞이 캄캄했고 죽어라고 일을 해도 모아지는 돈도 없이 늘 삶이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남들은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잘 나가는 것만 같이 보이는데 난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은커녕 뒤로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했다.
그렇게 화요일 같던 내 인생에도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상투적이고 그냥 하는 말 같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아등바등 잡으려고 했던 것들을 꽉 잡지 않고 느슨하게 손에 힘을 주지 않으니 이상하게 모든 것들이 조금 수월하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가장 숨 쉬게 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마음이 정리되지가 않을 때, 마음이 불안할 때, 마음에 안정이 필요한 순간이면 노트북을 펼치거나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내 마음속 정리되지 않은 단어들을 나열했다.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은 그 자체로도 마음을 표현하기에 충분했으며 아주 훌륭한 영감을 준다. 글쓰기라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장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신의 창작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최악의 상태였을 때는 술을 마시기도 싫었고 말짱한 정신으로 있기도 싫었다. 인생에서 쫓겨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되돌아오는 길에서는 다만 여유를 갖고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글쓰기도 중단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은 모호하고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쓴다는 사실이 중요했다....(중략)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자.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 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다면,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없다면 내가 글쓰기라는 해독제 하나를 선택했듯 당신의 마음을 위로할 무언가를 찾아보았으면 한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나처럼 글을 끄적이는 것일 수도 있고 운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의 인생을 위한 예술 하나가 존재하기를. 내 마음속 장작불이 되어줄 것 하나만 찾으면 된다. 그것은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내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이 매일 금요일같이 즐겁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절망적인 화요일이 있기에 즐거운 금요일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가 없다.
때론 우리의 삶과 마음이 너무나 고될지라도 분명 금요일이 온다는 믿음 하나를 굳게 가졌으면 좋겠다. 아직 나의 인생에도 금요일은 오지 않았다. 설령 진짜 금요일 같은 인생이 내 삶에 펼쳐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린 화요일을 또 수요일을 버틴 인생 최고의 승리자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스티븐 킹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예술이 우리 인생을 위해 존재하며 지금도 이렇게 글쓰기의 마법이 내 마음의 족쇄를 풀어주는 가장 강력한 해법이 되어주고 있으니까.